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녀를 연상시키는 삽화를 엉뚱한 기사에 넣어 보도했다가 전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사건을 ‘포털에 종속된 미디어’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 게재됐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조선일보 삽화 사건을 통해 본 구조적 리스크’라는 제목으로 관훈저널 2021년 가을호(제160호)에 기고한 글이다.

조선일보의 인터넷매체인 조선닷컴은 지난 6월21일 “[단독] ‘먼저 씻으세요’ 성매매 유인해 지갑 털어”라는 제목의 기사에 조 전 장관 부녀 삽화를 삽입했다. 조선일보 종이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던 보도다. 

해당 기사는 한 남성을 성매매로 유인해 금품 등을 훔친 혼성 절도단을 다룬 내용인데 정작 기사 설명을 돕는 그림은 조 전 장관 딸 조민씨가 모자를 쓴 채 통화하는 장면과 조 전 장관이 뒤돌아 서있는 모습 등을 담은 삽화였다.

▲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조국 전 장관 부녀를 연상케 하는 일러스트가 삽입돼 논란된 지난 6월21일자 조선일보 기사.
▲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조국 전 장관 부녀를 연상케 하는 일러스트가 삽입돼 논란된 지난 6월21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 전 장관은 조선일보 기자와 편집 책임자를 고소했고, 조선일보는 3차례 사과문을 게재하고 대책을 공개했으나 삽화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던 이재국 성대 교수는 글에서 “한국 최대 부수의 신문사가 종이가 아닌 인터넷 공간에 기사를 올리며 일어난 이번 사건은 내연 중이던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개별 기사 차원에서 치명적 언론윤리 위반이라는 결과로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 즉 기사 품질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디지털 제작시스템에서 일선 기자가 기사를 직접 수정하고 삽화 등을 삽입할 수 있으며, 기사 게재 후 오래도록 담당 데스크가 문제 발생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전한 뒤 “조선일보가 조선닷컴 등에서 기사가 보도 이전 통과해야 하는 관문, 즉 게이트를 1개로 운영했으며 그 단 하나의 게이트가 실패하면서 매체의 신뢰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상 종이신문 보도의 경우 ‘일선기자-담당 데스크-편집자’와 같이 3개 이상의 게이트를 운용한다. 이와 달리 온라인 보도에선 신속성과 포털 주목도 등을 이유로 ‘1개 게이트 운영’이 용인됐고, 그 결과 참사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조선일보가 지난해 도입한 디지털 콘텐츠 관리시스템 ‘아크’(Arc publishing)도 꼬집었다. AI 콘텐츠 관리 도구 아크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사가 개발한 최신 시스템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자유자재로 첨부하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게시물을 원본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으며 클릭 한 번으로 뉴스에서 다른 뉴스, 다른 사이트로 이동 가능하다.

이 교수는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 또한 이 시스템을 통해 삽화를 넣은 뒤 출고해 인터넷 공간에 곧바로 보도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일보의 경위 설명도 이 시스템은 삽화를 넣은 뒤 ‘게시하기’를 클릭하면 즉시 보도된다고 밝혀 강력한 디지털 제작시스템이 오히려 게이트키핑 실패에 일조한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은 포털에서의 기사 노출 등 인터넷 공간에서 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 언론매체가 달라진 보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속성 강조, 디지털 강화 등 일련의 전략을 선택하며 발생한 게이트키핑 실패의 사고”라며 “이는 한국의 모든 언론매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유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길 경우 어느 매체에서든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나아가 이와 같은 구조 문제의 환경적 요인으로 ‘언론매체의 온라인 플랫폼 종속 현상’을 꼽았다.

이 교수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지속적으로 진행된 온라인 플랫폼의 전 방위적 확장은 뉴스 부문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형 플랫폼의 영향력이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펼쳐졌다”면서 “포털의 영향력 확대는 곧바로 언론매체의 시장 장악력 약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포털 플랫폼에서 언론의 최대 과제는 플랫폼 내 뉴스 이용자 주목을 최대한 끌어내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많이 기사를 올리기 위해 줄달음치게 되는데, 지배적 플랫폼 질서에 적응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선택이 윤리적 실패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조선일보 삽화 사건의 게이트키핑 실패 과정에서도 이런 단면이 드러났다”며 “플랫폼이 지배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기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는 방법으로 게이트 수를 1개로 줄이고 강력한 디지털 기사 관리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언론매체로서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이번 사건과 같이 사회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는 보도 윤리의 실패로 이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6월30일 조선일보 28면에 실린 사과문.
▲ 지난 6월30일 조선일보 28면에 실린 사과문.

이 교수는 여전히 기존 매체 편집·보도국 조직의 온라인 뉴스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삽화 사건 문제를 확인한 뒤 조선닷컴은 곧바로 수정했으나 조선일보 페이스북에는 이후에도 장시간 그대로 올라가 있었고, 사회부의 담당 데스크는 48시간 동안 문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종이신문·온라인의 단절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기존 신문사는 종이에 기사를 넣고 그 종이를 물리적 공간에서 운반하는 시스템을 길게는 100여년 간 해왔다”며 “기사를 생산하고 유통할 때 종이신문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온라인 공간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저널리즘을 지키는 길은 결국 진실의 정확한 보도라는 기자의 직업적 원칙(professionalism)을 충실히 지키는 것뿐”이라며 “조선일보 삽화 사건은 이러한 프로페셔널리즘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라 더욱 뼈아프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윤리적 문제가 터졌을 때 그 파괴력은 너무나 강력해 개별 매체 신뢰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언론이라는 제도에 대한 믿음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모든 언론사가 윤리적 실패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저널리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진실 보도에 나서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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