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딩동댕’이라고 검색하면 어린이 콘텐츠 ‘딩동댕 유치원’과 함께 ‘딩동댕 대학교’라는 채널의 영상들이 나온다. 코끼리·부엉이 인형 캐릭터와 연예인 광희씨가 출연하고 최근엔 ‘모여라 딩동댕’의 캐릭터인 번개맨도 등장했다. ‘딩동댕 대학교’라는 채널명에 집중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썸네일에 광희씨와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니 어린이 콘텐츠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 8월3일자 딩동댕 대학교 영상을 보면 충치를 예방하는 법이 나오다 인형들과 광희씨가 “아가리 아가리 빡세게 닦으면 나가리 나가리 이빨 전부 나가리”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온라인상에선 해당 영상 캡처본(짤)이 돌면서 ‘어린이가 보는 콘텐츠일 텐데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실 ‘딩동댕 대학교’는 유튜버가 만든 어린이 콘텐츠가 아니다. EBS가 만든 성인용 콘텐츠다. 

전문가들은 어린이 콘텐츠 형식을 성인용 콘텐츠에 차용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성인용 콘텐츠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겐 부적절한 내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어린이들이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것’을 빼앗는 행위 자체도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 8월3일자 EBS 유튜브 '딩동댕 대학교' 영상 갈무리
▲ 8월3일자 EBS 유튜브 '딩동댕 대학교' 영상 갈무리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영상전공 박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예를 들어 tvN에서 토요일 11시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면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미디어환경에서 유튜브는 특정 시간대나 채널로 구분할 수 없다”며 “게다가 내용이 ‘짤’ 형식으로 맥락이 떨어진 채 돌아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노출된다”고 우려했다. 

박 교사는 “예를 들어 구두약 모양의 사탕이 출시되면 아이들은 구두약을 보고 사탕이라고 생각해 집어먹을 수 있지 않나”라며 “표지에 백설공주를 보고 열어봤더니 성인물이면, 서점에서 별도 코너에 있거나 제목에 ‘성인을 위한’이라고 크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 8월3일자 딩동댕 대학교 영상에 대한 SNS 반응. 동물 캐릭터가 나오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 8월3일자 딩동댕 대학교 영상에 대한 SNS 반응. 동물 캐릭터가 나오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아동문학평론가)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유튜브라는 미디어 특성이 지상파에서 채널을 보는 것과 달리 알고리즘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딩동댕 대학교’가 ‘딩동댕 유치원’과 완전히 분리된다고 볼 수 없다”며 “결국 (두 프로그램) 포맷이 같아 어린이들은 ‘우리들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딩동댕 대학교’는 EBS에서 인기를 끈 ‘펭수’ 제작진이 만든 콘텐츠로 딩동댕 유치원을 보고 자란 성인들을 대상으로 제작됐다. 일각에선 ‘나도 어렸을 때 보던 것’이라며 ‘즐길 권리’를 주장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기존 미디어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시공간을 구분한 이유를 생각해보자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어른을 위한 세계는 넓고 많지만 어린이의 것은 그렇지 않아 어린이를 위한 영역을 불가피하게 두는 것인데, 어른들이 이를 가져가면 어린이들이 재밌고 편안하게 누릴 환경이 사라진다”라며 “물리적인 놀이터에서 누구나 쉴 수 있지만 자신들의 추억이 있다며 어른들이 미끄럼틀을 독점해 거기서 모임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조기축구를 하는 걸 괜찮다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 딩동댕 대학교 담당PD가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주로 먹는다고 하자 이를 출연자가 이에 대해 PD의 몸매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는 장면
▲ 딩동댕 대학교 담당PD가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주로 먹는다고 하자 이를 출연자가 이에 대해 PD의 몸매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는 장면

김 교수는 “노키즈존 등의 논의를 보면 어린이들에겐 벽을 세워 쉽게 어른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어른들은 어린이 영역을 쉽게 가져가는 건 이중적”이라며 “‘부적절한 내용에 19금을 걸어놨느냐’, ‘거친 표현을 쓰는 것이 문제 아니냐’는 논쟁보다는 어린이들의 공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어린이들의 공간을 보장해주고 편하게 놀면서 성장하게 하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문가는 해당 프로그램이 EBS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짚었다. 교육과 공공성에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뜻이다. 박 교사는 “설령 성인용 콘텐츠라 하더라도 공영방송이 ‘아가리 나가리’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딩동댕 대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는 주장하지 않았다. 제작진들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라고 밝혔고, 논란이 된 영상을 제외하면 대학생들이 보기에 유익한 교양·예능 프로그램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교수는 “EBS 프로그램 자체는 문제가 없더라도 다른 1인 미디어 운영자들도 ‘캐릭터를 가져가는 유사 사례’를 만들 수 있다”며 ‘추억의 상품화’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엔 TV에서도 황금시간대에 어린이 프로그램을 배치했지만 이제는 고령층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편성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수적으로도 소수가 된 어린이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게 김 교수 제안이다. 

