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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5)] `도꾸누끼`(落種)
[언론계 은어(5)] `도꾸누끼`(落種)


기자의 숙명 ´특종´과 ´낙종´

기자의 숙명은 특종입니다. 하지만 낙종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특종의 짜릿한 기쁨이나 낙종의 가슴 쓰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같은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특종을 했다면 나머지 수십 여명의 기자들은 낙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낙종을 얘기할까 합니다. 낙종(落種) 은 일본어로 ´도꾸누끼´라고 부릅니다. 도꾸나니(특종)와 도꾸누끼. 그 묘한 관계처럼 발음도 비슷하죠.
특종과 낙종은 산술적인 기준으로 평가될 수도 돼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언론사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종은 모든 기자가 돌아가며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한번의 특종 뒤에는 수십 번의 낙종이 불가피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기자가 특종을 했다 해도 그 다음에 낙종했다면 이전의 공은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눈치를 보거나 경쟁을 하게 됩니다. 타사 기자가 특종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거죠. 특히 한 출입처에 액물이 있을 경우에는 나머지 기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액물´은 기사 가치가 높지도 않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알고 있어 기사화 되지 않는 내용을 기사화해 동료기자를 아주 피곤하게 만드는 기자를 칭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기사라 할지라도 일단 타사 지면에서 보도가 될 경우 데스크로부터 깨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거죠.

낙종 두려워 손목을 묶고 자기까지...

한 선배의 경험담입니다. 같은 경찰서를 출입하는 중앙일보 기자 중에 액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기자들은 그래서 이 기자가 바깥에만 나갔다 들어오면 일일이 어디에 갔다 왔는지 체크할 정도였습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하루는 동아일보 기자와 둘이서 점심을 먹고 기자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두 명 모두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이 자는 사이에 또 무슨 취재를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손을 묶어 놓고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재미있지만 처절한 담합을 한 거죠.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새천년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사진. 사진을 찍은 기자는 세계일보 기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세계일보와 동아일보에 각자 다른 기자 이름을 달고 보도됐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사진을 ´도둑질´한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찍을 수 있는 위치에는 세계일보와 동아일보 기자 둘만 있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상황이 발생하자 두 명 모두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지만 누가 사진을 더 잘 찍었는지 몰라서 서로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그림이 있는 쪽의 사진을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가판이 나가고 사진의 반향이 의외로 커지자 세계일보 측에서 "동아일보 기자 이름으로 나간 사진은 우리 기자가 찍은 것이니 아예 동아일보 기자 이름을 빼던가 아니면 세계일보 제공으로 기사 크레딧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끝까지 자사 기자 이름을 빼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동아일보 기자의 사진이 더 좋았다면 반대로 세계일보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또 기자들끼리 약속을 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낙종에 대한 불안감은 이렇게 언론사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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