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프리랜서’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1주기 추모제에서 청주방송 규탄 구호가 반복됐다. 청주방송이 고인 명예회복을 위한 합의를 지키지 않으며 1년 내내 갈등을 빚고 있다. 참가자들이 대주주인 두진건설로 항의 행진하자 두진건설은 ‘부당 행위 규탄’ 명목의 맞불 집회까지 열었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4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청주방송 앞에서 고 이재학 PD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를 열었다. 충북·서울 대책위를 비롯해 유족 이슬기·이대로씨, 김혜진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청주방송 사태는 4일 새 국면을 맞았다. 유족은 오전 청주지법 민사2부에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재개를 신청했다. 청주방송 측 합의 파기에 따른 결과다. 소송은 이 PD 사망 후 법원 강제 조정 절차를 거치면서 진행이 중단됐었다. 

▲4일 오후 1주기 추모문화제 후 고 이재학 PD 영정사진을 들고 청주 거리를 행진한 유족 이대로씨. 사진=손가영 기자.
▲4일 오후 1주기 추모문화제 후 고 이재학PD 영정사진을 들고 청주 거리를 행진한 유족 이대로씨. 사진=손가영 기자.
▲4일 고 이재학 PD 1주기 추모문화제 후 진행된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들었던 현수막. 사진=손가영 기자.
▲4일 고 이재학 PD 1주기 추모문화제 후 진행된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들었던 현수막. 사진=손가영 기자.

 

조정은 이 PD 명예회복 및 청주방송 고용구조 개선 등을 두고 청주방송, 언론노조, 유족, 대책위 등이 지난해 7월 합의한 약속이었다. 항소심을 진행 중이던 유족에 사측이 이 PD 명예회복을 골자로 한 조정문안을 약속하며 사건을 조정으로 종결하자고 제안한 것. 그러나 이두영 이사회 의장(두진건설 회장)을 포함한 이사회가 지난 6개월 가량 조정을 거부해왔다. 

김선혁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추모사로 “1주기에 이재학 PD를 편히 보내줄거라 믿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추모제가 아니라 또 다른 투쟁을 한다는 결의대회로 만들었다”며 “민주노총과 대책위는 법원 재판 전, 재판이 진행되면 또 다른 투쟁을 만들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1심부터 이재학 PD를 대리했던 이용우 변호사도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과 청주방송의 합의 파기에 대한 법적, 비법적 책임을 묻는 투쟁을 진행하겠다”며 “이두영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책임자 2명에 대한 징계는 아직 시작도 안했고, 이 PD와 동고동락한 기획제작국 작가들의 처우도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부지부장은 “또 다른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 이재학 PD 메시지를 끝까지 안고 가겠다”며 “방송작가지부 조합원들, 지금도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 모두가 이재학”이라고 추모했다. 

그는 “작가들이 프리랜서 PD들에게 갖는 짠한 마음이 있다. 힘들게 일하는 걸 안다. 방송 만들며 자주 싸우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동지애로 방송날까지 버틴다”며 “이 PD님 해고 전 ‘내 월급은 못 올려도 같이 일한 조연출, 작가 월급은 적어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을 보고 마음이 미어졌다”고 밝혔다. 

▲두진건설 사옥 앞에 설치된 이재학 PD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두진건설 사옥 앞에 설치된 이재학 PD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1주기 추모문화제 종료 후 유족이 이 PD 영정사진을 들고 눈물 짓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1주기 추모문화제 종료 후 유족이 이 PD 영정사진을 들고 눈물 짓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해 3~6월간 이 사건을 조사한 김혜진 청주방송 진상조사위원장은 “영전에 진상조사위 권고안이 온전히 이행된 결과를 바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재학 PD 용기가 여러 사람의 힘이 되게 산처럼 끌어올리는 것이고, 우리가 알게 된 수많은 이재학들과 그 길을 걷는 것”이라며 “가장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방송계 기득권과 왜곡된 고용 구조를 바꾸는 길은 ‘이한빛’으로부터, 이재학으로부터 또 많은 우리들로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한빛은 2017년 과로와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문제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CJENM 고 이한빛 PD다. 

“청주방송 임직원들은 왜 보이지 않느냐”는 질타도 나왔다. 이 PD 누나 이슬기씨는 “이 자리는 건물 안 저들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 부정의, 불의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저들”이라며 “아침마다 선전전을 하며 가끔 회의감이 든다. 추위 속에 피켓을 들고 누굴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지만 동생을 위해, 이재학 PD가 그렇게 원했던 그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며 “이재학 PD는 불씨다. 그 불꽃이 꺼지지 않게 대로(동생)와 저, 여러분이 조금만 더 힘내면 좋겠다”고 밝혔다. 

추모제는 청주방송 대주주인 두진건설 사옥 앞에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청주방송 집회가 끝난 후 두진건설까지 30여분 행진했다. 유족이 이 PD 영정을 들고 첫 줄에 섰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이 PD 추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걸었다. 

▲4일 두진건설 직원 5~6명이 ‘부당시위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고 1주기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을 비판했다. 같은 시각 두진건설 사옥에 걸린 현수막. 사진=손가영 기자.
▲4일 두진건설 직원 5~6명이 ‘부당시위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고 1주기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을 비판했다. 같은 시각 두진건설 사옥에 걸린 현수막. 사진=손가영 기자.

 

같은 시각 사옥 앞에서 ‘맞불 집회’가 열렸다. 두진건설 직원 5~6명이 ‘부당시위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폐쇄된 사옥 입구 주변에 추모제 참가자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예닐곱개 걸었다. “대주주 회사가 무슨 죄냐”, “청주방송과의 문제를 왜 두진에 와서 떼쓰나”, “청주방송 구성원들은 자성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다. 

청주방송 실질 지배자는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이다. 두진건설은 2001년 주식회사 두진(전 두진공영)에서 분리된 건설사다. 청주방송 지분은 두진이 29.6%, 두진건설이 4.6%, 이두영 전 회장이 2.0% 등을 보유했다. 두진건설 이규진 사장은 이두영 회장의 아들이다. 

선지현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 활동가는 맞불 집회에 대해 “이두영 회장은 이재학 PD가 근무했을 때도, 해고됐을 때도, 사망했을 때도 회장이었다”며 “경영진이 합의해도 갑자기 결정을 번복하는 등 걸림돌은 매번 이두영 회장이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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