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방송사들이 밀집한 상암동 거리에서 열었다.

12일 오후 12시 서울 상암동 MBC, SBS, YTN, CJ ENM, JTBC, 국악방송 등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밀집한 상암문화광장에서 ’전태일 50주기 33차 캠페인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가 1시간 30분 가량 열렸다.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공공상생연대기금 등이 공동 주최했다.

한빛센터는 공공상생연대기금 후원으로 무대 옆에 커피, 핫도그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커피차‘ 푸드트럭을 준비했다. 한빛센터는 수시로 각종 드라마 제작 현장을 찾아가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하는 커피차 캠페인을 열고 있다.

▲12일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공공연대상생기금 등이 오후 12시 서울 상암동 상암문화광장에서 ’전태일 50주기 33차 캠페인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12일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공공상생연대기금 등이 오후 12시 서울 상암동 상암문화광장에서 ’전태일 50주기 33차 캠페인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주최 측 활동가들은 커피차 앞에 줄 선 시민들에게 ’전태일 50‘ 신문을 나눠줬다. 개인 187명과 단체 120곳으로 구성된 전태일신문 발행위원회는 지난 9일 전태일 열사의 삶과 특성화고등학교 청년 노동자들, ’5인 미만 사업장‘ 소규모 기업·기관의 노동자, 방송계 비정규직 등 노동법 사각지대 현장을 조명한 신문 ’전태일 50‘을 발행했다.

행사장 관객들은 저마다 도넛을 한 개씩 들고 무대 공연을 즐겼다. 올해 초 부당해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숨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유족이 행사를 응원한다며 도넛 150여개를 후원했다.

문화제는 방송작가의 전태일 평전 낭독으로 시작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김한별 부지부장은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선언이라고 부른다”며 “가난과 질병과 무교육의 굴레 속에 묶인 버림받은 목숨들에게도, 저임금으로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먼지 구덩이 속 햇빛 한번 못 보고 하루 16시간 노동해야 하는 어린 여공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는 죽었다”고 읊었다.

▲언론노조 대구MBC다온분회 조합원인 뉴스자막 제작자 배주연씨가 전태일50 신문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노조 대구MBC다온분회 조합원인 뉴스자막 제작자 배주연씨가 전태일50 신문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김 부지부장은 “앞에 있는 MBC는 최근 고정적으로 일했던 보도국 작가들을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하루 아침에 해고한 일이 있다. 평소엔 프리랜서 취급하지 않고, 해고할 땐 프리랜서라는 방송국의 위선”이라며 “MBC를 비롯한 대한민국 모든 방송국은 노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김 부지장은 이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상암동에서 외친다.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방송사들은 비정규직 착취로 만든 이 사태에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면 부당함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거리를 지나는 작가님들도 모여달라”고 밝혔다.

대구MBC에서 뉴스자막을 제작하는 배주연씨는 두 번째로 낭독했다. 배씨는 대구MBC 프리랜서들이 만든 언론노조 대구MBC다온분회 조합원이다. 그는 “이제껏 ‘모든 환경으로부터 거부’당하며 살아온 전태일에게는 ‘근로자의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해 법률이 마련돼있다는 사실 하나로 암흑의 동굴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발견한 듯한 놀라운 환희였다”며 “근로자에게도, 모든 걸 빼앗긴 지지리도 천한 핫빠리 인생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는 있는 것이로구나”라고 낭독했다.

배씨는 “사회는 과거보다 풍족해지고 남녀노소 일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근로기준법도 열사 분신 당시부터 나아졌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많다”며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간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단역배우 집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고 양소라·소정씨 어머니 장연록씨가 이날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단역배우 집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고 양소라·소정씨 어머니 장연록씨가 이날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어 낭독에 나선 진재연 한빛센터 사무국장은 “강한 자들은 길들여진 양들에게 착실, 겸손, 온건, 성실, 적응성 있다 등의 온갖 아름다운 찬사를 퍼부으며 환영하고 칭찬하면서 최대한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털을 뽑는다”며 “그러나 억압과 혹사,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협하게 될 때 잠자던 그의 비판 의식은 돌연 고개를 쳐들어, 절실하게, 부지런히 활동을 개시한다”고 말했다.

일명 ‘단역배우 집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고 양소라·소정씨 어머니 장연록씨는 끝으로 무대에 올라 “딸들에게도 이런 사람(전태일)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관행이라고, 쉽게 순응하고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면, 문제가 있으면 함께 목소리 내고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제 딸들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장씨는 또 “방송계는 말로만 전태일 열사라 하지 말고 실천으로 이어가길 바란다”며 “방송 현장에서 성폭력·성희롱 예방 시스템을 만들어달라. 여성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딸의 억울함과 이 어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발언 사이마다 민중가수 이수진씨와 팀 '꽃다지'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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