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기업의 산재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통과를 위해 17일째 단식 중인 산재 유가족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신속한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를 하루 앞둔 28일부터는 또 다른 산재 유가족 3명도 단식에 동참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27일 오후 2시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마다 2400명씩 어제도 오늘도 죽어 나간 노동자와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 앞 단식 농성자는 현재 5명이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재 사망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CJENM PD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정의당 원내대표 강은미 의원, 이상진 운동본부 공동위원장은 지난 11일부터 17일째 단식 중이다. 국회 정문 밖에는 김주환 대리운전노조위원장 단식이 21일로 접어들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지난 26일 국회의사당 앞 농성장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곧 우리 아이들의 법'이라는 취지로 아이들의 신발을 농성장 앞에 전시했다. 사진=정의당 페이스북.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지난 26일 국회의사당 앞 농성장 앞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곧 우리 아이들의 법'이라는 취지로 아이들의 신발을 전시했다. 사진=정의당 페이스북.

단식 장기화로 농성자들 건강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7일부터 단식 농성했던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지병이 악화돼 26일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이상진 위원장은 “지병을 감추고 있다가 어제 상태가 위험해져 강제 후송 조치됐다”며 “너무나 참담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김미숙 이사장은 회견에서 “매일 6명 이상이 죽고 매일 여섯 가족 이상이 지옥으로 간다. 나처럼 아파할 그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에 하루하루가 피가 마른다”며 “성탄절에 한가로운 국회를 보니 참담한 심정이다. 연말이 코앞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처럼 절박한 정치인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김 이사장은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국민의힘을 모두 질타했다. “민주당은 야당이 법사위 논의에 나오지 않으면 여당 단독이라도 처리해달라”며 “사람 생명을 살리는 법이야말로 그 어떤 법보다 최우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국민의힘에는 “논의엔 들어오지 않겠다면서 민주당이 단일안을 내면 들어온단다”며 “나중에 들어와서 법안 내용을 희석시킬 거라면 국민들이 안 참는다. 당장 성실히 논의에 나서라”고 비판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여야 의원님들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까”라 물은 후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어 “당신들이 가족과 함께 편안한 연휴를 보내고 있을 때 자식을 잃은 저희는 국회의사당 앞 노숙 농성장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참고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한빛이를 죽인 세상을 그대로 두고 죽을 수가 없다. 일터와 재난 참사로 죽은 수십만 명 죽음들의 한을 그대로 두고 죽을 수가 없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만들기 위해 제 목숨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드리겠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27일 오후 2시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심사를 미루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사진=운동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27일 오후 2시 국회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심사를 미루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사진=운동본부
▲지난 24일 단식농성장에서 김미숙씨 모습. 사진=운동본부
▲지난 24일 단식농성장에서 김미숙씨 모습. 사진=운동본부

그는 이어 2014년 방한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일각에서 ‘정치적 편향’ 비난을 받던 세월호 참사 유족에게 한 말을 언급했다. 그는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고 말했다. 생명과 기업 이윤 사이에 중립은 없다”며 “그런데 어찌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재계 눈치만 보고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을 방치하고만 있느냐”고 물었다.

28일부터는 산재 유족 3명이 단식 농성에 함께 한다. 광주 하남산단 한 공장에서 파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사망한 고 김재순씨 아버지 김선양씨, CJ진천공장의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사망한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씨 어머니 강석경씨,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한 청년노동자 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다.

이 밖에도 사회변혁노동자당 김태연 대표, 노동당 현린 대표, 이진숙 충청남도 인권위원장 등 시민사회 대표자 3명이 같은 날 단식 농성에 동참한다. 이들 6명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될 때까지 단식을 이어간다.

오는 29일엔 국회 법사위가 두 번째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심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법사위는 지난 24일 소위를 열고 법안 심사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심사했다. 의사 일정 협의가 불발돼 민주당이 소위 소집을 야당에 통보하자 국민의힘이 일방적이라며 반발해 회의를 보이콧했다.

운동본부는 27일 “국민의힘은 29일 참여도 불투명하다. 앞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고, 실제로는 기업 눈치만 보면서 핑계 찾기에만 골몰하는 국민의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을 여당 단독으로 심의하고 통과시키던 그 기세는 어디 갔느냐. 민주당은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본회의까지 반드시 통과시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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