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정태씨는 2014년 2월 펴낸 책 ‘논객시대’에서 우리사회 진보논객들을 분석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공론장과 논쟁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비판적으로 살폈다. 논객시대 챕터를 채운 이들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등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글쓰기와 각종 논쟁으로 수놓은 이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거나 안티조선운동과 같은 미디어 운동을 주도했고, 이방인·비주류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논객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법도 하지만 이들 논객 중 일부는 신문이나 방송, 저서를 통해 여전히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들 사이 견해는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때때로 동조한다. 특히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에서다.

“어용 지식인” 유시민과 ‘진보 스피커’ 김어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정권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했다. 그는 2017년 5월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지식인이거나 언론인이면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건 옳다”며 “그러나 대통령만 바뀌는 것이지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이 사방에 포진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의당 평당원이지만 범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듬해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하차했고 지난해 1월부터 노무현재단이 제작하는 ‘알릴레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재개된 시즌3에서는 ‘정치 비평’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지만 앞선 시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했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첨예하게 맞서며 ‘어용 지식인’ 역할에 심혈을 기울였다. KBS 법조팀이 조국 전 장관 보도를 왜곡했다는 주장으로 사회부장이 보직 사퇴하고 해당 법조팀이 사실상 인사 조치되는 등 그는 지난해 이슈와 논란을 몰고 다녔다.

▲ 왼쪽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방송인 김어준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 왼쪽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방송인 김어준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나는꼼수다’ 김어준씨는 2016년 9월부터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존 공정과 균형이라는 방송 문법에 개의치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 편향 논란과 공영방송 진행자 자질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어떤 경쟁 매체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4일 발표한 2020년도 4라운드 서울·수도권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12%의 청취율로 1위를 기록했다. 2018년 조사부터 1위에 오른 뒤 2위와 압도적 격차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편향성과 공정성 시비는 최근에도 불거졌다. 김씨는 지난 25일 방송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판사에 대해 “검찰과 사법이 하나가 돼 법적 쿠데타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본인의 검찰총장 임기를 내가 보장해줄게’ 이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국 전 장관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유죄 판결에는 “판사가 (편파적) 언론 보도를 즐기면서 그 운율에 맞춰 춤춰서 내린 판결”(유튜브 ‘다스뵈이다’)이라고 혹평했다.

1심 재판부가 정 교수 입시비리 공범으로 적시한 딸 조민씨가 지난해 10월 인터뷰한 매체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TBS가 편향적 성향의 출연진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논객시대’ 저자 노정태는 최근 신동아 인터뷰에서 유·김 두 사람의 ‘어용화’를 묻는 질문에 “진보 논객들이 발전담론, 성장담론을 죄악시하거나 설계하지 못하니 퇴행적으로 복수나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돌아온 ‘독한 혀’ 진중권… 신작서 문 비판 강준만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형 선고가 나오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 18위가 그였다. 기자협회보는 “수많은 인물 중 정체성이 가장 독특한 인물이 있었으니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였다. 당·정·청 및 외교안보와 코로나19 관련 인물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중에 진 전 교수는 1~6월 2093건 인용되며 18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면서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당 등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문재인 정권에 독설 수위를 높여왔다. ‘조국백서’에 대응해 ‘조국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저자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23일 마지막 페이스북 글에서도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며 “빤히 알면서도 대중을 속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조국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날조해 음해 공작까지 벌인 열린민주당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추인해 온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또 “이상한 증인들 내세워 진실을 호도해온 TBS의 뉴스공장”, “여론을 왜곡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곡학아세를 해온 어용 지식인들” 등도 비판한다고 했다. 유시민·김어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이다. 그는 최근 펴낸 책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에게 보인 태도를 보자면, 문 정권의 인사 실패였던 게 분명하다”며 “문 정권은 해임이라는 ‘정면 돌파’ 대신 윤석열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전략을 집요하게 구사했다. 윤석열은 끈질지게 버텼고,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으로 추미애를 투입하면서 ‘지저분한 싸움’의 농도는 짙어졌다”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검찰 개혁’은 ‘윤석열 죽이기’ 프로젝트로 변질되고 말았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유시민 이사장에 대해 “문재인에게 유리하면 뭐든지 선이요 정의라고 보는,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진영논리’에 중독”됐다고 평한 뒤 “나는 유시민이 ‘어용 지식인’과 ‘어용 시민’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패러다임 자체를 의문시하면서, 누구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하는 셈법을 잠시 유보하면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기여한 ‘정치의 종교화’ 자체를 바꾸는 데에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김어준에 대해서도 “이들은 늘 ‘거대 꼼수(음모)와 싸운다’며 자주 음모론을 양산해낸다”며 “엉터리 음모론으로 밝혀져도 매우 당당하다.(중략) 물론 김어준의 (사실이 아닌 위험한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닥치고지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들 역시 음모론이 선사하는 ‘피해자 행세’가 ‘권력 재생산 메커니즘’일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 왼쪽부터 홍세화씨, 강준만 교수, 박노자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한겨레TV 갈무리.
▲ 왼쪽부터 홍세화씨, 강준만 교수, 박노자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한겨레TV 갈무리.

