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학대 피해를 호소하다 숨진 고 이미란씨의 유족이 이씨 사망을 둘러싼 수사기관의 축소 수사 피해를 보상하라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에 나섰다. 이미란씨는 지난 2월 지병으로 숨진 코리아나호텔 고 방용훈 전 사장의 아내다. 방 전 사장은 고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동생이다.

유족은 지난달 29일 정부에 위자료 5억5000만원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 이미란씨 사망 후 이뤄진 경찰·검찰의 사건 은폐와 축소 기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원고는 이씨의 어머니, 언니, 형부 등이다.

유족은 소송 제기를 알린 보도자료에서 “경찰과 검찰의 위법행위로 인해 심대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었다. 이씨의 죽음 못지 않게 그 이후에 이뤄진 사건 은폐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배상소송에서 위법 행위가 인정된다면 반드시 위법행위를 저지른 경찰관과 검사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2019년 3월 이씨 자살을 둘러싼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일가의 위법 행위와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봐주기 수사를 다룬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2019년 3월 이씨 자살을 둘러싼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일가의 위법 행위와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봐주기 수사를 다룬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유족이 축소 수사·기소를 문제 삼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다. 이씨의 자녀들이 이씨를 폭행·감금한 사건, 그리고 방 전 사장과 이씨 큰 아들이 이씨 어머니 집을 찾아와 현관문 등을 손괴한 사건이다.

이씨는 2016년 9월1일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했다. 유족,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이씨는 사망 5개월 전인 4월 께부터 돈 문제로 남편 방 전 사장으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방 전 사장은 자녀들에게도 폭언 등을 부추겼다고 알려졌다. 이씨는 사망 4개월 전부터 지하실에 감금돼 지냈다. 사망 일주일여 전엔 자녀 4명이 이씨를 강제로 사설 구급차에 태우다가 상해도 입혔다. 사망 당일 이씨의 유족이 한강을 수색해 시신을 찾자, 방 전 사장 일가는 바로 다음 날 이씨 시신을 화장해버리기도 했다.

유족들은 이에 2017년 2월 이씨의 자녀 2명을 자살교사 및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존속감금, 공동존속상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를 수사한 수서경찰서는 공동존속상해 혐의만 기소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불기소 처분하고 적용 혐의를 강요죄로 바꿔 자녀 2명을 기소했다.

유족은 담당 검사가 “명백히 상해진단서와 피멍이 든 사진이 존재할뿐더러 여러 가지로 확인된 정황상 상해죄가 인정될 수밖에 없는데 불기소 처분했다”며 “상해가 명백할 경우 불기소로 처리할 이유가 없는데, 형법상 강요죄로 기소한 건 명백히 사건을 축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형법상 강요죄 법정형은 징역 5년 이하이고, 공동존속상해 법정형은 징역 15년 이하다.

이씨가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시신이 발견 직후 화장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당시 유족은 사망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이 상황을 알만한 주변인을 탐문하고 다니자 방 전 사장 등의 주거침입 사건이 발생했다.

▲코리아나호텔 사옥.
▲코리아나호텔 사옥.

 

이씨가 사망한 지 2달 후께 장남 방아무개씨와 방 전 사장은 새벽에 이씨 어머니 자택을 찾아갔고, 현관문을 돌로 내리쳐 파손시켰다. 방 전 사장은 산악용 얼음도끼를 챙겨 현관문 앞에서 위협적 행동도 보였다. 이에 이틀 후 유족이 2명을 주거침입과 재물손괴 혐의로 신고했다.

사건을 맡은 용산경찰서는 이를 불기소 의견으로 서울서부지검에 보냈다. 담당 검사는 방 전 사장은 무혐의로, 장남 방씨는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유족은 CCTV 등 증거가 명백한데 경찰·검찰이 고의로 축소 수사했다며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서울고검이 항고 이유가 있다며 재기수사결정을 내려 수사가 재개됐다.

유족은 이 과정에서 담당 경찰관의 위법행위가 명백하다는 입장이다. 담당 경찰관은 지난 5월께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16년 방 전 사장 주거침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참여수사관을 조서에 허위로 기재한 혐의로 알려졌다. 2019년 해당 수사 과정을 자체 조사한 경찰은 직무유기 등 혐의로 담당 경찰관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고 알려졌다.

유족은 “주거침입, 재물손괴 범죄를 은폐하려고 허위공문서 작성과 직무유기 등 행위를 저지른 경찰관의 행위, 그리고 검찰이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소추재량권을 남용해 법정형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한 건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며 “경찰과 검찰의 사건 은폐, 축소 기소를 입증하기 위해 법원에 두 사건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에 대해 증거신청을 하고, 이씨 사망을 둘러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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