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남편이 산 게 기적이라고 했다. 사고 난 지 2년이 지났지만 후유증으로 생활이 여전히 힘들다. 목뼈부터 척추까지 부서진 후유증이 지금까지 남아 오래 앉아있질 못해 집에 종일 누워있다. 피해자만 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신적인 고통이 누적돼 우울증, 공황장애도 겪고 있다. 삶이 침대와 지낸 지 햇수로만 3년이다.”(피해자 부인 권아무개씨)

2년 전 TV조선 미스트롯 촬영현장에서 추락 산재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안전 감독 책임이 있는 TV조선과 촬영 외주업체가 2년 넘게 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는 지금까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며 사고 전의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산재 피해자 석재욱 촬영감독은 31일 오전 11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13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들 단체는 회견에서 “TV조선과 촬영 외주업체는 피해자가 사경을 헤맬 때만 헐레벌떡 찾아와 허울뿐인 위로를 남겼고 피해자가 산재 사고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자 마치 피해자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며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고, 차일피일 미뤄진 재판은 2년 넘게 공판 한 번 진행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31일 오전 11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13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TV조선 등에 "산재 피해자 석재욱 촬영감독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31일 오전 11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13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TV조선 등에 "산재 피해자 석재욱 촬영감독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석 감독은 2019년 2월18일 당시 첫 방영을 앞둔 미스트롯 세트 촬영장에서 산재 사고를 당했다. 통상 ‘아시바’라 불리는 5m 높이의 가설장비에 올라가 설치된 카메라를 점검하다 딛고 있던 발판이 뒤집어지며 추락했다. 이 사고로 폐쇄성 요추 골절 및 기타 경추 골절, 늑골 골절, 간질, 폐좌상 등의 진단을 받고 6개월 가량 장기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사고 원인은 부실한 안전 관리·감독이었다. 석 감독이 올랐던 가설 장비는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실한 구조물이었다. 구조물엔 별도 안전 장치는 없었고 주변에 추락 방지 장치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석 감독에게 지급된 안전장비도 없었고 스태프 안전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물은 무대 설치용 세트였다. 

석 감독의 부인인 권아무개씨는 “살아난 게 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사고가 위험했다고 밝혔다. 석 감독은 입원 직후 2개월 가량 기억이 없다. 사고 초기부터 정신적인 충격으로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음에도 계속 현장 촬영 지시를 하는 날도 있었고 ‘누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거나 ‘누굴 죽여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 날도 있었다. 

산재 신청이 받아들여져 근로복지공단의 지원을 받았으나 남은 후유증은 더 컸다. 석 감독은 “사고 전엔 어떤 프로그램 현장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카메라로 어떻게 찍었는지를 다 기억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억력이 떨어졌다. 사라진 기억도 많고, 일상을 회복하려고 현장에 나가도 공황장애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며 “다친 허리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해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산재 피해자의 엑스레이 촬영 사진.
▲산재 피해자의 엑스레이 촬영 사진.
▲회견에 나온 산재 피해자 석재욱 촬영감독. 사진=손가영 기자.
▲회견에 나온 산재 피해자 석재욱 촬영감독. 사진=손가영 기자.

정신적 후유증이 커진 데엔 책임을 회피하는 ‘원·하청 책임자’의 문제가 컸다. TV조선과 외주업체 모두 현장의 작업자 안전 관리를 두고 책임을 시인하거나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인도 현장 촬영 지휘자였던 외주업체 소속 메인 촬영감독밖에 없다. TV조선과 외주업체는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2019년 12월 시작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핵심 증인이었던 TV조선 미스트롯 총괄PD의 불출석 영향이 컸다.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법원의 증인 출석 요구에 5차례 불출석사유서를 내고 나오지 않다가 이 사건 공론화가 진행되던 지난 18일에야 증인으로 출석했다. 

형사 재판이 미뤄지면서 손해배상 소송 진행도 자연스레 미뤄졌다. 석 감독은 사고가 난지 5개월 후인 2019년 7월 TV조선과 외주업체, 관련 메인 촬영감독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석 감독 법률대리인 임애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형사재판 경우 보조카메라를 불완전한 가설 장비에 올리고, 누가 피해자를 올려 보냈는지가 주된 쟁점인데, 촬영팀은 방송사 연출에, 방송사는 촬영팀과 세트팀에까지 책임을 미룬다”고 말했다. 

임애리 변호사는 “민사 재판 경우 2심이 끝나기 전까진 배상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피해자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해 계속 치료비는 발생한다. 정신과 증상도 무시할 수 없어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형사 재판은 경찰이 인지해 수사했다. TV조선은 검찰 기소 전 형사 조정에 응하지 않았고 연락이 온 적도 없다”고 전했다.

석 감독은 “사고 초기엔 (원·하청) 업체에서 나를 많이 찾아와 나를 챙겨주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후 ‘나에게 사고 책임이 없다는 문서를 써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외주업체는 산재 처리 기간이 끝나니 ‘언제 퇴사할 거냐’는 연락만 했다”며 “그 뒤 촬영팀이나 방송국이나 연락 온 적은 없고 재판에 피해자 증언을 하러 갔을 때 본 게 유일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가설장비 사진.
▲사고가 난 가설장비 사진.

석씨의 부인 권아무개씨는 “처음 몇 개월은 희망과 재활 의지를 품고 살았지만 심해지는 후유증, 2년이 지나도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는 상황, 법적 책임을 서로 미뤄 재판이 지연되는 모습만 보면서 정말 힘들었다”며 “재활비와 병원비는 끝이 없고, 병원을 가도 통증은 없어지지 않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산재 사고 전과 후의 삶의 질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산재 사고는 한 순간에 한 가정이 무너지고, 한 사람이 무너지는 정말 무서운 일”이라며 “조금의 안전 주의, 스태프에 대한 조금의 배려만 있었어도 하반신 마비 사고(2017년 tvN ‘화유기’ 산재사고)나, 삶의 질이 떨어져 개인이 앞으로의 희망이 없다고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회견 주최 단체들은 TV조선과 외주업체에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석재욱 촬영감독에게 산재 사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라”며 “재판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비롯해 오랜 시간 방치된 산재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TV조선 측은 이와 관련 “사고의 직접적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관방송사로서 사고 직후 위로금을 전달하고 쾌유를 기원한바 있고, 관련 외주업체에도 사고 처리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위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 사건 이후 전 외주사에 대한 근로자재해보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등 외주제작인력의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불의의 피해를 입은 석재욱 감독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TV조선은 향후 외주 제작 인력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외부업체 관계자도 “사고 직후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산재 급여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라고 듣고 프리랜서 촬영감독이었지만 산재 보험을 받을 수 있게 노력했다”며 “저희는 매 재판을 성실하게 참여하고 대화도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자) 완치 후 사무직 업무나 스튜디오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선택해 일할 수 있도록 충분히 논의해왔다. 최선의 노력 다해서 도울 것”이라며 “안전 관리 경우 저희가 연출 측에 얘기해서 수정사항을 말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연출자와 무대감독 등이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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