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위원장 최진주·이하 성평등위)가 성 평등한 보도를 위한 일반 준칙과 각 언론사·언론인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성평등위는 8일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1000부를 발간하며 전자파일도 온라인상에 공개했다. 자체 예산으로 발행한 이 책은 1000부에 한해 언론노조 산하 각 지·본부 및 유관단체에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성평등위는 발간 취지로 “성평등한 보도를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한국 언론인과 학계 유관단체 등이 주축이 돼 한국에 맞는 젠더 균형 보도준칙을 새롭게 제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성평등위는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표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성평등위는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표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책은 크게 7개 목차로 구성됐다. 먼저 세계신문협회(WAN) 성 평등 프로젝트의 일환인 위민인뉴스(WIN:Women in News)가 발간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를 번역했다. WAN 미디어개발부문 이사인 멜라니 워커(Melanie Walker) WIN 대표 인터뷰도 실렸다. 이어 △성차별 용어 및 성범죄 보도 시 유의할 점 △권김현영 교수와의 좌담회 △한겨레 젠더데스크 1년 평가 △지난 1년 성평등위 성명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성희롱 보도 가이드라인 등이 순서대로 실렸다.

WAN은 1만8000개 간행물, 1만5000개의 온라인 사이트, 120개국의 3000여개 신문사 및 출판사 등으로 구성된 기구다. 이들은 WIN이 “뉴스 속 여성의 리더십과 발언권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며 “뉴스룸, 회의실, 그리고 이들이 제작한 콘텐츠 속 남성과 여성 간의 격차 해소를 업계의 주요한 전략으로 생각하는 미디어 조직과 협력한다”고 밝힌다.

WIN은 젠더 균형 가이드에서 “언론이 여성을 평등하게 재현하지 못하고, 그들의 직업과 사회적 역할, 특성을 정형화한다면 젠더 불균형을 더욱 강화시키고 영원히 지속되게 만들 것”이라고 젠더 균형의 필요성을 밝힌다.

WIN은 “여성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독자이며, 사업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BBC의 R&D팀이 영국의 28~45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들었다. 이들이 “자기 삶과 직접 관련된 사안, 실질적 가치를 지닌 정보가 담긴 뉴스에 대한 소비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경우 외교, 지역뉴스와 교육, 평등과 문화 트렌드를 아우르는 사회 분야 뉴스가 여성 독자에게 큰 관심을 끄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양성이 곧 콘텐츠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고도 지적했다. WIN은 “다양한 관점이 더 높은 수준의 창의력과 질 좋은 콘텐츠로 이어지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디어가 문화적 관련성을 유지하고 재정적인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시대에 기업에도 도움을 준다”며 “세계적으로 (독자들은) 성차별주의와 성 고정관념을 다룬 콘텐츠에 대해 더 잘 인지하고 민감해졌으므로 그런 내용을 담은 뉴스를 싣는 언론사는 독자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IN은 ‘젠더 균형에 대한 잘못된 통념’으로 4가지를 꼽았다. “정치, 경제 등 중요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여성 전문가는 별로 없다”거나 “여성 취재원을 찾거나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는 편견이다. 또 “여성 취재원들은 미디어와 대화하는 것을 기피한다”거나 “편집자들은 항상 여성 전문가의 의견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남성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는 인식도 통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WIN은 “여러 언론사들은 이미 이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뉴스룸에서 쉽게 여성 취재원에 연락할 수 있도록, 내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며 “점점 더 많은 뉴스 조직에서 자사 콘텐츠에 여성 취재원 출연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Bloomberge)는 New Voices initiative로 비즈니스와 금융 분야의 여성 전문가들에게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성평등위가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내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성평등위가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내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젠더 균형을 위한 필요한 조치 중 하나로 “젠더 편견과 균형에 대한 보도국 인력 교육”을 꼽았다. WIN은 “모든 직원이 젠더 균형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하며 젠더 균형을 갖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노하우를 지녀야 한다”며 “이 같은 교육에는 유사성(parallelism)과 가역성(reversibility) 방법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역성’은 “남성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표현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 결과 이질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어구가 만들어진다면 해당 표현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것이다. 유사성은 “직책, 인성, 성격 등에서 남성과 여성을 동등히 대우했는지”를 묻는다. 예로 “안내원은 트럼프와 사랑스러운 아내 멜라니아를 안내했다”는 표현은 “안내원은 트럼프 부부를 안내했다”고 정정해야 한다.

