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최저임금 논의를 다루며 노동계와 재계 사이 신경전 또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사이, 정작 최저임금이 각종 지원·보장 제도의 기준으로 쓰여 국민의 삶 전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가려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회 전반의 최저 수준”이라는 최저임금의 본 취지를 잊은 보도라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헌법상 최저임금의 취지를 고려하고 최저임금이 전 국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반영하면, 언론이 최저임금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에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8월4일까지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고시해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심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재계의 동결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노사 간 견해차를 “VS” 형식으로 중계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위는 지난해에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1.5%로 의결했다.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2년 전 인상률도 2.9%로 역대 3번째로 낮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사진=김예리 기자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최저임금은 노사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라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은 대한민국 16개 법령에서 기준이 되는 임금이고, 지자체까지 포함하면 47개의 법·제도의 예산 측정 기준으로 활용된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미치는 범위는 국가의 재난지원부터 손실보상, 사회보장급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를테면 감염병예방법에서 예방접종 피해의 보상 기준으로 활용된다. 사망자의 일시보상금은 최저임금에 240배를 곱한 금액이다. 고용보험법 시행령상 출산과 육아급여 지원기준도 ‘최저임금의 50% 이상’이다. 사회보장급여도 사회보장법 10조에 따라 최저임금을 고려해 급여 수준이 결정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서 용역계약금, 국군포로 가족에 대한 지원금,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금도 마찬가지다. 탈북자와 이주민 정착지원금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김 연구위원은 “심지어 현장실습 수당은 최저임금의 70%고, 군인월급마저 최저임금의 30~40% 선에서 정해진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생계에 곤란을 끼친다고만 강조하지만, 이들은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받는다”며 “결국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영업 소상공인이 최저임금 탓에 힘들다는 주장도 10년 이상 된 레퍼토리이지만 근거가 명확치 않다”고 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최저임금 탓인지 여부는 ‘고용원을 둔 자영업 사업’의 폐업률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지난 2~3년 새 3% 정도다. 김 위원은 “이 폐업률을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봐야 할지, 건물 임대료나 가맹수수료, 프랜차이즈 규제 완화, 자영업 과포화의 문제인지는 구조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은 “반면 2018년 6월 기준 최저임금 인상 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처음 20% 수준으로 내려가, 최저임금 인상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 점은 확인된다”고 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도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매년 5월께 반복되는 주제다. 최저임금을 업종, 지역, 연령별로 ‘형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자는 주장이다. 김종진 부소장은 “경영계가 제시한 차등적용 업종을 보면 조선·운수, 음식·숙박, 시설관리, 서비스 등 비정규직 청년·여성·고령 노동자들이 일하는 업종”이라며 “이들 업종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 올라야만 이를 따라 오르게 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존재 이유는 격차의 문제를 심화해선 안 된다는 데 있는데, 이에 역행하는 주장”이라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8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최저임금 보도 점검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사진=김예리 기자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언론이 차등적용 주장을 경마식 중계하면서 실제와 달리 현실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언론이 양측의 기싸움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차등적용 여부에 ‘표결하러 들어간다’, ‘표결 결과 부결됐다’는 뉴스를 쏟아낸다. 독자들은 보도를 보고 ‘차등적용 가능성이 50대 50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끄덕인다”며 “그런데 이 표결은 매년 논의되는 틀 안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표결이고, 정작 회의에서 경영계는 공익위원의 질문에 정합성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보수·경제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하기관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최저임금 상승률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도 보도했다. ‘2016~2020년 한국의 최저임금 연평균 상승률이 9.2%로 아시아 18개국에서 가장 높았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은 이를 두고 “다소 당황스럽고 충격적”이라면서 “최저임금 비교는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학술계와 노사정 이해당사자의 일반적 흐름이다. 정부 기준도 그렇다. 그런데 이들 주장은 GDP로 볼 때 차이가 너무 큰 국가들과 비교해서 여론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날 “최근 최저임금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진단의 지점을 자극적으로 비화하고 본말을 뒤집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사실 왜곡, 노동자와 노조에 대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기사들이 폭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 위원장은 “최저임금 문제가 과연 그런 시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언론 노동자들이 이 토론회를 계기로 최저임금이 갖는 함의를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폭넓은 시각으로 다루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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