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폐쇄 자막방송 중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폐쇄자막 사고 확인 내역 자료를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2019년 5월부터 2020년 9월까지 폐쇄자막 송출 중단 방송사고가 21건에 달했다. MBC(지역사 포함) 10건, KBS 5건 순으로 나타났으며 EBS·MBN·YTN·G1(강원 민방)·UBC(울산 민방)·CMB동대전 방송이 각각 1건씩 기록했다. 

폐쇄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방송의 음성을 문자로 내보내는 서비스다. 모든 시청자에게 보이는 일반 자막과 달리 시청을 원하는 경우에만 자막이 뜬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는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제작물 또는 서비스를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폐쇄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 시청 편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폐쇄자막 방송사고는 송출이 잠시 지연되거나 오타가 발생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 자체에 자막이 나오지 않은 사고를 말한다. 장애인 입장에서 자막이 나오지 않으면 방송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음향이 나오지 않는 대형 방송사고와 다르지 않다.

21건의 방송사고 가운데 50분 이상 자막이 송출되지 않은 사고만 16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8건은 100분 이상 송출되지 않았다. CMB 동대전방송이 송출 프로그램 바이러스 공격으로 3150분 동안 방송이 송출되지 않았다. MBC 강원영동은 담당자 부주의로 960분 동안 자막이 나가지 않았다. YTN은 코로나19로 자막방송실이 위치한 사옥 6층이 폐쇄되면서 800분 동안 자막이 끊겼다.

 

▲ KBS 폐쇄자막 방송 화면. 사진=KBS 방송기술 블로그.
▲ KBS 폐쇄자막 방송 화면. 사진=KBS 방송기술 블로그.

21건 중 18건이 지역방송 사고 

21건의 방송사고 가운데 18건이 지역방송에서 발생했다. 지역 장애인들은 폐쇄자막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빈도가 높았던 것이다. 

조사 기간 동안 MBC의 경우 본사에서 벌어진 방송사고는 없었으며 춘천MBC 3건, 부산MBC 2건, MBC강원영동·MBC충북·전주MBC·MBC안동·MBC목포가 각각 1건씩 기록했다. KBS 역시 해당 기간 서울에서 방송사고는 없었으며 제주, 전주, 대전, 울산, 청주에서 각각 1건의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지역방송 사고 다수는 담당자 부주의나 시스템 오류가 원인이었다. 지역방송은 서울에서 편성해 전달하는 방송과 지역 자체 편성으로 나뉘어 편성 전환 때마다 송출을 바꿔야 하는데 자막 시스템 전환을 누락한 경우가 많았다. 담당자가 업무가 미숙해 시스템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장비 세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사고도 있었다. 지역 지상파 방송의 부족한 인력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BS는 지난 7월 집중호우 당시 재난 특보방송에서 두 차례 사고를 낸 것으로 확인돼 지역 재난방송 시스템의 또 다른 허점이 드러났다. 7월30일 KBS대전은 뉴스특보를 편성해야 하는데 자막 제작업체에 사전에 연락을 하지 못해 폐쇄자막 송출이 누락됐다. 7월29일 KBS 전주에서도 뉴스특보에 자막이 나오지 않았는데 담당자의 사전 준비 부족으로 폐쇄자막 송출이 누락됐다.

방송사 의무지만 업무 외주화

잇단 방송사고의 배경에는 외주화도 관련 있다. 지상파, 종편 등 주요 방송사들은 의무적으로 모든 편성에 폐쇄자막을 제공해야 하지만 관련 업무는 대부분 외주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지상파3사, 종합편성채널4사 등 주요 방송사들은 모두 방송자막 속기업체와 계약을 맺고 폐쇄자막 작업을 하고 있다.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속기업체의 담당자 부주의 또는 시스템 오류, 방송사와 속기업체의 소통 문제로 벌어진 사고만 8건이다. 속기업체에서 시스템 오류, 인터넷 고장, 담당자 근무태만 등 부주의로 자막을 내보내지 않은 사고가 벌어졌을 때 방송사가 속기업체를 거쳐 소통해야 해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심야시간대에는 속기업체와 방송사 야근 담당자가 문제를 제때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장시간 방송사고로 이어진다.

▲ 속기사 자판과 속기사. 장애인 폐쇄자막은 속기업체에서 제작해 방송사에 내보낸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 속기사 자판과 속기사. 장애인 폐쇄자막은 속기업체에서 제작해 방송사에 내보낸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김철환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한 방송사는 일부 속기는 직접 채용을 통해 진행하다 결국 모두 외주로 돌렸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외주화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체 간 답합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속기업체를 통해 자막을 제작하는 것과 동시에 방송사 자체적으로도 속기 작업을 하는 이원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송사들이 속기업체들과 저가 입찰 경쟁에 나서면서 자막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과거 속기업체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처음 듣는 말을 쓰기 때문에 사투리나 전문 용어가 나오면 바로 알아듣고 치기 힘들다”며 “고숙련자들도 있긴 하지만 속기업체에서 방송자막에 신규 인력을 중심으로 투입한다. 처우가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거나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검찰 등 관공서로 이직을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폐쇄자막 속기 작업은 국가기술자격 1~2급을 보유해야 하지만 속기업체가 무자격자에게 업무를 맡긴 경우도 있다.

장애인 자막도 ‘본방송’, 책임감 가져야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장애인 방송에 대한 자동 모니터를 하고 있으며 방송사고로 편성비율 미달시 △ 방통위 홈페이지에 공표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심사에 감점 △보완 요청하는 행정지도 등 대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청자미디어재단 미디어접근부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장애인 자막방송 편성 비율을 높인 결과 현재 주요 방송사 100% 의무로 이뤄지고 있다”며 “과거  양적 기준 충족에 주목해왔는데, 최근 질적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자막 품질을 측정하기 위한 지수 개발 연구를 하고 있고, 인공지능 속기 도입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김철환 활동가는 “방송사고 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오타나 일부 자막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적지 않다”며 “비장애인 시청자는 전화로 항의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전화를 할 수도 없고 문장을 쓰는 데 취약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대응하는 일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방송 가이드라인. 방송사고시 대응을 '권장'할 뿐 의무적인 조치가 명시돼 있지 않다.
▲ 장애인 방송 가이드라인. 방송사고시 대응을 '권장'할 뿐 의무적인 조치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면서 김철환 활동가는 “일반 방송에서 이 정도 사고가 나면 제재 조치가 강력한데 장애인 방송의 경우 경미한 상황이다. 질적인 문제에 더 주목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폐쇄자막방송은 청각장애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중요한 수단임에도, 방송사업자의 무관심에  방치되고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정적인 폐쇄자막 방송을 위해 무분별한 속기업무 외주화를 막고 속기사의 고용안정을 위한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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