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가동중단을 결정하는 과정에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무리한 ‘밀어붙이기’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가동 중단을 비롯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기도 전에 ‘조기폐쇄’ 방침을 이미 정해뒀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20일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에서 백운규 당시 장관을 비롯한 산업부 공무원들,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한수원) 담당자들의 실책을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감사원은 “(백운규) 장관은 2018년 4월4일 외부기관의 경제성 평가결과 등이 나오기 전에, 월성1호기 조기폐쇄 시기를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방침을 결정”했으며 “산업부 직원들은 위 방침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한수원이 ‘즉시 가동중단’ 방안 외 다른 방안은 고려하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2017년, 2018년 ‘계속 가동을 원하지만 조기폐쇄를 하더라도 운영변경허가 시까지 운영하길 원한다’는 한수원 입장을 보고 받았다. 2018년 4월3일엔 한수원이 선행하기로 한 외부기관의 경제성 평가가 착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고 받았다. 한수원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설계수명시까지 계속 가동 △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시까지 가동 △즉시 가동중단 등이었다.

▲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민중의소리
▲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민중의소리

그러나 백 전 장관은 조기폐쇄를 밀어붙였다. 산업부 A과장으로부터 ‘청와대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는 점을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하자, 대통령이 월성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했다’는 보고를 듣고, 백 장관이 질책했다는 내용이 감사 보고서에 적시됐다. 백 장관이 해당 과장에게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을 고려해 폐쇄를 결정한다고 하면서 다시 가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며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으로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후 산업부, 한수원은 관련 방침을 따랐다. A과장은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으로 보고서를 수정했고, 한수원 임직원들을 산업부로 불러들여 관련 방침을 전했다. 한수원 B본부장이 ‘영구정지 운영변경 허가 시까지 가동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해 달라’고 했으나, 산업부는 ‘즉시 가동중단’ 방침을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산업부∙한수원 담당자들은 장관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A과장은 감사원 문답에서 “한수원 직원들은 기존의 조기폐쇄 추진방안(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시까 지 가동)과 달라져서 부담스러워 했으나 장관이 단호하게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결정한 상황을 전달하자, 이를 거부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저도 장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는데, 한수원 직원들도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라 판단된다”고 진술했다. 산업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장관이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하면서 한수원이 폐쇄시기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경영상의 자율성을 침해했을 수 있고, 의사결정에 부담을 준 것”이라 말했다. 당시 가동중단 방침을 통보 받았던 한수원 B본부장도 ‘장관이 강력하게 즉시 가동중단을 지시했다는 걸 전해듣고 다른 방안은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산업부가 즉시 가동중단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수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그 방침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공식적으로 기록·보존되도록 하지도 않았는 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며, 한수원에 장관의 즉시 가동중단 방침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 공문이 아닌 구두로 전달하고, 해당 방침 외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못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감사를 앞두고 청와대 보고 자료를 삭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자료 요구(월성1호기와 관련된 최근 3년 간의 내부 보고자료∙BH 협의 및 보고자료∙한수원과 협의 자료 일체)를 받고, 담당 감사관에게 일부 자료를 제출하면서 상당한 문서를 누락한 부분이다. 해당 공무원들은 2018년 4월3일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한 문서를 비롯해 ‘산업부에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우선적으로 삭제했다. 처음에는 삭제 후 복구돼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을 수정∙저장했다 삭제했고,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되자 ‘단순 삭제’(shift+delete) 방법을 쓰다가, 폴더 자체를 삭제하기에 이르렀다고 파악됐다.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도 문제가 지적됐다. 경제성 평가에 사용되는 ‘전력 단가’(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 1kWh당 비용) 를 실제 판매단가보다 낮은 전망단가로 사용하면서 전기판매수익이 낮게 추정됐다는 것이다. 월성본부나 월성1발전소의 인건비 및 수선비도 적정치에 비해 과다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신규 원전 건설시 경제성 평가와 관련한 지침이 있지만, 원전의 계속가동(설계수명연장) 경제성 평가에는 적용할 수 있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 제도적 미비점이 개선 사항으로 언급됐다.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보고서 일부.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보고서 중 발췌.

결론적으로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이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며 “(백 전 장관이) 2018년 9월 퇴직한 바 있어, 재취업, 포상 등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인사자료를 (현 산업부장관에게) 통보”했다. 관련 자료를 삭제한 산업부 직원들에 대해 ‘징계 요구’를 하는 한편, 산업부가 국가 중요 정책 결정을 집행하면서 공공기관에 행정지도를 하는 경우 관련 근거∙자료를 기록하는 등 투명성∙책임성을 높이도록 ‘주의 요구’했다. 한수원 사장에 대해서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하는 동시에, 향후 원전 가동 관련 경제성 평가가 객관적으로 수행되도록 관련 지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청와대 관련자들이 문책 대상에 포함될 거란 일각의 전망은 엇나갔다. 앞서 감사원이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의 진술을 청취하면서 청와대 관여 여부에 대한 관심이 모여왔다. 감사결과 발표 전날(19일) 문화일보는 “감사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적절성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하면서 월성1호기 폐쇄 결정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을 주요 처분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감사원은 이에 “확정되지 않은 감사결과에 대한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주길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고 대응한 바 있다.

청와대는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감사 보고서) 전문이라도 확인한 다음에 필요하면 입장을 내겠다”고 말한 뒤 “특별히 낼 입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더군다나 청와대 사안이 아닌데 입장을 내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감사원은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자체를 판단하지 않았다. “감사결과를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나 그 일환으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추진하기로 한 정책결정의 당부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감사원은 “감사의 범위가 경제성 분야 위주로 이루어졌고 이사회 의결 내용에 따르면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은 경제성 외에 안전성이나 지역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므로 이번 감사결과를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감사 결과를 계기로 월성1호기 조기폐쇄, 나아가 ‘탈원전’ 비판 공세에 나섰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으로 모든 일들이 촉발되었다는 것은 아마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폐쇄 결정 과정의 불법뿐만 아니라 감사과정의 증거인멸과 감사 방해도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정권이 의지를 가지고 한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 체계 안에서 해야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의 왕이 아닌 것은 국민들이 다 알고 계시지 않나. 제발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청와대 구중궁궐 뒤에 계시지 마시고 모든 국정 현안에 관대히 답변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쟁점화를 경계하고 있다.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경제성 이외에 안전성이나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려진 결정이다. 감사원도 이번 감사결과를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서엥 관한 판단으로 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고 강조하며 “감사원 결과가 나온 만큼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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