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판하기도 지친다.”

언론인권센터는 9일 논평을 통해 노원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룬 보도에 이 같이 지적했다. 언론이 중대범죄 사건을 다룰 때마다 부적절한 보도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스토킹 문제 대책 등 제도적 개선에 초점을 맞춘 보도도 있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은 문제적 보도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의 이름은 성격을 규정한다. 이번 사건의 이름 역시 피해 사실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모녀 살해(살인)사건’(문화일보, TV조선, 국민일보, 중앙일보), ‘노원 세모녀 사건’(아시아투데이, 파이낸셜뉴스, 아시아경제, 세계일보) ‘노원 세모녀 살해(살인) 사건’ (경향신문, 한국일보, 채널A), ‘노원구 세모녀 엽기 살해사건’(조선일보) 등의 보도가 다수였다. 

피해자와 피해 사실을 사건 이름에 쓰는 건 특정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관행이었다. 이번 사건 역시 경찰이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며 ‘세모녀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범죄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해자’를 중심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 상황이다.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이 규정되고 언론이 피해 아동 신상까지 공개했던 ‘양천 아동학대 사건’ 당시에도 사건 이름 규정은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부르거나 다른 객관적인 명칭으로 사건 이름을 부름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를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 채널A '뉴스A' 갈무리
▲ 채널A '뉴스A' 갈무리

 

▲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은 가해자를 초점에 둔 용어를 썼다. JTBC ‘뉴스룸’은 지난 6일 “지금부터 이 사건을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이라고 부른다”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부각돼야 한다는 점, 또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MBC 역시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이라고 비교적 일관되게 규정하고 있다. 

KBS의 경우 ‘세모녀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한 보도도 있는 반면 ‘노원구 스토킹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한 보도도 있다. SBS는 방송에서는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라고 언급했으나 온라인 기사인 취재파일에서는 ‘김태현 스토킹 살인사건’이라고 불렀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국민일보의 “게임 매너 좋던 김태현이 살인자라고?.. 소름” “‘그 게임 매너남이 김태현이라니, 소름!’ 유저들 깜짝” 기사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는 “그와 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씨는 게임을 하면서도 흥분하는 법이 없었으며,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고 한다” 등 그가 매너 있는 게이머였다는 점을 부각했다. 

▲ 국민일보 기사 갈무리
▲ 국민일보 기사 갈무리

이 뿐 아니라 MBN은 “[단독] ‘김태현, 게임 잘했고 조용한 성격’..유저들 증언”기사를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주위에서 기억하는 김태현의 평소 모습은 평범함이었다. 그와 함께 게임을 해온 유저들은 그를 게임 실력이 좋고 조용한 편이었다고 기억했다”고 전했다.

사건과 무관한 가해자의 과거 SNS 게시글에 주목한 보도도 있다. 가해자의 SNS 추정 계정이 발견되자 언론은 2019년 그가 죽은 반려견에 추모글을 남긴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뉴시스가 “김태현(24)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발견됐다”며 추모글을 보도한 데 이어 매일신문, 부산일보, 세계일보,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 등이 이를 다뤘다. 파이낸셜뉴스의 기사 제목은 “‘좋은 곳 가, 사랑해’..‘세모녀 살해’ 김태현 자신의 반려견에 추모글”이다.

언론의 보도 경쟁이 이어지면서 ‘단독’ 기사도 쏟아졌다. 수사 진행 상황 및 가해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단독’ 기사로 나오고 있다. 포털 네이버 기준 신상 공개 이후에만 31건의 단독 기사가 나왔다. “‘[단독] 신상 공개 통보 받은 김태현 ‘아, 알겠습니다’” “[단독] 세모녀 살해 김태현, 유치장서 신상공개 듣고도 무덤덤”처럼 신상공개 결정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언론이 ‘단독’으로 다뤘다. “[단독] ‘노원 세 모녀 살해’ 피의자 김태현 투표 안해”처럼 그가 재보궐 선거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소식은 사안과 무관함에도 단독 기사로 부각됐다. OBS는 유력 용의자가 ‘큰 딸 전 애인’이라고 오보를 내기도 했다. 

▲ 이데일리 기사 갈무리
▲ 이데일리 기사 갈무리

언론인권센터는 “‘노원구 김태현 살인사건’에서 언론은 오보, 범죄자 서사 부여, 피해자 중심의 네이밍까지 폐해란 폐해는 다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살인사건이 수 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로 사람들 인식에 남게 될지, 스토킹 범죄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법 제정 및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언론의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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