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고용되지 않은 기자가 공공기관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우수한 보도에 수여하는 상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자 범위는 언론사 채용 시험을 통과한 여부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다.

전남 광주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 김동규(24)씨는 11일 광주·전남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광주민언련)에서 주는 민주언론상 대상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 5월부터 학교법인 도연학원이 운영하는 명진고등학교 각종 비위를 연속보도했다. 광주민언련 측은 “지역에서 ‘명진고 사태’를 가장 적극적으로 집중 보도해 이슈를 주도했다. 지역 내에서 큰 반향도 일으켰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크게 ‘스쿨미투’와 교사 해임 사태가 논란이었다. 2018년 3월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 고발을 시작으로 교사의 성희롱·성추행을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전국 확산됐다. 광주 명진고도 그해 9월 관련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지면서 교사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폭로됐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진을 두고) 너네도 이때 태어났으면 위안부였다. 성노예”라거나 “사업을 할 때 여자를 조사해라.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 등의 발언이다.

▲명진고 학생과 교육운동 단체 등이 지난 5월14일 명진고 정문 앞에 '교사 부당 해임 철회' 현수막을 걸었다. 시민기자 김동규씨도 동참했다. 사진=김동규씨 제공.
▲명진고 학생과 교육운동 단체 등이 지난 5월14일 명진고 정문 앞에 '교사 부당 해임 철회' 현수막을 걸었다. 시민기자 김동규씨도 동참했다. 사진=김동규씨 제공.

 

조사를 진행한 광주교육청은 해임(7명), 정직(4명), 감봉(1명), 견책(1명), 경고(3명) 등으로 명진고에 가해 교사들 징계를 요구했다. 명진고는 끝내 교사 1명만 해임했다. 해임은 견책으로, 정직은 경고로 징계 수준이 완화된 교사들도 다수였다. 김씨가 보도한 문제 중 하나다.

김씨가 명진고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교사 부당 해임 사건’이다. 2017년 교사 공개채용에 응시했던 손아무개 교사는 1차 합격 후 도연학원 실질 지배자로부터 5000만원을 요구받았고 이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최종 합격해 2018년부터 교사로 일했으나 이후 도연학원 비리를 수사한 검찰에 이 사실을 진술하자 지난 4월 해임됐다.

부당함에 분노한 학생들이 지난 5월 직접 행동에 나섰다. 트위터에 ‘#명진고사학비리’, ‘#잘못된_것을_바로잡는_것’ 등의 문구를 집단적으로 태그하면서 온라인상 공론화를 시도했다. 그러다 “부당해임 철회하고 선생님에게 사과하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학교 앞에 걸었다. 

이때 김씨도 현수막을 거는 데 참여했다. 지역 사회운동을 하고 있던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해 공론화에 나섰던 학생과 논의를 하던 터였다. 학교는 고소로 대응했다. 해임 교사,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대표, 광주교사노동조합 위원장, 뉴스1 기자, 명진고 재학·졸업생 4명 등 총 10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여기에 김씨가 포함됐던 것. 

▲명진고 학생들이 지난 9월24일 교사 부당 해임 철회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동규씨가 현장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 사진=김동규씨 제공
▲명진고 학생들이 지난 9월24일 교사 부당 해임 철회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동규씨가 현장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 사진=김동규씨 제공

 

김씨는 이를 계기로 기사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기사 9편을 연재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쓴 ‘명진고 저항자들’이란 이름의 기획 보도다. 자신을 보호해 줄 회사가 없는 프리랜서 기자에게 명진고는 소송으로 보복했다. 명진고와 그 관계자가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김씨를 고소한 건만 4건이다. 1억원 손해배상 소송은 따로 진행 중이다. 

수상에 감사함을 표한 김씨는 “전혀 예상 못했다. 보통 이런 상은 언론사 기자들이 받았고, 특히 ‘대상’은 언론사 소속 기자만 받았다”며 “아는 기자들이 ‘머리에 죽비가 내려 쳐진 기분이다. 광주 민언련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라거나 ‘뜻깊은 수상’이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언론사 소속이 아닌 시민기자가 값진 결과를 거뒀다고 지역 기자들이 박수쳐 준 것.

김씨가 언론상을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김씨는 지난해 5·18기념재단과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주는 뉴미디어 콘텐츠 부문의 ‘5·18언론상’을 받았다. 그가 6여년 전 개설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의 콘텐츠가 선정됐다. 현재 가입자 5만5000여명 이상의 영향력 있는 페이지다. 

김씨는 ‘기자 신분증’을 갖진 않았지만 기자에 준하는 취재·보도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인권운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회운동가로 일했다. 공론화는 그의 일의 연장선이자 필수였다. 자연스럽게 활동 시작 때부터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어 SNS에 공유해왔다. 그러다 명진고 사태에 접어들어 취재까지 병행했다. 

광주의 한 일간지 기자는 김동규씨 수상에 이례적인 학력도 언급했다. 언론사 기자들 학력은 단일한 편이다. 대부분 ‘4년제’ 일반 대학 대졸자고,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경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의 십수 개 대학 출신 기자들이 대부분으로 다양하지 않다. 김씨는 지역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고졸’이다. 

▲지난 3월 서울 당산동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추적단 불꽃'. 사진=정민경 기자.
▲지난 3월 서울 당산동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추적단 불꽃'. 사진=정민경 기자.

 

지난해 9월 뉴스통신진흥회 '1회 르포물 공모전' 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난 6월 방송학회 특별상까지 받은 ‘N번방 추적단 불꽃’도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아니다. 대학생 기자 2명이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했던N번방 사안을 취재해 최초 보도했다. 이후 한겨레가 이를 집중 보도하고, 불꽃의 취재물을 각 매체들이 받아 재가공하거나 다시 취재해 보도하면서 크게 공론화됐다. 

이들이 취재물을 공개할 수 있었던 통로는 뉴스통신진흥회다. 연합뉴스의 대주주이자 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지난해 5월부터 언론사 기자가 아닌 이들까지 대상에 포함한 르포·탐사보도물 공모전을 매년 2회씩 열고 있다. 기성 언론이 다루지 못했거나 소홀한 주제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취재물을 적극 발굴한다는 취지다. 

민주언론상 심사위원 문병훈 광주민언련 고문은 10일 통화에서 “프리랜서 기자가 자신보다 거대한 권력과 사회 병폐에 용기있게 맞서 싸우면서 공익에 기여한 부분을 의미있게 봤다”며 “언론 범주를 더 넓게 보는 일환이었다. 소위 ‘엘리트’처럼 여겨지는 공채 기자가 아니어도 시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기사를 낸 결과를 중요하게 봤다”고 밝혔다.

김동규씨는 “(협의의) ‘언론인’이 될 생각은 없지만 지금까지 했던 대로 계속 언론 활동을 할 것”이라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언론 의미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걸 깨달았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가능성이 있고, 지금의 언론 질서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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