인스타그램에는 매일 초 단위로 화려한 진수성찬이 펼쳐진다. 정성 담긴 집밥 사진부터 인기 있는 맛집의 군침 도는 메뉴들이 즐비하다. 쉽게 ‘이제는 가난해도 밥 정도는 잘 먹잖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 9월12일부터 국민일보는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기획을 통해 저소득층이 실제 무엇을 먹는지 한눈에 보여줬다.

이들 식탁에는 매일 라면만 올라오거나 주된 반찬이 콩자반과 총각김치에 불과해 영양 균형이 맞지않는 모습이었다. 똑같은 반찬마저도 복지관에서 보내주는 것이었다. 이들 식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보도했는데, 국민일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인터랙티브 기사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부실한 식탁을 보며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국민일보에 ‘빈자의 식탁’ 사진을 보낸 당사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국민일보에 “솔직히 예전에 직장 다닐 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것도 제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라 씁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공사장과 물류창고에서 일했는데 공사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쓰러졌다가 일거리가 끊겼다고 했다.  

국민일보 기자들은 왜 수많은 진수성찬을 전시하는 SNS에 ‘빈자의 식탁’ 사진이 올라오게 한 걸까. 미디어오늘은 5일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의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에 나오는 한 사례자의 식탁.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에 나오는 한 사례자의 식탁.

- ‘빈자의 식탁’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지금은 격차,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외 계층이 확대되는 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6월 ‘144조 국가균형발전예산 대해부’ 시리즈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면서 인권 전문가를 찾아갔는데 ‘옛날처럼 완전히 굶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밥이나 김치만 두고 형편없이 먹으며 생활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에서 출발해 ‘먹는 문제의 격차는 어떨까’ 생각했다. 사람이 먹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언론이 저소득층의 식사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았다.”

-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조건부 수급자, 차상위계층 25명을 인터뷰하고 13명의 일주일간 식단을 기록했다. 식단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인터랙티브로 구성했는데 이 형식을 택한 이유는? 
“저소득층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 끼, 하루 정도는 누구나 부실하게 먹을 수 있으므로 최소 일주일치 식사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대부분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므로 이들이 사생활을 공개하는 결심만 해주면 사진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사진이 모이면서 새로운 전달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 지면이나 온라인 기사는 여러 사람의 일주일치 식사 사진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다. 인터랙티브 방식이 우리가 취재하는 세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

- 인터랙티브 기사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국민일보에서는 첫 시도였다. 외부 업체에 의뢰하지 않고 자체 역량으로 제작했는데 기술팀장과 디자이너가 애써준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취재팀 기자들이 기획자 역할까지 수행했는데 다음번엔 이 부분을 시스템으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랙티브 기사를 제작하면서 사진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충분히 찍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또 사진이 필요해 추가 취재한 적도 있다. 사진부 기자들이 좋은 사진을 찍어줬고, 전문 작가 사진도 활용했다.”

- 해당 기사를 일반 기사와 인터랙티브 형식 두 가지로 송고했다. 사실 인터랙티브 기사는 굉장히 품이 많이 드는 반면에 조회수나 화제성에서 그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자주 드러났다. 이번 기획은 어땠나?
“우리도 그런 걱정을 했고 사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조회수는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다. 아무래도 먹고 사는 이야기라 더 주목을 받은 것 같다.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워가 많은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인터랙티브 기사를 공유해준 것도 도움이 됐다. 적극 기사를 알리지 않은 지인들한테서도 ‘기사 잘 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알다시피 포털에는 인터랙티브 기사가 걸리지 않는다. 플랫폼에 대해서는 고민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2화.

해당 기획은 총 129장의 식단 사진을 보여주면서 전날 먹은 음식이 되풀이되거나, 계속해서 라면만 먹는 식단도 공개했다. 일주일 중 사흘간 삶은 소면에 설탕만 뿌린 ‘설탕국수’를 먹은 사람도 있었다. 

하루에 두 끼 라면…“영양 불균형으로 비만도”

-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자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거나 안타까웠던 사례는?
“저소득층에 식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푸드마켓이 있다. 그곳 앞에서 무작정 인터뷰를 요청한 분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취재에 응해주셨다. 그분 식생활을 듣고, ‘이곳 오리고기가 괜찮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고 푸드마켓 안으로 들어가셨던 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왔다. 푸드마켓 이용 대상이 조정되면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하더라. 이분이 그 뒤 일주일 넘게 식사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끼니마다 식사가 너무 부실해 보여서 마음이 더 아팠다.

또 다른 사례로, 대학동 옛 고시촌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미국 저소득층의 비만을 떠오르게 하는 체형을 갖고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 보통 마른 걸 생각하는데 이분은 다른 방향으로 영양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도 30대답지 않게 흰머리가 3분의1 이상이었다. 이분에게 받은 식사 사진은 하루에 라면이 두 끼씩 있었다. 양을 채우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남은 수프와 사리면으로 라면을 끓인다고 했는데, 이분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 안타까운 건, 본인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인지하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1화에서 설탕국수가 주메뉴인 사례자.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1화에서 설탕국수가 주메뉴인 사례자.

- 기사를 쓰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나 새로운 깨달음 등이 있었다면?
“식사 장면 촬영을 위해 점심시간에 50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남성을 찾아갔는데 그가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취재 기자에게 건넸다. 이분은 샌드위치가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고 그날 구매한 신선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했는지, 영수증까지 함께 준비했다가 기자에게 줬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차마 끝까지 거절 못하고 들고 나왔다. 근처 공원에서 혼자 마음이 편치 않게 샌드위치를 먹었다. ‘가난한 분들이라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구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구나’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 회 주제가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이었는데 취재를 하기 전에는 식사의 질이 낮을 것이라는 예상만 했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굶지는 않지만, 선택권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식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 기사에 대한 반응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기사를 읽은 대학생들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대학동 옛 고시촌에 음식 후원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대학생 한 명이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고 우리 기사를 링크해 하루 만에 50여만 원을 모았다고 하더라. 또 기사에 나온 5년 동안 과일을 먹지 못했다는 40대 여성에게 과일을 보내고 싶다는 독자가 있어 연결해 드렸다. 나중에 ‘과일 실컷 먹었고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련기사: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읽고 57만원 모아 식품 기부한 청년들]

- 이후 추가 취재나 기획 계획이 있는지?
“빈곤 문제는 먹는 데만 국한하지 않는 것 같다. 격차와 소외계층 확대 현상을 계속 관심에 두고 아이템을 찾을 생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