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투자만으로는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이 요원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넷플릭스 의존을 벗어나 국내 업체·서비스와의 제휴와 결합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한국방송학회는 19일 ‘아시아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내 OTT의 국가·지역별 진출 전략의 모색’ 세미나에서 K-콘텐츠 해외 진출 관련 방안을 모색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콘텐츠가 해외 기반 OTT 플랫폼의 아시아 진출에 활용돼왔다고 입을 모았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약간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가 없으면 동아시아에서 비즈니스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며 “일주일 전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스트리밍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을 보면 베트남에서 1~8위 드라마가 ‘K콘텐츠’였다”고 전했다.

정작 국내 OTT는 K-콘텐츠만으로 수익을 담보하기 어렵다. 노창희 센터장은 “우리나라가 넷플릭스 수준의 투자로 아시아 가입자를 확보하려 한다면 적자가 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동아시아권이 아니라 북미 등에서도 콘텐츠를 판매해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며 “OTT 플랫폼은 글로벌로 나아가야 하지만, 중장기적 과제와 단기적 과제를 나눠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전략으로는 △수익 공유가 가능한 연계사업(‘쿠팡’ 유료회원 대상의 ‘쿠팡플레이’ 등) △K팝 팬덤 커뮤니티를 활용한 플랫폼(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위버스’ 등) △로컬 통신사와의 요금 제휴 등이 제시됐다. 안영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콘텐츠산업진흥팀장의 제안이다.

▲휴대전화, 태블릿PC 등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는 연출 장면. ⓒgettyimagesbank
▲휴대전화, 태블릿PC 등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는 연출 장면. ⓒgettyimagesbank

나아가 안 팀장은 “아시아권 OTT는 통신사 결합상품 위주로 시장이 이뤄지고 있어 로컬 통신사와의 제휴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뷰’(Viu)는 홍콩 최대 통신사 PCCW, ‘훅’(Hooq)은 싱가포르 통신사 싱텔이 주도한다. 지난해 중국 텐센트가 인수한 말레이시아 기반의 ‘아이플릭스’(iflix)는 통신사와 연계한 월정액제와 더불어 2018년 광고 기반의 ‘아이플릭스 프리(free)’를 출시했다.

다만 구독형 SVOD 서비스 이용이 보편적이지 않은 베트남에 대해선 광고기반 서비스를 통한 진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헌율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베트남은 OTT 이용자 85% 이상이 무료 사용자”이면서도 “스마트폰이 90% 이상 보급된 곳”이라며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을 제시했다.

한편 영국 공영방송 BBC 사례를 들어 공적 서비스와 연계한 플랫폼 육성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BBC가 2007년 시작한 ‘아이플레이어’(iPlayer)는 넷플릭스 등 도입 이후에도 영국 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7일간 BBC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고, 2011년부턴 ITV 등 타 방송사 콘텐츠도 제공되고 있다.

최은경 한신대 교수는 “BBC가 수신료를 인상할 때 아이플레이어 예산을 가장 크게 잡았다. 당시 이렇게까지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옳았다”며 “지난 5년~10년여 데이터를 보면 BBC의 중심 영역과 각축전을 벌이는 SVOD(구독형비디오) 격차가 크지 않다. 거대한 물결을 막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경우 지상파3사와 SKT가 합작한 유료 OTT ‘웨이브’가 있지만, 이를 BBC 모델과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BBC의 유료 OTT 플랫폼으로는 2017년 BBC월드와이드가 ITV와 합작해 출범한 ‘브릿박스’(BritBox)가 있다. 브릿박스는 출시 2년 만인 2019년 3월 미국·캐나다에서 50만 가입자를 기록하는 등 북미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최은경 교수는 “브릿박스는 영국, 캐나다, 호주, 케냐까지 문화적 동질성이 높은 영연방국 등에서 성공하고 있다”며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인 ‘이스트엔더스’가 우리로 치면 ‘전원일기’처럼 최장수 드라마다, ‘닥터 후’처럼 영국 문화를 대표하는 현대물, 고전 드라마도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상 국내 시장에 매몰된 웨이브와는 시장의 범위가 다른 상황이다.

최 교수는 ‘선택과 집중’,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웹툰에 열광하는 나라가 있고, 케냐처럼 한국의 게임을 좋아하는 곳도 있다”며 “인프라 구축, 수출입 등 해외진출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콘텐츠 고리가 많다”고 강조했다.

유럽권 시장은 당장의 진출보다 관련 법제를 뜯어보고 참고할 대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국에 대한 투자가 우선되도록 강한 규제를 시행하는 프랑스가 일례다. 프랑스는 지난해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에 디지털세 3%를 부과하기로 했다. 최근엔 ‘미디어타임라인법’으로 투자규모에 따라 방송사업 권위를 주고 있다.

김설아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프랑스 정책은) 한마디로 자국 콘텐츠 산업에 투자를 안 하면 3년동안 방송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디즈니플러스가 프랑스에서 최근 부진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 3년이 풀리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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