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대부분 이 말이 맞다. 나 또한 지난날 내가 뭘 했던가? 어제 점심에 뭘 먹었나 조차도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떠올린다. 잊을만도 하구만, 아니 잊혀질만도 하구만 그녀는 아직도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쪄면 영원히 못 떠날수도 있을까봐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려온다. 

한진중공업 최초 여자 용접공 김진숙. 스물 하나 어린 나이에 입사하여 우수사원도 받았던 그녀가 노조를 결성해 근무조건개선을 요구하다 결국 해고되었고 아직도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35년째다.

그녀와는 15년여 전인 2006년 내가 부산지하철 민간위탁 매표소에서 부당해고 되어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던 때에 만났다. 원래 정규직이 하던 매표업무를 민간위탁으로 전환하면서 그곳이 나의 일터가 되었다. 처음 매표업무를 시작했을 때, 정규직들에게 우리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자기들 일터를 뺏은 그야말로 박힌 돌을 뺀 ‘굴러온 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정규직은 아니지만, 비록 정규직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일터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달린 소중한 일터였다.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열심히만 하면, 내가 크게 잘못만 하지 않으면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3개종교노동연대(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들이 12월9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김진숙 노동자 복직 및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3개 종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3개종교노동연대(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들이 12월9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김진숙 노동자 복직 및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3개 종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하지만 그런 일터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를 대신해 그 자리에는 기계가 들어섰다. 억울한 마음에 눈에 독기만 남아 아무것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그때 늘 우리 곁에서 함께 해주셨고 강의라도 해서 작은 돈이라도 생기면 천막농성장에 들러 고스란히 내어주셨다. 그리고는 다정스레 말했다. “고기 사먹어.” 함께 식당엘 가면 삼겹살을 구워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쌈을 싸주시며 마냥 좋아라 웃으셨다. 사실 난 쌈을 싫어하는데도 너무 고마워서 계속 먹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작은 체구에 생각보다 큰 눈치장을 했다면 상당히 예뻤으리라 짐작이 가는 외모였다. 괜한 경계심에 천막에 들린 그를 슬쩍슬쩍 훔쳐보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짧은 머리에 까만 뿔테안경, 작업복은 아닌데 외출 복장이라기엔 뭔가 다소 센스 부족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번 오다가 말겠지 했지만, 그 뒤로도 그녀는 늘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부산시장 선거캠프 점거농성을 할 때도, 시청에서 서면까지 오체투지를 할 때도, 서면 한복판에서 노숙농성을 할 때도, 출퇴근 선전전을 진행할 때도 어김없이 함께였다. 그리고 그녀는 늘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그 말이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우리를 끝까지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나고 초봄이 되어서야 우리의 투쟁은 끝났다. 나도 나의 일상에 젖어 그 시간을 조금씩 잊기 시작했다. 그녀도. 

▲2011년 6월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50여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011년 6월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50여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그렇게 무심히 살다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건 한진중공업 앞에서였다. 그녀는 너무 높아 잘 보이지도 않는 크레인에 있었고, 나는 8차선 대로를 건너 인도에 서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밤 85호 크레인 위에서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 쑥스러운 듯, 담담하게, 나지막히 읊조리듯 부르던 그 노래가 생각이 난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고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렇게 어떤 진실을 만나기 위해 35년을 해고자로 살아 온 그가, 친구였던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단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그가 눈물겨웠다. 그렇게 늘 자신의 복직은 미루고 35년동안 동료 노동자들의 복직과 투쟁을 도와왔던 그에게 어떤 고마움을 우리는 전할 수 있을까. 

이 땅 위에 당당한 노동자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고픈 그 단순한 바람이 죄가 되어 젊음을 다 보내고 해고된 채로 정년을 맞이하는 이때, 암과 사투를 벌이는 힘겨운 병상에서 조차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나의 마음에도 작은 불꽃이 일렁이게 한다. 이젠 복직이 되어도 젊은 시절 작업복에 소금꽃나무가 필 정도로 일하던 청춘으로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녀가 평생을 갈망한 그 현장에서 당당히 작업복을 입고 동료들과 함께 땀흘 리고 떠들고 웃고 하는 모습을 단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보고 싶다.

그 시간을 이젠 우리가 함께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2월 19일엔 전국에서 350대의 드라이브스루 희망차가 한진중공업으로 온다고 한다. 그날 그의 복직이 이루어진다면, 가끔은 꿈이 이루어진다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노래 가사처럼 슬픔은 끝나야 한다.

12/19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전국 350대 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희망차 참가 신청

▲전국 350대 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희망차 참가 홍보 포스터
▲전국 350대 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희망차 참가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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