이밖에 “여성이 취재의 주된 인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위해 여성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를 취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여성들이 정치, 스포츠, 비즈니스 분야 등의 기사에 바이라인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남성 정치인을 인용하면서 여성은 교사나 주부의 발언만 인용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며 “공평한 언어와 묘사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WIN은 각 언론사들이 젠더 균형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나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로 BBC의 '50:50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들은 1달 단위로 콘텐츠 내 남성과 여성 기고 비율을 측정하고 그 자료를 서로 공유한다.

‘젠더데스크’ ‘성 평등 기구’ 존재 자체가 자원

이와 관련해 멜라니 워커 WIN 대표는 성평등위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경영자들이 조직의 성 평등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관습 측면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WIN은 이 때문에 자문기구를 통해 성 평등을 포용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조직이 필요로 하는 규범과 과제에 대해 논의해왔고, 경영자 집단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성평등위가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내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성평등위가 8일 발간한 소책자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내지. 사진=언론노조 성평등위

 

성평등위는 이번 책자를 펴내기 위해 여성학자 권김현영 교수와 좌담회를 가졌다. 권김 교수는 젠더 이슈와 관련해 “이상하다 생각하는 건, 그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언론인들의 반응”이라며 “나한테는 책임이 없고 데스크 때문, 네이버 때문이란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다. 책임이 많이 분산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실제 문제는 누가 해결해 갈 수 있나?”라고 물었다.

권김 교수는 “본인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맞다”며 “기자들이 ‘유아차(유모차의 성평등 표현) 꼭 써야 하냐 그거 안 쓰면 욕 먹냐’고 물어본다. 쓰지 않으면 벌점을 받거나 혼나냐, 대중이 멍청하다고 욕하냐고 궁금해하는데 그 질문을 들은 저로서는 그게 왜 궁금하지? 욕 안 먹으면 안 바꿀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 질문 말고 유아차가 유모차보다 왜 올바른지를 알려주는 기사를 쓰면 된다”는 것이다.

정치·경제 등 분야의 여성 전문가 풀이 실제로 매우 좁은 고충도 있다. 오예진 성평등위원은 “경제 분야는 여성전문가 코멘트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성전문가를 의식적으로 접촉해서 언론에 노출되게 해야 하나?’ ‘전문가면 되지 왜 여성 전문가가 중요해?’ 라는 질문을 한다면 뭐라 답해야 하나 생각하게 됐다”며 “여성단체 경우 언론 전담자가 없어서 응대가 미숙한 경우가 있다. 의식적으로 컨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 전문가를 기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김 교수는 젠더 균형을 위한 KBS, 서울신문, 한겨레 등의 조직적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KBS는 2018년 성평등센터를 설립했고 서울신문과 한겨레는 2019년 각각 성평등연구소와 젠더데스크를 신설했다. 권김 교수는 “한겨레가 젠더데스크를 처음으로 만들어서 좋은 건,제가 만났던 분들 모두 젠더데스크를 만들어볼까 하는 고민이 있다는 것”이라며 “젠더보도 기획팀을 다중적으로 구성한다거나 각 언론사가 가진 수준과 필요에 따라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 논의할 때 몇 가지 사례가 이미 등장해 있다는 사실이 굉장한 자원”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성평등위원은 한겨레 ‘젠더데스크’를 두고 “사내의 경우 일반 폭력 사건, 고용 구조 문제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인사 때마다 관리자 여성 비율을 상향하기 위한 제안과 노력을 했다”며 “성폭력 사안에 국한되지 않은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기 위한 사내 연구 모임을 조직하고 성인지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제안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 등 여러 조직을 통해 언론계 전반에서 이런 논의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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