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 기사가 쏟아지던 3월30일. 김윤덕 조선일보 주말뉴스부장이 쓴 ‘성녈이냐 서결이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지면에 실렸다. 칼럼에 담긴 가상의 대화는 이러했다. 

“성녈이가 별의 순간 잡도록 온 우주가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권력을 잡으면 나라에 피바람이 불어유. 재앙이 닥쳐유.” “지금보다 더 큰 재앙이 있겠느냐.” “주군을 배반한 부하가 어딜 봐서 대통령감이래유?” “육골선풍은 아니어도 풍채며 걸음걸이가 그쯤이면 헌헌장부급이니.” “대통령을 누가 풍채로 뽑아유?” “초상집에 젤 먼저 가고, 운전기사랑 국밥 먹는 사내라니 듬직해서 그런다.” (중략) 

지난달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사퇴하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유력 대선후보로 띄웠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3월4일~11일 8일간 ‘윤석열’로 검색된 국내 주요 54개 언론 보도는 3396건이었다. 사퇴 직전 8일간 ‘윤석열’로 검색된 동일 언론보도는 1273건으로 3분의1 수준이었다.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는 현 상황에서 지금까지 ‘정치인 윤석열’의 지지율을 키우고 메시지 관리를 해준 곳은, 돌이켜보면 언론이었다. 언론이 일종의 캠프 역할을 대신한 셈이다. 실제로 윤석열 전 총장은 언론 등장횟수가 많을수록 지지율이 올라가고 올해 초 언론 등장 빈도가 줄어들자 지지율이 급락하는 모습을 반복했다.

4·7 재보선 기간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줄어들자 곧바로 지지율과 연동되는 모습을 나타났다. 지난 4~7일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로 1위, 윤석열 전 총장은 18%로 2위였는데 지난 3월29일~31일 조사에 비해 7%포인트 급락한 수치였다.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 

바꿔 말해, 윤 전 총장은 그 누구보다 잊혀지면 안 되는 입장이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재보선 이후 ‘윤석열’을 키워드로 한 언론 보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재보선 기간에도 “운전기사랑 국밥 먹는 사내”와 같은 이미지가 활자화된 배경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3월2일 국민일보 1면을 시작으로 3일에는 중앙일보 1면, 총장직 사퇴 뒤에는 8일 조선일보 1면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8일자 인터뷰는 윤 전 총장이 정치인으로서 내놓은 사실상의 첫 메시지였는데, 그는 LH사태를 가리켜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후 10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선 “LH투기 사태로 청년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퇴 이후 언론은 ‘띄우기 보도’ 과열 양상을 보였다. 총장직 사퇴 초반, 윤석열 띄우기 보도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뉴스1은 3월8일 ‘윤석열 사주풀이 2년 전 글 주목..“최고 권력까지 갈 수 있다”’란 제목의 기사를 냈고, 서울경제는 같은 날 ‘회장님이 같은 파평 윤씨라서...윤석열 급부상하자 웅진 주가도 상한가’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3월9일에는 조선일보 법조데스크 최재혁 기자가 조선일보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암기력이나 언어 소화능력”을 칭찬하며 “무대울렁증이 별로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3월8일자 헤럴드경제 보도는 압권이었다. ‘누가 왕이 될 상? AI 관상가가 본 윤석열·이재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윤석열 전 총장 얼굴은 왕의 상이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장사꾼의 상으로 분석됐다는 기사였다. 언론은 일종의 ‘대통령 만들기 놀이’에 나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TV조선 3월5일자 메인뉴스 '앵커의시선'의 한 장면.
▲TV조선 3월5일자 메인뉴스 '앵커의시선'의 한 장면.

3월5일 TV조선 메인뉴스에서 신동욱 앵커의 ‘앵커의 시선’도 논란이었다. 신 앵커는 “풍운아 윤석열이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나섰다”고 말하면서 “조국 사태 이후 1년 반, 그에게 몰아닥친 수난은 차라리 인간적 모독에 가까웠다”고 말했고, “그는 고난의 겨울나무였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 코너의 이날 제목은 ‘범이 내려온다’였다. 

이후에도 흡사 ‘윤석열 캠프’ 보도자료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보도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3월14일 ‘“석열아 괜찮냐?” “제 걱정 마세요”..윤석열 부자의 대화법’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한 윤기중·윤석열 부자간 통화내용이었다. 이 신문은 3월23일 ‘윤석열, 101세 철학자 김형석에게 물었다 “정치해도 될까요”’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에 따르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윤 전 총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헌법에 충실하려는, 민주주의에 열정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선일보는 3월29일 ‘“이번 선거는 성범죄 때문…투표해야 바뀐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재보선에 대한 윤 전 총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윤 전 총장은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대한민국 제1, 제2 도시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됐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라고 개탄하며 “그런데도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2차 가해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 사람의 시민일 뿐’임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야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윤석열 전 총장 관련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윤석열 전 총장 관련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4월1일 온라인판에서 ‘[단독] 윤석열, 내일 부친 모시고 사전투표’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이런 것도 단독이 되느냐”며 포털사이트에 항의성 댓글을 달았다. 조선일보의의 4월10일자 기사 제목은 ‘윤석열, 자택서 경제·안보 열공중’이었다. 이 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윤 전 총장이) 국정 전반에 대한 학습 의지가 강하다”는 익명의 발언을 전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8일 “고교동창에게 진심 털어놓은 윤석열…‘언론은 자유롭게 둬야’”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연합뉴스는 “윤 전 총장이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이른바 추-윤 갈등을 겪을 당시 고교동창을 만나 털어놓은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이 14일 공개된다”며 이경욱 전 연합뉴스 기자가 쓴 ‘윤석열의 진심’이란 책이 곧 출간된다고 소개했다. 정치인의 타임라인대로 책이 등장하는 가운데, 저자가 언론인 출신이란 점은 상징적이다. 

정부 여당이 재보선 참패로 위축된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또다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것이고, 언론은 그의 한 마디에 각종 주석을 달며 그를 야권의 정치적 대안으로 묘사하기 바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어느 방송사는 이미 예능프로그램 섭외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정작 전직 검찰총장의 사퇴 직후 정부·여당이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윤 총장을 쫓아냈다는 분석만 다수였을 뿐, 그의 정치 행보를 둘러싼 비판 보도는 찾기가 쉽지 않다. 만약 검찰총장 재임 시절부터 대권을 위한 정치적 행보를 준비해왔다면, 총장 시절 진행된 각종 수사들이 정치적이었으며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만 이 같은 대목에 집중하는 언론 보도는 “부친과 사전투표” “자택서 열공”과 같은 기사에 가려서인지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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