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영화산업노조가 영화스태프 노동 환경 개선을 책임질 주무부처들이 직무태만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상 의무인 노동 환경 실태 조사는 꾸준히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을 협의할 영화노사정협의회는 5년 째 구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단 지적이다. 

영화산업노조는 8일 성명을 내고 “2009년부터 2020년까지 근로 환경 실태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영화산업 주무 부처와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하여 무엇을 했나”라 물으며 “데이터를 뽑아내고 수치만 발표하는데 급급한 조사일뿐 어떠한 후속 조치 없는 실태조사만 수년째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진위는 2009년 영화산업노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함께 구성한 영화산업협력위원회에서 근로환경실태를 조사한 이후 2012년부터 2년마다 조사 보고서를 내고 있다. 지난 6월에도 ‘2020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냈다. 영화산업노조는 이에 ‘10여년 간 조사만 할 뿐 실질적인 개선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규탄하고 나선 것.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

영화산업노조는 크게 ‘영화노사정협의회’와 ‘표준보수지침’ 마련의 답보 상태를 문제로 꼽았다. 영화노사정협의회는 영화산업 노동자·사용자 단체와 정부가 영화산업 진흥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구성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상 기구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노사정협의회와 협의해 ‘표준보수지침’을 마련하고 보급할 의무가 있다. 2015년 개정된 영비법에 관련 조항들이 신설됐지만 노사정협의회는 아직 구성조차 완료되지 않았다. 

영화산업노조는 “노조의 지속적인 요구로 올해 영화노사정협의회 실무진 협의(각 단체 사무담당자 협의)를 2회 진행했지만 협의회 구성을 위한 교통정리도 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협의회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전국영화산업노조 등 3개 단위가 참여하고 정부 측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위원 구성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특히 사용자 단위가 2곳, 노동자 측이 1곳이기에 위원 구성은 노사 동수로 하는 등의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영화산업노조는 표준보수지침과 관련해서도 “2015년 이후 연구조사만 진행되고 있을 뿐, 문체부 장관은 영화산업 표준보수지침을 단 한 차례도 영비법에 따라 발표하지 않았다”며 “문체부 장관의 직무 유기”라고 밝혔다. 표준보수지침은 영화계 내 만연한 무보수 노동과 법적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수 기준을 정하는 제도다. 

▲2003년 한국영화촬영조수협회에서 직접 진행한 한국영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기초 설문 조사 자료사진. 사진=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2003년 한국영화촬영조수협회에서 직접 진행한 한국영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기초 설문 조사 자료사진. 사진=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노조는 영진위가 이번에 발표한 ‘2020년 영화스태프 근로 환경 실태 조사’ 결과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사 표본이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상업영화 종사자들에 편향됐다는 주장이다. 2020년 영진위가 조사한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실질 개봉작’의 평균 순제작비는 14.9억원, 2020년 총제작비가 10억원 미만인 작품은 116편으로 전체의 74.8%를 차지했다. 

노조는 “2020년 근로 실태 조사의 조사대상자 참여 작품 예산별 분포를 보면, 응답자 534명 중 ‘100억 원 이상’ 영화에 참여하는 비율이 39.3%(210명)로 가장 많았고, ‘60억~100억 원 미만’(26.0%, 139명), ‘30억~60억 원 미만’(21.9%, 117명), ‘10억~30억 원 미만’(7.1%, 38명), ‘10억 원 미만’(5.6%, 30명) 순으로 집계됐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에 “위 조사 응답자 중 제작비 30억원 이상의 비중이 87.2%에 이르는데 한국영화결산 자료상 74.8%에 이르는, 10억원 미만 영화에 참여한 영화근로자의 설문 응답 비율은 5.6%에 불과하다”며 “근로 환경 실태 조사는 부유한 30억원 이상의 상업영화에 따른 근로환경을 보여줄 뿐, 실질적인 10억원 미만 종사자 74.8%에 대한 근로환경은 어디에도 없는 셈 아닌가”라 물었다. 

영화산업노조는 주무부처인 문체부에 영화노사정협의회를 직접 주재하고 개최하며, 영비법(제3조의3)에 따라 표준보수지침을 즉시 법률에 따라 발표·시행하라고 요구했다. 또 문체부와 영진위 모두에 단순 수치 발표용 조사를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근로환경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2020년 근로 환경 실태 조사를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근로환경실태조사’로 정정하고 재구성해 발표하거나 발표를 철회하라고도 밝혔다. 

노조는 이주 중에 요구안을 담은 공문을 문체부와 영진위에 발송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문에서 “오는 8월30일까지 요구안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문체부 장관과 영진위원장을 직무유기 등으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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