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는 투자자 본인 책임’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제가 확신에 차서 하는 얘기를 듣고 시장에 진입한 분들이 상당수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많이 원망스러우시겠지만 저도 힘들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일간지 경제부 기자 출신으로 ‘알고란’(알기 쉬운 경제뉴스 고란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고란 기자가 지난 19일 비트코인 폭락장을 맞자 구독자들에게 쓴 글이다. 현재 해당 글과 당시 라이브 방송은 삭제된 상태다. 고란 기자가 3년 동안 모은 수익금을 잃게 됐다는 기사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삭제된 라이브 방송에서 공개된 고란 기자가 잃은 수익금은 약 39억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란 기자 사례가 이슈가 되는 이유는 상당한 수익금을 잃었다는 것도 있지만, 기자 출신인 그가 투자 관련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면서 스스로 투자 내역을 공개해왔다는 점에 있다. 기자가 투자 관련 기사를 쓰면서 직접 투자를 할 경우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은 과거부터 있었지만 이를 제재할 법이 없는 상황에서 모호한 방송사 내규를 통해 처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투자 공개 여부 등이 기자 개인에게 맡겨진 상황이다.

▲고란 기자의 '알고란' 유튜브 채널. 수억원을 잃었다는 라이브 방송 이후 해당 방송은 삭제됐고 24일 새로운 코인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에서 고란 기자는 "여러 일이 있은 이후에 또 코인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시장에 대한 관심이 많은 상황이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알고란 유튜브.
▲고란 기자의 '알고란' 유튜브 채널. 수억원을 잃었다는 라이브 방송 이후 해당 방송은 삭제됐고 24일 새로운 코인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에서 고란 기자는 "여러 일이 있은 이후에 또 코인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시장에 대한 관심이 많은 상황이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알고란 유튜브.

“기자가 투자 내역 공개 않고 관련 기사 쓰는 건 잘못”

고란 기자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전 언론사에 다녔을 때부터 원칙이 있었다. 주식이나 코인 등 투자 기사를 쓰는 기자는 시장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투자 내역은 꼭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삼성그룹에 출입하는 기자가 삼성전자에 투자하면 그 투자 내역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해당 기자의 기사 맥락을 읽을 수 있다”며 “기자가 투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관련 기사를 쓰면서 투자 내역을 밝히지 않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투자 내역을 공개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 암호화폐 전문 기자는 “자신이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해도 한창 코인이 오르던 시기 해당 기자가 한 말을 듣고 투자에 들어간 사람이 많다. 이제와 ‘나도 잃었다’며 힘들다고 말하는 건 비난을 받지 않겠다는 책임회피 아닌가 싶다. 투자를 조장하거나 확신을 가진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면서도 “물론 기자가 투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보다 공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암호화폐 시장은 주식보다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별 것 아닌 뉴스에도 크게 등락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면서 “유의미한 보도자료가 아닌데도 암호화폐 시장에선 기사만 나오면 호재(가격이 오르는)가 되는 경우가 있어, 기자가 기사를 쓰고 가격을 올리는 등 악용 사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종목에 투자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100억 벌었어요’ 아슬아슬 코인 보도, 선넘지 않으려면]

▲기자들의 코인 보유 상황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코인데스크코리아의 기자 소개란.
▲기자들의 코인 보유 상황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코인데스크코리아의 기자 소개란.

“독자들 협박 메일 때문에 투자 안한다고 밝힌다”는 기자

3년 동안 암호화폐 관련 기사를 써온 또 다른 언론사 기자는 “암호화폐 기사를 쓰고 있지만 투자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과거에 암호화폐에 투자한 적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상장폐지가 됐다. 사회 초년생으로 적지 않게 느껴지는 금액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걸 보니 이후 투자는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프로필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적어 놓기도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어느날 ‘어떤 암호화폐가 어느정도 올랐다’는 기사를 썼는데, 그 직후 폭락했다. 그러자 일부 독자들이 ‘기사를 보고 암호화폐를 샀는데 바로 폭락했다. 너만 이득을 본 것 아니냐’면서 욕설이 담긴 협박 메일을 보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니 그냥 프로필에 투자를 안 한다고 밝혔다. 추측일 수 있지만 이후 협박이나 욕설 메일이 줄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많은 경제 기사들이 주식이나 암호화폐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2일 한국경제가 ‘삼성바이오가 화이자 백신을 만든다’는 오보를 낸 당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이 크게 올랐다. 기사 댓글이나 종목 토론방에도 “주가 부양을 위한 오보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11월17일 이데일리의 ‘국내 아이큐어, 미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 수입·공급 추진’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사의 원 제목은 ‘국내 아이큐어,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공급’이었는데 계속 수정됐고, 아이큐어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으며, 반면 당초 모더나와 계약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은 또 다른 제약사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에 “왜 기사를 수정하느냐. 기자가 주가 조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청와대 청원에 ‘주가 조작 기자들 처벌을 위한 법안 발의 요청’이라는 청원까지 올랐다.

[관련 기사: ○○○ 세글자에 요동 친 주가…이데일리 보도 논란의 전말]

“투자 관련 방송사 내규 등 토론해야 할 시점”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자의 투자’에 대한 의견이 쏟아지지만 법은 물론이고 언론사 내규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의 투자를 아이템으로 다룬 ‘방송기자’(발행 방송기자연합회) 5·6월호는 주요 방송사에 관련 내규가 매우 모호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내규가 있더래도 방송사가 기자 개인 계좌를 열어볼 수 없어 큰 문제가 터져야만 방송사가 인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송기자 5·6월호.
▲방송기자 5·6월호.

SBS의 경우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사리를 취하거나 거래처로부터 이에 관한 증여, 향응을 받은 자’라는 규정이 있다. 향응을 제공 받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미공개 정보를 통한 사익을 금지하는 조항이라고 보긴 어렵다.

MBC의 경우 △프로그램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주식 및 부동산 거래 등 사적 이익에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증권과 금융 관련 취재 기자 또는 프로그램 담당자는 단기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다 △직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기업 주식에 대한 직접 투자나 지분 참여 등 이해 관계를 맺지 않는다 등의 윤리강령이 있다.

MBC 관계자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려 치고 빠지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며 “기자의 경우 엠바고를 활용해 단기 투자로 수익을 볼 위험이 있다. 이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법이 제재하지 않을 뿐더러 방송사가 개인 계좌를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실제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해도 실질적 처벌 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방송기자’ 편집위원인 한세현 SBS 기자는 방송기자에 쓴 글에서 “각 사들의 관련 규정은 전반적으로 대상 범위가 좁고, 부족하며, 명확하지 않았다”며 “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아 통신·IT가 급격히 발전한 오늘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한세현 기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 투자와 관련해 말들이 많은 상황인데, 젊은 기자와 고참 기자의 세대 차이도 있고 경제부를 출입하는 기자와 그렇지 않은 기자들 사이 차이도 있다”며 “공통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주요 방송사 내규는 모호했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한번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기자는 “내규가 없는 상황에선 어느 순간 사고가 터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기자 사회 전반의 신뢰도가 타격 받을 수 있다”며 “사규를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은 두 번째다. 최대한 의견을 모으고 논의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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