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자택 인근에서 장시간 대기하던 사진기자를 공개 비난한 행위에 전국언론노조가 추 장관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취재관행에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20일 성명을 통해 “당 대표까지 지낸 5선 국회의원에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 기자들의 감시가 낯선 일이 아닐 것이고, 유력 정치인과 기자 개인 영향력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라며 “개인 SNS를 통해 즉자적 반응을 보인 추미애 장관은 관련 글을 삭제하고, 해당 기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언론노조는 “일부 언론이 유력 정치인이라고 해서 출근길 또는 자택 앞에서 사회적 이슈와는 거리가 먼 사생활 영역 질문이나 신변잡기식 무차별 취재를 관행으로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면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기보다는 편견을 조장하고 낙인찍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자택 근처에서 장시간 대기하던 뉴시스 사진기자 사진을 게시했다. 추 장관은 “한 달 전쯤 법무부 대변인은 ‘아파트 앞은 사생활 영역이니 촬영 제한을 협조 바란다’는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는데 기자는 그런 것은 모른다고 계속 뻗치기를 하겠다고 한다”며 “지난 9개월간 언론은 아무데서나 저의 전신을 촬영했다” “사생활 공간인 아파트 현관 앞도 침범당했다”고 주장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뉴시스 사진기자와 그에 관한 글. 사진=추미애 페이스북.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뉴시스 사진기자와 그에 관한 글. 사진=추미애 페이스북.

추 장관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고 뉴시스 기자 사진을 올리며 기자 신상이 특정됐다. 추 장관 지지자들 중심으로 뉴시스 기자에 대한 맹공격이 이어졌다. ‘좌표찍기’ 논란이 거세지자 추 장관은 얼마 후 얼굴을 가린 사진을 다시 게시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지난 16일 공동성명을 통해 “언론인 ‘좌표 찍기’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헌법 제21조1항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추 장관을 강하게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당초 두 협회와 언론노조가 이번 사태에 공동 대응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협회와 언론노조 성명은 나흘 격차를 두고 나왔다. 언론노조 성명은 앞선 협회 것보다 차분한 논조다. 언론노조는 추 장관뿐 아니라 여·야 거대 정당도 함께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언론과 정치권의 갈등이야 늘 있었고 그래야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라며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거대 정당이 기자들 실명을 공개하며 여론을 진영에 유리하게 주도하려는 현상을 비판했다. “미래통합당이 보도자료에 취재 기자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원색적 비난을 가한” 일과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사에 대한 문제를 개인 SNS에 작성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제기한 것” 등을 모두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여·야 거대정당에 “한 거대 정당은 일방적으로 언론에 자신들을 두둔하기를 요구했고, 다른 거대 정당은 언론과 기계적 거리두기로 별다른 언론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언론노조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언론개혁을 위한 언론정책 마련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은 기자 개개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언론노조 20일자 성명 전문.

 


정치인들은 언론인 개인을 공격하는 잘못을 중단해야 한다.

아마도 그 마음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입사 2년 차 막내 기자가 취재 지시에 따라 유력 정치인의 사진을 찍으러 갔다. 혹시나 몰라 해당 정치인의 사생활을 크게 침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을 한다고 했는데도, 자신의 사진이 SNS 올라 온갖 비난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는가?

지난 1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파트 앞에서 추 장관의 출근 사진을 찍으려다가 추 장관의 SNS에 역으로 자신의 얼굴 사진이 공개된 뉴시스 기자의 이야기다. 물론 추 장관은 지난 9개월간 많은 언론의 취재로 아파트 현관 앞을 침범당하거나, 흉악범 대하듯 퍼붓는 질문에 아파트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 대표까지 지낸 5선 국회의원에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 기자들의 감시가 낯선 일이 아닐 것이고, 또, 유력 정치인의 영향력과 기자 개인의 영향력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개인 SNS를 통해 즉자적인 반응을 보인 추미애 장관은 관련 글을 삭제하고, 해당 기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일부 언론이 유력 정치인이라고 해서 출근길 또는 자택 앞에서 사회적 이슈와는 거리가 먼 사생활 영역의 질문이나 신변잡기식 무차별 취재를 관행으로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기보다는 편견을 조장하고 낙인찍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갈등이야 늘 있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언론과 정치권의 갈등의 내용과 수준이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지난 6월 KBS가 당시 미래통합당이 발표한 정책에 대해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자, 당시 미래통합당이 보도자료에 취재 기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해 반발을 샀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사에 대한 문제를 개인 SNS에 작성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제기한 것이 이른바 ‘좌표 찍기’ 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이번 추 장관의 뉴시스 사진기자 얼굴 공개는 의미 없는 폭력일 뿐이다.

이 나라 정치와 언론은 분리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정치 수준이 언론 수준을 견인하고, 언론이 정치의 하한선을 규정한다. 그런데도 지금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은 어떤가? 한 거대 정당은 일방적으로 언론에게 자신들을 두둔하기를 요구했었고, 다른 거대 정당은 언론과 기계적인 거리두기로 별다른 언론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언론정책의 공백에서 이른바 ‘정치언론’이라고 일컬어지는 극우언론들이 활개를 치고, 네이버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기반을 뺏긴 언론사들이 생존본능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언론 지형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형성하기 위한 수준 높은 사회적 논의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그 피해는 언론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언론개혁을 위한 언론정책 마련에 나설 것을, 또 이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작할 것을 주문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은 기자 개개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내부의 반발을 감내하면서라도 논의에 적극 나서겠다.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

2020년 10월 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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