문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한 홍세화

또 다른 진보논객 홍세화씨는 지난달 한겨레 칼럼에서 문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했다. 홍씨는 이 칼럼에서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라고 비판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선 문 정권 주류를 이루고 있는 86세대를 ‘민주건달’로 지칭하고는 “지금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듯, 진보도 진보가 아니다”라며 “분단체제에서 수구세력, 즉 극우적인 반북 국가주의자들이 보수를 참칭했고,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운 자유주의 보수 세력이 진보를 참칭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23일 YTN 인터뷰에서는 정부·여당이 주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 “검찰에는 민주적 통제를 가해야지 또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 통제한다는 건 결국 옥상옥이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가령 기소에 문제가 있을 때, 민간이 참여해 기소를 심의하게 하든지 피해를 받은 민간에게 공소권을 준다든지 등 방식도 있다. 권력기관을 통제하기 위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며 “현 정권은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 뭔가 해소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비판한 경제학자 우석훈도 지난달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사법개혁이 과연 그렇게 모두가 달려가서 풀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풀리는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사법개혁을 한다고 해서 내놓은 방안들이 옳은 해법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임기 기간 동안 아까운 시간을 애먼 일하면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면서 공수처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청년 세대가 소외되고 있는 것에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 5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정치인과 관료 몇 사람이 낙하산으로 성과를 다 가져갔다. 정치 실패이자 무능이다. 정치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과잉 대표됐다”고 지적했다.

공수처 지지한 박노자 “공권력 중립적이어야”

진중권 전 교수와 함께 사회문화평론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던 진보지식인 김규항 작가도 지난 3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처럼 ‘리스트’만 안 만들었을 뿐이지 진영 논리는 그대로 있다”면서 “또 하나는 감성의 문제인데 진보 진영 내에선 여전히 ‘적’을 상정하고 그것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이상한 의식구조가 강하다. 조국 구하기에 나선 진보진영은 검찰을 ‘적’으로 상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정경심씨 판결과 윤석열씨 복귀는 ‘상식의 회복’에 속하는 일”이라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목표인 사람도 있고, 현재의 상식에 질문하며 더 나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둘 모두에게 일단 다행스럽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작가 고종석씨는 개인 SNS에서 문 정권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반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논객도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지난 11일 한겨레TV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에 관해 “조국 교수 같은 분들은 한국사회 상류층”이라며 “문제가 됐던 일부는 상류층 관행에, 다른 일부는 교수사회 관행에 가까웠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화가 절로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검찰이 조국 교수 신상을 털 만큼 털었다. 그러나 (교수의) 대학원생 착취 사건 같은 게 하나도 안 나왔다. 성희롱 등의 사건도 없었다”며 “이런 교수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대한민국 교수사회가 그만큼 부패했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

박 교수는 “저는 조국 교수도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검찰이 공권력이 아닌 하나의 정당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총장이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에 “한국사회가 민주화됐다고는 하지만 완벽한 제도화는 아니다”라며 “검찰 권력 같은 공권력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상대화해야 한다”면서 공수처 설치에 찬성했다.

박 교수는 진 전 교수에 대해서도 “(진 전 교수가)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다. 현 집권층과 권력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대통령이 한국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아니다. 대통령과 권력자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대통령은 5년짜리”라고 했다. 또 “진 선생이 길게 보셔야 한다. 만약 극우가 집권하면 ‘윤석열들’한테 다음 순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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