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에 징역 9년을 구형했다. 뇌물·횡령 액수만 86여억원이고 뇌물 범죄를 정상 거래로 둔갑시키는 등 죄질이 나쁘며 뇌물을 받은 박근혜·최순실씨도 중형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대통령 직권남용의 피해자에 가깝다며 집행유예를 주장했다. 

30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뇌물, 횡령, 범죄수익 은닉, 위증 등 혐의를 사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2017년 2월 이 사건 재판이 시작된 지 약 4년 만, 파기환송심이 시작된 지 1년 3개월 만이다. 

공범으로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징역 7년이,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겐 징역 5년이 구형됐다. 특검은 또 대법원이 뇌물로 인정한 말 ‘라우싱’도 이 부회장으로부터 몰수해달라고 밝혔다. 라우싱은 2016년 삼성이 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전달한 7억원 대 고가의 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형량이다. 특검과 삼성은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실관계 판단을 수용하고 형량을 다퉜다. 대법원은 최서원씨 소유 회사 용역대금(36억 3484만원), 정씨에게 건너간 말 3필(34여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16여억원) 등 총 86여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대통령 측에 뇌물을 주며 당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의 도움을 얻겠다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고 봤다. 당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삼성그룹 최대 현안이었고 이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의 도움이 이 부회장 뇌물의 대가였다며 이 부회장과 대통령 사이 ‘묵시적 청탁’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뇌물·횡령 ‘80억원’, 집행유예 어림없어”

특검은 이 부회장 권고 형량 범위를 징역 5년~16년 5월이라고 봤다. 핵심 범죄인 횡령과 뇌물 모두 형량 가중 요소가 감경 요소보다 많다는 이유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횡령은 징역 5~12년, 뇌물공여는 징역 3년 9월, 위증은 징역 8월 등으로 셈해 권고 형량 범위를 징역 5년에서 16년5월로 합산했다. 

횡령 경우, 특검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삼성물산 주주, 국민연금공단 가입자 등 대량의 피해자를 낳았고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범죄 수익을 고의로 은닉했고 범행 수법이 불량하며, 지배권 강화나 기업 내 지위 보전 목적이 있는 범죄다. 범행 후 증거은폐도 시도했다”며 7개 가중요소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감경요소는 3개일 뿐이라며 “피해액이 상당 부분 회복(변제)됐고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을 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특검은 “재판에 불리하니 면피용으로 급하게 피해 금액을 변제했다”며 “삼성준법감시위 실효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진지한 반성’ 요소도 인정되지 않아 감경 요소는 2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서원씨 딸 정유라씨가 2017년 5월3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YTN 갈무리
최서원씨 딸 정유라씨가 2017년 5월3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YTN 갈무리

 

뇌물 관련 형량 셈법도 마찬가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 지원을 대가로 대통령 측에 적극적으로 뇌물을 줬다고 본다. 청탁 내용이 불법이고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데다 피지휘자(임직원)들을 교사하는 등 가중 요소는 4개인 반면 감경 요소는 ‘진지한 반성’과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2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준법감시위? ‘새 기구 만들었다’ 이상 의미 없어”

재판부가 양형 요소로 반영한다고 밝힌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두고 특검은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양형요소 인정 기준은 ‘재벌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성이 기준”인데, 현황은 새로운 준법 감시 제도를 가졌다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다. 

특검은 “재판부가 지정한 전문심리위원 3인의 평가는 심리 기준에 따르면 모두 부정적”이라며 “특히 심리위원이 준법감시위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만큼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위원 3인도 인정한다. 평가 결과도 이견이 표출되는 등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총수 범죄 재판 '걸림돌' 돼버린 삼성 준법감시위

특검은 사건과 관련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상호 ‘윈윈’하는 사이로서 계속적으로 검은 거래관계를 형성하고 장기간 지속했다.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당했다는 이 부회장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며 “승계작업은 이 부회장이 최소 개인 자금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지배권을 양적·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법·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대통령 편의를 받은 점에서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인 2015년 7월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인 2015년 7월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이 사건 본질은 ‘대통령 직권남용’, 집행유예 적정”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집행유예를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는 ‘수동적 뇌물’이라며 “뇌물을 요구한 대통령 직권남용에 따른 기업의 불법 지원이 이 사건 본질”이라는 것이다. 수동적 뇌물은 양형 기준상 감경 요소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하며 지원을 요구한 건 공소사실에도 적혀있고 최서원씨 뇌물수수 재판에서도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가 인정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대통령 뇌물 강요의 피해자라는 주장은 1심 때부터 계속된 논리다.

삼성이 주장하는 이 부회장 권고 형량 범위는 징역 2년 6월~7년 6월이다.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 경우 권고형량이 징역 2~3년이므로 집행유예가 적정하거나 타당하다고 밝혔다. 횡령 경우도 징역 2년 6월에서 5년, 국회감정법 위반인 위증도 집행유예가 권고된다는 입장이다. 

삼성 측은 “부당한 청탁도 없었고 어떤 특혜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위법이 아닌 대주주 지배권 강화를 개편일 뿐이고 계열사의 이익도 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대법원이나 최씨 판결에서도 승계 작업은 성질상 고정불변이 아니라 사회적·제도적으로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유동적, 추상적, 가변적이니 어떤 청탁을 해도 구체적으로 직무 집행이 특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부정 청탁이라고 지목한 바이오 산업 투자 유치,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건 등은 “재계의 공통 요구 사안”이거나 “경영권 방어 강화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대량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지적엔 “주가 폭락, 연쇄 부도 야기, 피해자 대부분이 재산을 잃거나 근로자, 채권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주는 경우에 준한다”며 이 경우에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삼성준법감시위 운영을 양형 요소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은 보여주기 식이라고 하는데 근거없는 비하”라며 “위원장과 위원들도 삼성에 비판이거나 최소한 중립인 분으로 모셨다. 비판적인 인사가 다수 있는 외부 기구가 삼성을 준법 통제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이고, 주요 임원 중에 준법감시기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심리위원 한계 지적엔 “보완할 수 있는 건 이미 보완했고 앞으로도 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08년 4월4일 '삼성 비자금' 특검에 소환된 당시 이건희 회장.ⓒ민중의소리
▲2008년 4월4일 '삼성 비자금' 특검에 소환된 당시 이건희 회장.ⓒ민중의소리

 

뇌물 재판에 ‘국격’ ‘산업 경쟁력’ ‘이건희 별세’ 왜 말하나

이 부회장은 최후변론에서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는 “수십 년된 글로벌 유럽 기업이 한 순간 무너지고 일본 기업도 고전하는데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중국 기업을 보며 항상 위기의식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며 “그러던 중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고 경황없던 와중에 대통령과 독대가 있었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 설립을 권고한 재판부에 “단순한 재판 진행 그 이상을 해줬다.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준법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이재용은 어떤 기업인이 돼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줬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준법경영의 변화를 실감한다”며 재판부에 “법무팀 검토가 끝났는지, 이 문제는 준법감시위가 봐야 하는 게 아닌지 등 민감한 사항은 묻고 또 묻는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존재는 네 차례 언급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고 이 회장 영결식에서의 추도사를 두고 “선대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아 지금의 삼성을 키운 이건희의 예를 산업사에 찾지 못했다며 ‘승어부’를 말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게 진정한 효도고, 선대보다 크고 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의 효라는 말씀”이라며 “최근 아버지를 잃은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에 쏟아진 많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삼성은 달라지겠다. 저부터 달라지겠다”며 “사회 기여에 집중하고, 재벌 폐혜로 지적된 점도 과감히 고치고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선고 공판은 내달 18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312호 중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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