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 보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법조기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난해까지 ‘불법 승계’를 제목에 올렸던 매체들이 최근 ‘불법 합병’이나 ‘회계 부정’으로 규정을 바꿨다는 지적이다. 일부 매체는 ‘불법 승계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삼성 측 반박을 반영했다. 

서울 지역 법원을 취재하는 A기자는 지난 11일 열린 이 부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을 보도한 뒤 삼성전자 홍보팀의 연락을 받았다. A기자는 기사 제목에 ‘불법 승계’란 표현을 썼다. 홍보팀 관계자는 A기자 측에 ‘불법 승계 규정은 맞지 않고 불법 합병 혹은 회계 부정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제목의 불법 승계 단어는 ‘불법 합병’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렇게 삼성 측 연락을 받고 제목을 수정한 매체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 매체는 ‘합병·회계 의혹’으로 바꾸었고, 또 다른 매체는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으로 사건명을 고쳤다. 같은 재판 기사를 썼던 법조 출입의 B기자도 “홍보팀에서 전화가 왔고 불법 승계 단어를 다른 표현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지난해 10월 열린 1회 공판준비기일과 이달 11일 2회 공판준비기일의 보도 제목을 비교해 본 결과 불법 승계 문구는 실제로 감소했다. 파이낸셜뉴스, 아시아투데이, 뉴스1, 이투데이, 연합뉴스TV, 글로벌경제, 매일경제, 더팩트 등 다수 매체가 지난 10월 ‘불법 승계’, ‘부정 승계’, ‘경영권 승계 재판’ 등으로 사건을 규정한 반면, 이달엔 ‘불법 합병·회계 부정’, ‘합병·분식회계 재판’ 등으로 사건명을 썼다.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는 검찰 주장의 본질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의 합병을 둘러싸고 이어진 공시 자료 작성 및 발표, 언론 대응, 인위적 주가 부양 등을 총체적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로 보고 있다. 실체를 은폐하거나 허위 내용을 공표함으로써 부정한 수단·계획과 위계를 사용해 건전한 시장 질서를 교란시켰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각종 분식회계 혐의도 합병과 관련됐다고 본다. 2014년 합병을 앞둔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려고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부풀리다 한 차례 허위 공시가 이뤄졌고, 2015년엔 바로 이 때문에 삼성바이오가 회계상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자 또다시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일련의 흐름을 혐의로 묶는 전제가 삼성물산 합병의 불법성이다. 검찰은 합병의 진의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이고 이를 최소 비용으로 하려다 각종 불법을 저질렀다고 본다. 법원은 이미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 지원을 대가로 박근혜·최서원씨에 뇌물을 줬다고 판결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은 이 합병 찬성을 주도해 국민연금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유죄 선고를 받았다. 

삼성 측 변호인단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와 합병 간 고리를 끊는데 방어를 집중한다. 합병은 합리적인 경영상 활동이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합병이 순환출자구조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에 대응하고 그룹 지배 구조 개선 및 경영권 안정화 등 여러 측면까지 고려해 결정됐다고 맞선다. 또 합병 후 삼성물산의 신용등급이 상승하는 등 회사가 경영상 이익을 취했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불법 승계 표현 정정 요구와 관련 “검찰이 기소할 때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 사건’이라고 했고, 이 사건명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게 더 공정하지 않느냐고 출입기자에게 설명했다”며 “저희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으니 원래 검찰이 밝힌 사건명을 그대로 써달라는 취지고, 요구나 부탁이 아니라 설명을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출입 기자 사이에선 “수용 가능한 반론”이라는 평가와 “본질을 흐리는 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공존한다. 서울중앙지법을 출입하는 C기자는 “대법원에서 이미 승계 작업의 존재가 인정돼 뇌물 혐의가 확정됐고,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할 때 더 이상 승계는 없을 거라 약속했던 것만 봐도 이 사건에서 승계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는 게 아니냐”며 “안 그래도 회계용어가 복잡하게 등장하는 이번 사건 특성상 시청자·독자들이 문제 핵심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 끝에 나온 단어가 불법 승계일 텐데 사건 쟁점 자체를 희석시키는 의도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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