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제보가 들어왔다. 인천국제공항 개항(2001년 3월29일)을 며칠 앞둔 시점으로 공항 출입기자단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기자는 개항 전날 인천으로 향했다. 공항 2층에 마련된 중앙기자실에는 20여개의 언론사 부스가 있었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부사장이 브리핑을 위해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실 간사인 오아무개 YTN 기자가 기자들을 부르길래 함께 자리를 잡았다. 

부사장이 브리핑을 막 시작했는데 오 간사가 이를 끊었다. “출입기자로 등록 안 된 사람 있으면 나가세요” 주위를 둘러보던 최경준 오마이뉴스 기자는 잠시 뒤 자신을 지목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최 기자는 ‘왜 나가야 하는지’ 따졌다. 그러자 ‘40여개의 눈동자’가 최 기자를 향했다. 오 간사는 짜증을 내며 최 기자를 쫓아냈다. 최 기자는 이날의 일을 기사에서 “인천공항의 출입기자실은 출입금지기자실이 돼있었다”고 썼다. 

▲ 공항 모습. 사진=pixabay
▲ 공항 모습. 사진=pixabay

 

공항 개항일인 3월29일 최 기자는 공항을 다시 찾았다. 공항 측 브리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것도 취재해야겠다’고 판단해 기자실에 들어갔다. 한 기자가 최 기자에게 다가와 나가라고 했다. “누구나 와서 취재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그 기자는 “몇천명이 취재한다고 몰려오면 어떻게 취재할 수 있느냐”고 받아쳤다. 

공항 공보실을 찾았다. 공보실 직원은 최 기자에게 잔뜩 쌓인 보도자료조차 내주지 않았다. 공보실 직원은 전날 없던 ‘등록된 기자 외 출입금지’란 문구를 가리켰다. 비등록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에 응할 수 있는지 안내도 없었다. 대신 옆에서 서성이던 일본 NHK기자가 최 기자에게 해당 보도자료를 내밀었다. 

▲ 인천국제공항 개항일인 2001년 3월29일 오마이뉴스 기사
▲ 인천국제공항 개항일인 2001년 3월29일 오마이뉴스 기사

 

다음날 최 기자는 한국언론재단(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자료실로 향했다. 거기서 출입기자실에 대한 자료를 읽었다. 

첫 직선제 대선 직후인 1988년 5월, 한겨레와 CBS가 청와대 출입을 요청했지만 ‘기자실이 좁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1988년 8월 서울시경 기자단 가입을 두고 한겨레 기자와 시경기자단 간사의 말다툼이 폭력사태로 번졌다. 기자실 탁자유리와 공보실장실 유리 등이 파손됐다. 한겨레에선 ‘항쟁’, 기자단에선 ‘난동’으로 표현한 이 사태 두달 만에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CBS 등이 가입됐다는 기록도 읽었다. 

중앙언론 기자단과 지방언론 기자단을 분리한 이유를 적은 자료도 있었다. 관에서 나올 촌지의 양은 정해져있는데 기자가 많아지자 중앙기자단이 지방기자실을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분석이 유력했다고 한다. 당시 인천공항 기자실도 중앙기자실(20여곳)과 지방기자실(4~5곳)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중앙기자단이 지방지 기자들을 분리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1년은 정치적으로 민주화의 분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시기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여 사회적으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을 때다. 

당시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출입기자단 개혁을 바라는 토론회 등이 열렸고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보냈다. 머니투데이·이데일리·딴지일보 등 인터넷 신문사 11곳이 공동성명을 발표해 기자실 개방을 주장했다. 

▲ 2001년 인천공항 출입기자단 문제 관련 연재기사들에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들 입장을 기사 끝에 첨부했다.
▲ 2001년 인천공항 출입기자단 문제 관련 연재기사들에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들 입장을 기사 끝에 첨부했다.

 

오마이뉴스에는 이 사태를 외면한 타 언론사 비판 글, 특히 한겨레의 침묵을 지적한 글도 실렸다. 2000년 10월10일자 한겨레21이 “기자의 천국, 특혜의 밀실”이란 기사로 폐쇄적인 기자단 제도를 비판한 적 있고, 한겨레가 민주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해당 기사 중 “어중이떠중이 다 오면 공간이 부족하다”는 한 출입기자의 인터뷰는 출입기자단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 

사건 약 한 달이 지난 5월 김칠준 변호사는 기자실 출입금지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같은해 7월 인천지방법원은 최 기자가 인천공항 출입기자단 간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상대로 낸 ‘출입 및 취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출입기자실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취재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기자실에서 쫓겨난 문제와 별도로 최 기자는 기자실이 왜 임대료를 내지 않는지도 취재했다.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전국에서 최초로 기자실에 임대료를 부과하려 했지만 기자단 반발로 실패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기자실의 면적(52평)과 공항에 입주한 다른 업체들의 임대료 등을 취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기자단은 연간 8500여만원을 임대료로 지급했어야 한다. 한 언론사당 월 40여만원을 내야 했지만 중앙기자단은 기자실 운영비로 월 3만원을 내는 게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공항 출입기자는 민간업체에 적용할 기준을 기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는 출입기자단이 오마이뉴스 기자만 기자실에서 임의로 쫓아낼 수 없다는 주요 논거 중 하나가 됐다. 비등록 기자라고 해서 공항 측 브리핑에서 쫓아내지 말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언론의 자유, 취재의 자유이지만 기자단이 공항 측에 임대료를 내고 기자실을 정당하게 점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언론사만 쫓아낼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2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비합리적인 문턱을 가진 기자단이 살아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8일 현재 25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병폐의 고리, 검찰 기자단을 해체시켜주십시오!”라는 청원에 서명하며 폐쇄적인 법조 출입기자단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기사는 2001년 3~7월 당시 오마이뉴스와 미디어오늘 기사, 지난 4일 최 기자와 통화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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