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중사유
(1) 성폭력 누범 (2) 미성년자 대상 범죄 (3) 반성의 기미 없음

감경사유
(1)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2) 범인의 나이가 고령

미성년자를 강간, 폭행한 50대 남성 J가 법정에 섰다. 내가 판사라면 어떻게 판결할까. ‘다시 재판’ 사이트에서는 누리꾼이 판사가 된다. 사건의 개요, 관련 법, 양측의 입장을 살펴본 다음 ‘직접’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사건은 총 4가지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조두순 사건 등을 모티브로 했다. 

‘다시 재판’은 팀 ‘ITPAS’(IT People Against Sexism)가 제작했다. 성차별, 여성혐오에 맞선 IT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개발자, 디자이너, 데이터 분석가 등이 활동하고 있다. 앞서 이들은 언론의 성차별적 보도를 감시하는 ‘언론이 또’ 사이트를 개설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일 비대면 방식으로 ‘ITPAS’의 구성원인 류, 하코, 퍼플, 제롬을 만났다.

▲ '다시 재판' 화면 갈무리.
▲ '다시 재판' 화면 갈무리.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어떤지 분석해보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류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판결을 접하는데, 뉴스는 선정적이고 단편적이다. 이런 뉴스를 통해 접하면 쉽게 분노하지만 또 쉽게 가라앉는다. ‘비평적 개인’으로서 범죄와 재판을 바라보게 하고, 이로써 시스템을 바꾸는 데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다시 재판’은 사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판사’ 역할을 부여한다. 사안을 요약한 정보를 제공하되 전반적인 공판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했다. 

재판을 따라가다 보면 판결하는 순간이 온다. 기본적인 형량을 정하고 ‘감형’과 ‘가중’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용자가 선택한 형량은 기록으로 남는다. 퍼플은 “성인지 감수성과 국민 정서에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보여주기 위해 구성했다. 데이터가 모이면 시스템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 '다시 재판' 모바일 화면 갈무리.
▲ '다시 재판' 모바일 화면 갈무리.

“화가 나서 키보드를 강하게 칠 때가 많았다.” 류의 말이다. 제작 과정에 어려움을 물었는데 ‘분노’를 느꼈다는 답이 이어졌다. 이들은 공개된 성범죄 관련 판결문을 일일이 분석했다. 제롬은 “계속 판결문을 읽어야 하니 일상에서 분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하코는 집단 고발이 이뤄진 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했는데 피고인들의 성만 공개된 상황에서 다들 성이 같아 구분이 어려웠다. 알고 보니 친족 강간 사건이었다.

류는 “판결들을 분석해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형은 상향되는데 실제 판결 수위는 낮아졌다. 법원에서 감경제도를 통해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유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경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황당한 감경사유’를 사이트에 반영했다.

사이트는 완성됐지만 과제가 남았다. 퍼플은 “판결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선 전체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판결문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하코는 “판결 양식이 규격화되지 않고 판결마다 형식 자체가 달라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언론이 또’ 사이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언론이 또’는 언론의 여성혐오 표현을 자동 집계하는 사이트다. ‘여중생’ ‘여배우’ 등의 표현을 ‘부적절한 표현’으로, ‘몹쓸 짓’ ‘손찌검’ ‘홧김에’ 등을 ‘축소 및 은폐 표현’으로 ‘악마’ ‘인면수심’ ‘괴물’ 등을 ‘악마화 및 비일상화’ 표현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등을 참고해 만든 기준이다. 6개월 동안 집계해 2만3683건을 수집한 결과 문제적 표현이 포함된 기사가 많은 언론은 중앙일보(370건)였다.

▲ '언론이 또' 화면 갈무리.
▲ '언론이 또' 화면 갈무리.
▲ '언론이 또' 화면 갈무리.
▲ '언론이 또' 화면 갈무리.

언론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하코는 “미디어가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부추기는 게 아닌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며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문제가 있는 표현을 쓰고 있는지 분석하고 알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자들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이 같은 표현이 얼마나 문제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기자 출신인 류는 ‘언론이 또’를 접하고 나서 합류했다. 그는 “내가 속했던 한 언론사에선 취재원이 남성이면 성별을 표시하지 않고 여성이면 괄호치고 ‘여’라고 쓰게 했다. 그때도 부끄러웠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언론이 또’는 아카이빙한 데이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퍼플은 “단순히 보여주는 걸 넘어 실제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아카이빙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기자가 문제를 인지하고 수정할 경우 리스트에서 삭제하도록 했다. 잘못된 표현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을 ‘제안’할 수 있게 했고, 해당 기자에게 지적을 전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있어?” 이들이 종종 듣는 말이라고 한다. 이들은 ‘그렇다’고 입을 모았다. 제롬은 “인공지능은 기존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다. 올바른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만연한 데이터가 차별적인 것이 많다 보니 AI가 차별까지도 학습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류는 “오히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성차별이 최첨단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재판 사이트)
https://retrial.misogynyx.com/

언론이또 사이트)
https://again.misogynyx.com/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