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PD들의 ‘무단 녹음’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해야 할까. 기사 목적으로 취재원의 동의 없이 음성을 녹음한 뒤 방송한 언론사는 위법한 것일까. ‘공인의 음성권’을 심층 분석한 논문이 나와 주목된다.

SBS 보도본부장 등을 지내고 지난 2월 퇴사한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부교수(법학박사)가 한국법학원이 발간하는 ‘저스티스’ 12월호에 게재한 논문 ‘공인의 음성권에 대한 연구’는 지난해 대법원이 기각한 ‘뉴스타파 소송’을 중심으로 우리사회 음성권 논의를 분석했다. 음성권이 재판에서 독자적으로 다퉈지고 인정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논문은 전직 KBS 보도국장인 임창건씨가 지난 2017년 7월 뉴스타파와 당시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현 KBS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반론보도 등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하고 확정된 판결에 대한 논의다. 1·2심 재판부는 뉴스타파 보도가 허위라는 임씨 주장을 배척하고 정정과 반론보도 청구,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 7월 1심은 임씨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해 인터넷 방송(뉴스타파)으로 재생한 것은 위법하다며 4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듬해 2월 2심은 음성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400만원 외에 초상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200만원을 추가해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뉴스타파 측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9년 6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판결이 헌법에 반하거나 법령을 잘못 해석한 경우가 아니고,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지 않으면 사건 자체를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임씨와 뉴스타파 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먼저 알아야 할 사건은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이다. 지난 2011년 KBS 기자가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KBS 수신료 관련 비공개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해 그 내용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었다.

6년 뒤인 2017년 재수사를 촉구하는 사내 여론이 증폭하며 재차 이슈가 됐는데,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의 최경영 기자는 도청 의혹 사건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임씨에게 전화해 2011년 상황을 문의했다. 최 기자는 대화 내용을 동의 없이 녹음했고 이후 보도에도 사용했다. 임씨가 허위 보도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인 초상권과 음성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 지난 2017년 12월 당시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이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 2017년 12월 당시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이 서울 양천구 SBS 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심석태 교수는 논문에서 재판부 논리를 분석했다. 1·2심 재판부는 보도에 공익을 위한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대화 내용에 관해 최 기자가 ‘뉴스타파 최경영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고 도청 의혹 사건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취지를 밝혔으나, 보도를 위한 취재라는 점, 녹음을 하고 있다는 점, 임씨 진술을 보도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더해 최 기자가 임씨를 ‘선배’라고 호칭하며 통화했다는 점을 들어 임씨가 이 통화를 최 기자와의 사적 통화라고 생각했을 것이지 보도를 전제로 하는 취재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뉴스타파 측이 음성 변조나 비실명 처리 등과 같은 임씨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이를 인용했다.

심 교수는 뉴스타파 판결 이전의 여러 판결문을 검토한 뒤 “초기 음성권을 인정하는 법리를 설명하지 않거나 혹은 사생활 침해 법리를 원용하던 것에서 이제는 헌법 제10조를 음성권 인정의 직접적 근거로 보는 것은 기본적 법리로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며 “음성권 침해 유형으로 녹음하는 행위와 녹음된 음성의 사용을 구분해서 단계별로 별도 침해를 인정하는 것도 정착된 법리”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상대 음성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 음성을 변조해 특정인의 목소리라는 점을 알 수 없도록 조치한 경우에는 음성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 등에 비춰보면, “동의 없는 녹음 자체만으로 한 유형의 침해는 성립하지만 재생이나 방송 등의 경우 동일성 유지 여부에 따라 침해 인정이 결정될 수 있겠다”는 것. 현행 법리에선 언론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게 음성을 변조할 경우 음성권 침해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다는 취지다.

뉴스타파 판결을 다시 보자. 심 교수는 임씨의 공인성에 대해 “수백 명에 달하는 기자들을 지휘하며 보도를 총괄하는 보도국장 지위를 생각하면 재직 당시에 일어난 공적 관심사에 대해서는 최소한 ‘제한적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언론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 사건”이라며 “재판부는 이 사건이 ‘공적 관심사일 수 있다’고 보면서도 대화의 성격을 원고(임창건)가 사적인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최경영 기자의) 면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객관적 대화 내용과 성격보다 원고의 주관적 인식을 앞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설명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통화 내용은 도청 의혹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사건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원고(임창건)와 대화하며 녹음된 것이므로 공익을 위한 정당한 목적이 인정되고, 원고의 당시 지위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 진술을 확보해 이를 이 사건 보도에 사용할 필요성도 인정되기는 한다”면서도 최 기자가 임씨에게 녹음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위법성 조각을 부인했다.

이에 심 교수는 “무단 녹음이 언론 윤리적으로 권장될 사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전직 고위 언론인이 탐사·고발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언론사 소속 기자가 전화를 해서 이런 공적 사안을 문의하는데 취재가 아닌 사적 대화로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으로 적정한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결국 법원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공적 관심사에 대한 취재에서 위법성 조각 사유를 부인한다면 언론 전반의 취재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또 심 교수는 “이 사건 당시 보도책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언론계에서는 특정이 될 정도의 인물”이라며 “음성을 변조하거나 사진을 모자이크하는 것과 무관하게 당사자가 특정될 수밖에 없는 사안인데, 실명을 가리고 음성도 변조하고, 초상은 모자이크를 했어도 보도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의문”이라고도 밝혔다.

다시 강조하면 “이런 사건에 대해서까지 책임자 실명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하며 초상을 모자이크 처리해 개인의 인격권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공적 논의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비추어 타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단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자신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상대방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이 아니다. 자신이 참여한 대화라 하더라도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을 형사 처벌하는 법조항이 없다. 아이폰을 제외하면 국내 휴대전화 대다수는 통화 녹음 기능을 장착하고 있고 자동 녹음 설정 기능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통화 중에 녹음을 한다. 심 교수는 “자신이 참여한 대화까지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불법행위로 보는 기존 판례 법리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으며, 상대방이 소송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침해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논문의 결론에서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러 기본권들이 실질적으로 존중받게 됐다. 인격권도 점차 관심의 폭이 넓어지면서 보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기본권 보호가 일방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방향에서 기본권 보호를 확대해 나가면 다른 방향의 기본권은 축소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즉, “명예권, 초상권, 사생활권, 음성권 등의 보호 범위가 확대되면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축소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지금은 민사 판결을 통해 불법행위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으로 음성 녹음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심 교수는 말한다.

참고로 심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원칙적으로 동의 없는 녹음을 속임수로 보고 금지하면서도 자기 통화 녹음이 법으로 금지되지 않은 곳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BBC는 정확한 취재를 위한 기록 용도로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사생활 보호 관점에서 당사자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면 형사 처벌한다. 음성권 보호 방침이 확고한 독일은 언론의 경우 제3자가 녹음한 음성을 제보 받아 보도할 때만 공익적 필요가 인정될 경우 형사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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