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임원 11명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재판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삼성 측은 “사실관계와 법리를 모두 틀린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11일 오후 417호 대법정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의 2회 공판 준비기일을 열고 검찰의 공소 사실 요지와 피고인 측 변론 요지를 들었다. 피고인 11명은 모두 불출석했다. 공판 준비기일엔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다.

사건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이 부회장 등 임원 8인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혐의를 받고 있다.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미전실) 차장을 뺀 7인은 당시 삼성물산 등기이사로서 삼성물산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도 적용됐다.

이 부회장과 미전실 임원 4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김태한 전 대표 외 1인 등 총 7명은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 등을 허위 작성한 외부감사법 위반(분식회계)으로 기소됐다. 이밖에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은 2017년 박근혜·최서원씨 뇌물 1심 재판에서,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는 같은 해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1심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를 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검찰 기소 핵심 ‘불법 승계’

검찰은 이 사건을 “이재용 부회장과 그를 보좌하는 미전실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 승계를 목표로 계열사 등 모든 조직 역량을 동원한 불법 합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2012년 ‘프로젝트G’라고 불린 승계계획 청사진을 수립했고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계획안이 본격 이행됐다고 설명했다.

사건의 핵심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검찰은 이를 “이 부회장 지배력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열쇠”라고 봤다. 총수 일가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크게 3개 축으로 지배했다. 지분(4.69%) 직접 취득,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분(7.21%) 확보, 그리고 순환출자 고리로 삼성물산을 통한 삼성전자 지분(4.06%) 확보다.

그러나 현 상태 그대로 상속이 진행될 시 이 부회장 지배력은 현저히 낮아졌다.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은 절반 정도로 축소되고,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삼성생명도 비금융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상당수 처분해야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이 없었다. 이를 이 부회장이 23.23%를, 총수 일가 전체로는 52.24%에 달하는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에버랜드)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해결했다는 설명이다.

“부정한 기교, 중요사항 거짓 기재, 위계 사용으로 자본시장 교란”

검찰은 “그러나 피고인들은 합병과 관련해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를 사용하고 중요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누락하고 합병 거래를 할 목적으로 위계를 사용했다”며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 효율성 제고를 입법 목적으로 두고, 기업과 투자자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위해 기업으로 하여금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자본시장법 위반은 합병을 위한 이사회 의결 단계, 주주총회 단계, 주총 이후 단계로 나뉘어 이뤄졌다”며 “각 범행에서 이 부회장이 (결정권을) 미전실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거나 지시했고, 개별 계열사가 미전실 지시를 받아 구체적 실행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합병이 주주,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 이익과 무관하게 이 부회장 지배력 강화만 목적으로 추진돼 이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봤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합병 비율이 핵심이다. 이 부회장의 최종 지분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주가가 가장 높고 삼성물산 주가가 가장 낮을 때 합병했다는 지적이다.

▲‘삼성 뇌물공여 사건’ 1심 재판에서 언론인들이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삼성 뇌물공여 사건’ 1심 재판에서 언론인들이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검찰은 삼성이 2014~2015년 인위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주가를 조종했고, 주가 조작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합병이 정당하다는 거짓 명분과 논리를 독립 회계법인 보고서, 증권신고서, 보도자료 등을 통해 유포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경영진이 사외이사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은폐하고 거짓 명분만 설명해 이사회가 합병을 형식적으로 추인케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거짓 정보 유포, 투자 위험 은폐, 인위적 주가 조종, 국민연금(삼성물산 대주주) 상대 부당 영향력 행사 등 2년여에 걸친 일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포괄일죄’로 묶었다. 쉽게 말해 같은 범죄 의도로 유사한 범행을 반복했을 때 여러 개의 행위를 하나의 죄로 구성하는 법적 개념이다.

제일모직의 주가를 부풀리는 역할을 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공시에 대해선 “삼성이 투자 위험 정보를 은폐하고 가장했다”고 봤다. 에피스는 삼성바이오의 자회사로, 삼성바이오의 지배력(지분) 수준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달라졌다. 삼성바이오의 지분은 85%였으나 당시 공동 투자자인 바이오젠은 특약조건으로 52%의 주주총회 의결 가중요건, 이사회 동수 구성권, 대표 선임 동의권, 주요 경영활동 사전 동의권 등을 갖고 있었다. 부채로 평가해야 할 콜옵션도 있었다.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아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에 대한 단독 지배력을 보유하는 것처럼 오인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되레 2015년 합병 무렵 삼성바이오가 재무제표상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상황에 놓이자 그제야 지배력 공시를 변경했다. 외부감사법 위반이 적용된 대목이다. 검찰은 2014년 삼성바이오가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공시했고, 2015년 회계 처리 변경 과정에서는 에피스 가치를 4조5000억원 과대 계상해 회계를 분식했다고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 부회장과 삼성물산 등기이사 3명을 포함한 7명에게 “합병 필요성과 시점, 비율의 적정성 등을 검토하고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업무상 임무를 위배했다”며 “이 부회장에겐 지배력 확보라는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삼성물산과 주주에겐 기업 가치 및 주주가치 증대 기회를 잃게 했다”고 배임을 적용했다.

삼성 “검찰, 추상성·막연함에 기댔다” 모든 혐의 부인

삼성은 검찰 주장에 “사실관계와 법리 측면에서 모두 인정하지 못한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수사가 수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압수수색만 수십 번, 계열사 임직원 소환조사만 400회 이상이고 전체 소환조사 횟수는 800여 회다. 사실상 검찰이 전력을 다한 수사였으나 구속영장 청구는 두 차례 기각됐고 관련 행정소송에서도 증권선물위원회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다”며 무리한 수사를 주장했다.

삼성은 자본시장법 위반 주장에 “이 사안은 주가 조작과는 무관하다. 이 사건은 부정거래의 구성요건이 추상적이란 이유로 위법보다 비난 가능성이 있는 행위들을 적용 대상으로 무한히 확장하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합병 주장에는 “법원도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은 목적이 부당해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경영상 합목적성과 경영권 안정 강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이 거론된 삼성물산이 합병 후 경영권이 안정됐고 신용 등급도 합병 전 ‘AA-’에서 ‘AA+’로 오른 데다 규제 대상인 순환출자 고리도 10개에서 7개로 줄었다는 것.

삼성 측 변호인은 “지배구조 문제는 속이려고 해서 속여지는, 숨기려고 해서 숨겨지는 이슈가 아니다. 당시 사실상 모든 언론이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을 이야기했다”며 “자신(피고인)들 입장에서 사업적 필요성과 효과를 중심으로 시장에 설명했을 뿐인데 이게 과연 기망인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안진 회계법인의 합병 비율 보고서도 조작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주들은 투기자본 대응, 삼성바이오의 성장 가치, 합병 후의 실질적 지주회사 효과 등 비계량적 요소까지 고려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이를 다 무시하고 보고서 작성 과정에 논란이 있었다며 평가 결과가 거짓이고 합병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합리적 경영상 판단으로 합병을 결정한 이사들은 합병 성사를 위해 노력해야지 일부 반대가 있다고 해서 합병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며 “오히려 그러면 자기 스스로 임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사가 주장하는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증대 기회 상실이란 추상적 손해는 막연한 가능성에만 기초했다”고도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어 “검찰 수사 단계에선 수세적으로 임했지만 재판에선 대등한 입장에서 검찰 기소의 무리한 측면과 피고인들의 무고함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25일 오전 10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재판부는 향후 재판 진행에 대해 “4~5월 중엔 격주로 공판을 열고 6월부턴 매주 공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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