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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4)] 도꾸다니(特種)
[언론계 은어(4)] 도꾸다니(特種)

철컹철컹. "아! 씨...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소리가 큰 거야." 선배 생일턱 술자리에서 한 잔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불꺼진 복도는 저쪽 끝 벽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갑자기 소름이 돋아온다. 요즘 특수부 검사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했더니 뭔가 냄새가 났다. 어제 만났던 검사도 "더 이상 얘기해 줄 수 없다"며 은근히 모종의 사건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오늘 집에서 나오면서 운동화 한 켤레를 더 챙겼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는 금물이다. 옷도 어두운 색으로 입었다. 기자생활이란 게 다 그렇지만 약간의 자부심도, 겁도 난다.

"9층은 공안이고 10, 11층은 특수야. 정치인들의 비리는 주로 특수부에서 맡는데 걔네들은 보안이 심해서 신원확인이 안되면 들여보내질 않아. 이럴 땐 죄수 호송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돼. 일반 엘리베이터는 서지 않거든." 법조 출입 첫 날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요령은 들었지만 막상 하려니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에 가로놓인 철장 부딪히는 소리에 행여 눈치챌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걸리지는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해 온다. 심장의 펌프질 소리까지 전해오는 느낌이다. 저쪽 검사실에서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저기다. 취재수첩을 꺼내고 문에 귀를 대고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의원님. 업체에서 돈을 줬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래 이거다. 특종이다.

기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게 바로 특종입니다. 기자 사회에서는 이 말을 도꾸다니(特種)라고 부릅니다. 특종은 기자 자신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 언론사 전체의 사기를 올려놓기도 합니다.
서울지검을 출입하는 기자들을 법조 기자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세 곳을 청와대, 국회, 법원이라고 합니다. 이 중의 한 곳이니 법조 출입 기자들이 얼마나 바쁘고 치열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신문을 잘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법조 소식이 사건이 적을 때는 1∼2면, 옷로비 의혹사건처럼 많은 때는 4면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 말을 바꾸면 언론사간에 특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특종을 낚기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겁니다.

앞의 상황은 한 선배에게 들었던 경험담을 약간 각색한 내용이지만 특종을 하기 위해서는 하리꼬미(잠행취재)를 하거나 타사 기자들 몰래 이런 일도 하게 된답니다. 접근이 어려운 특수부나 공안부 검사실에 가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때론 눈치 빠른 검사에게 걸려서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이럴 땐 "방금 와서 제대로 못 들었다"고 대충 얼버무린 후 회사로 최대한 빨리 연락한 후 다음 판부터 기사를 넣는다고 합니다. 그 다음 그 검사에게 전화해서 "사실은 이러저러한 얘기를 들었다. 미안하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 검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최소한의 배려를 하기 위해서죠.

언론사의 특종 중에서는 이렇게 한순간에 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난번 옷로비 의혹사건처럼 오랜 시간동안 끈질긴 취재 끝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옷로비 사건은 한겨레가 떠도는 소문을 듣고 취재해 기사화 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출입처에서 특종이 나오면 기자실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특종한 기자를 붙들고 "야 너 혼자 도꾸다니할 수 있느냐"라는 원망 섞인 말부터, 취재원에겐 "당신 이럴 수 있느냐. 한번만 더 그러면 어디 두고 보자"는 협박까지 합니다. 살벌해지는 거죠. 그래서 물먹은 기자들은 만회를 하기 위해서 한동안 바짝 독이 올라 취재를 합니다. 기자의 수치는 다름 아닌 낙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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