▲ 먹는 자리에서 배변을 하는 모습. EBS 애니매이션 '포텐독' 한 장면
▲ 먹는 자리에서 배변을 하는 모습. EBS 애니매이션 '포텐독' 한 장면

EBS는 애니메이션 ‘포텐독’으로도 항의를 받았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포텐독’에서 “얌전히 있어. 시끄럽게 굴면 동영상 보낸다” 등 불법 촬영물로 상대를 협박하는 장면, 공개된 장소에서 한 캐릭터가 계속해서 먹으면서 배변하는 행위를 하는 장면, ‘노예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대사 등이 비교육적이며 인권 침해라며 EBS 측에 항의했다. 그 외에도 약자 혐오, 성차별적 관점 등이 비판을 받자 EBS는 7세 관람가였던 포텐독을 12세 이상으로 조정했다. 범죄와 차별 행위를 EBS 어린이 콘텐츠에 담는 게 문제였다. 

이는 EBS가 교육방송이자 공영방송이지만 수익성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몇 년간 EBS 이사회 회의 내용 상당수는 ‘펭수’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과 KBS 수신료를 올리고 배분 비율을 더 받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펭수 제작진이 전 국민적으로 유명한 ‘딩동댕 유치원’을 가져다가 ‘딩동댕 대학교’를 만든 것도 이런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질을 낮추는 방식으로 상업성을 좇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박 교사는 “펭수도 원래 학교를 찾아가는 식의 청소년 콘텐츠였는데 인기를 끌자 점차 성인 콘텐츠로 이용됐다. 요즘엔 성인용 캐릭터, 특히 ‘남초 커뮤니티에서 인기있는 캐릭터’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방송사가 EBS이고 형식이 어린이 콘텐츠인데 어린이가 보기에 부적절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영리추구도 좋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유머코드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며 “아이스께끼(치마를 들추며 놀리는 행위)를 예전엔 웃기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퇴행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EBS 자체 콘텐츠뿐 아니라 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때도 세심하게 따져야 한다. 박 교사는 “디즈니나 지브리가 저작권 계약에 엄격한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를 엉뚱하게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미키마우스가 어린이용 캐릭터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루피가 성인용 콘텐츠로 인기가 있고 이를 이용해 이모티콘 출시까지 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뽀로로 캐릭터 루피를 어른들이 변형한 '잔망루피' 관련 이미지
▲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 루피를 어른들이 변형한 '잔망루피' 관련 이미지

루피는 뽀로로의 친구 캐릭터다. 최근 ‘잔망루피’라는 이름으로 각종 짤이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박 교사는 “루피에 욕을 달거나 ‘군침이 싹 도노’ 등 일베 용어(혹은 일베용어로 보이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걸 좋아하면서 이모티콘 출시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어른들은 정치적·경제적으로도 이용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당시 나경원 후보는 SNS에 본인 사진과 ‘잔망루피’ 사진을 함께 올려 주목을 끌었고, 지난해 7월 뽀로로 공식 제작사 아이코닉스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출시했다. 각종 욕설과 여성비하적 표현이 사용된 것 아니냐는 논란 속에 출시 3시간 만에 이모티콘은 삭제했다가 일부를 수정해 다시 내놓기도 했다. 뽀로로 제작사 관계자는 스브스뉴스가 ‘루피에 대한 관심이 이대로 괜찮느냐’고 묻자 “더 많이 망가뜨려 달라”거나 이런 현상이 “감탄스럽다”고 답했다. 잔망루피 캐릭터를 이용한 상업 활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점점 어른과 어린이 콘텐츠 경계가 무너지면서 부담스러운 쪽은 어린이다. 어른·어린이 콘텐츠를 분리해 봐야 하는 건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쪽(어른)은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한쪽은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고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내것인지 아닌지 걸러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그 부담을 결국 어린이가 져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당장 수익이 늘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딩동댕 유치원이라는) 어린이 콘텐츠의 좋은 역사를 지켜주면 어떻겠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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