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의 손영미 소장 사망 소식을 취재하면서 손 소장 자택 열쇠 구멍에 카메라를 들이대 집 내부를 촬영해 방송한 방송사들에 법정제재가 추진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방통심의위 방송소위·허미숙 소위원장)는 2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손 소장의 자택 내부를 열쇠 구멍을 통해 촬영한 YTN ‘뉴스특보-코로나19’, TV조선 ‘TV조선 뉴스현장’, MBN ‘MBN 종합뉴스’ 등이 방송심의규정 ‘자살묘사’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법정제재 ‘주의’를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위쪽부터 고인이 된 손 소장의 자택 내부를 열쇠 구멍을 통해 촬영한 YTN ‘뉴스특보-코로나19’, MBN ‘MBN 종합뉴스’, TV조선 ‘TV조선 뉴스현장’. 사진=각 방송사 보도화면 갈무리.
▲위쪽부터 고인이 된 손 소장의 자택 내부를 열쇠 구멍을 통해 촬영한 YTN ‘뉴스특보-코로나19’, MBN ‘MBN 종합뉴스’, TV조선 ‘TV조선 뉴스현장’. 사진=각 방송사 보도화면 갈무리.

방송심의규정 ‘자살묘사’ 조항을 보면 사건 현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방송은 자살자 및 그 유족의 인적사항을 공개해서는 안 되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심의를 제기한 민원인들은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해 고인을 모독했다”며 문제 제기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다들 알고 있죠? 당시 복도에서 고인의 집을 열쇠 구멍에 대고 촬영한 방송사가 10곳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7개 방송사는 결국 방송하지 않았다. 방송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날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방송사 관계자들은 해당 영상이 나간 이유가 ‘휴일이라 내부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명호 YTN 보도국 영상에디터는 “휴일이었다. 당일 데스킹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다. 방송 후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곧바로 삭제했다”고 말했다. 안석호 TV조선 기획취재부 부장도 “휴일이어서 내부 모니터할 수 있는 데스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편집자가 흐림 처리했다. 방송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삭제했고, 앞으로도 사용할 것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최은수 MBN 보도국 차장은 “경각심이 많이 부족했다. 앞으로 중요한 건 재발 방지다. 보도국 구성원들에게 앞으로 보도할 때 (고인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가 보장되도록 전문가 초청 교육까지 시켰다”고 말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따져 묻자, 최은수 MBN 차장은 “의도는 없었다. 현장 기자들이 열정적으로 취재하다 담겨선 안 될 게 담겼던 것 같다. 취재기자에게 물어보니 심의규정을 인식 못 했다고 했다. 무지해서 생긴 일이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TV조선 의견진술자인 안석호 부장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취재기자가 열심히 취재한 결과다. 취재 경쟁 때문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자 심의위원들은 “열심히 취재한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보도한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강진숙 위원이 “쉼터 소장 사망 사인으로 언론사 취재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거론된다. 그런 상황에서 고인 자택을 열쇠 구멍을 통해 촬영해 내부를 클로즈업해서 사물들을 보여줬다. 취재 경쟁이 과열돼 죽음 후에도 다시 불거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안석호 TV조선 부장은 “당시 접근을 제지하는 폴리스라인이 없었다. 자유롭게 취재하는 상황이라 우리도 그렇게 했다.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사소한 거라도 적고, 묻는 것처럼 영상 취재기자들도 보이는 걸 모든 걸 다 찍는 게 습관화됐다”고 답했다.

그러자 강진숙 위원은 “현장 기자들은 모든 걸 촬영한다. 하지만 취사 선택해 보도하는 에디팅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행동엔 책임이 뒤따른다”고 지적하자, 안 부장은 “책임을 인정한다. 방송에 내지 말아야 했다”고 말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심의위원들이 현장 기자를 탓하는 게 아니다. 기자로서 달려가서 취재하는 건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상을 찍어 보도한 게 문제다. 다른 방송사들은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해당 영상을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안석호 부장은 “데스킹을 강화하도록 하겠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심의위원 2인(허미숙 소위원장·강진숙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를,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를 주장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방송은 자살 관련 보도 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기존에 제재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사안이 반복돼 앞으로 더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진숙 위원도 “자극적인 보도였다. 속보 경쟁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박상수 위원은 “휴일에 데스킹이 부족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 심의규정을 위반한 건 맞다. 다만 대통령 모친의 시신 운구 장면을 보도한 방송사들도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이번 안건이 똑같은 건 아니지만, 사적인 공간을 촬영했다는 점에서 비교가 가능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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