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영되는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성차별 요소 분석 결과 남성 주요 진행자 비율이 여성보다 6배 높았다. 성별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대사나 상황도 쉽게 발견됐고, 외모 비하를 주된 유머 소재로 삼거나 성희롱을 정당화하는 연출도 여전히 발견됐다.

서울YWCA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의뢰로 ‘6월 예능·오락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진행해 ‘성평등 내용’ 3건, ‘성차별적 내용’ 26건 사례를 선별했다. 분석 대상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콘텐츠 가치정보 분석시스템상 동영상 조회가 높은 기준으로, 6개 방송사(MBC·SBS·JTBC·TV조선·채널A·tvN·Mnet)의 상위 12개 예능 프로그램이다. 6월1일부터 21일 방영분까지 모니터링해 지난 20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YWCA가 지난 6월 1일~21일 간 모니터링한 12개 예능프로그램 목록. 지난 20일 발간된 대중매체 양성평등 예능프로그램 내용분석 보고서 갈무리.
▲서울YWCA가 지난 6월 1일~21일 간 모니터링한 12개 예능프로그램 목록. 지난 20일 발간된 대중매체 양성평등 예능프로그램 내용분석 보고서 갈무리.

 

전체 출연자 성비는 남성이 250명(64.1%), 여성이 140명(35.9%)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1.7배 이상 많았다. 격차는 출연자를 주 진행자와 보조 진행자, 고정출연자와 보조출연자로 구분하자 더 심해졌다. 주 진행자 8명 중 남성은 7명인 반면 여성은 1명이었다. 고정출연자 경우 남성이 121명(85.8%), 여성이 20명(14.2%)로 남성이 6배 더 높았다.

서울YWCA는 “주 진행자와 고정출연자가 예능을 이끄는 진행자의 위치임을 고려하면, 2020년 6월 한국 예능 판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YWCA가 지난 6월 1일~21일 간 모니터링한 12개 예능프로그램 중 출연자 성비 분석 표.
▲서울YWCA가 지난 6월 1일~21일 간 모니터링한 12개 예능프로그램 중 출연자 성비 분석 표.

 

출연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32.5%)고 30대(18.5%), 40대(11%), 50대(4.6%)가 그 뒤를 이었다. 20대 이하 고정출연자 경우 여성은 6명, 남성은 59명이었다. 30~50대 고정출연자 중 여성은 14명, 남성은 40명으로 나타났다.

외모 평가 고통받는 여성 연예인 목소리

서울YWCA가 꼽은 성평등 사례 3건은 MBC ‘나 혼자 산다’(349회),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3’(12회),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1회)의 내용이다.

▲MBC 나 혼자 산다 349회 갈무리
▲MBC 나 혼자 산다 349회 갈무리

 

‘나 혼자 산다’ 경우 대중의 외모 평가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배우 유이씨 촬영분이다. 유이씨는 ‘꿀벅지’, ‘뱃살 논란’, ‘거식증 환자 꼴’ 등으로 끊임없이 자기 신체가 논란거리가 되면서 심적 고통이 상당했다고 고백했다. 이를 본 다른 여성 출연자들도 외모 평가 때문에 힘들었다고 공감했다. 서울YWCA는 “여성 연예인이 이상적인 외모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 쉽게 조롱하고 비난하는 외모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장면”이라고 밝혔다.

비긴어게인 코리아 경우 인천국제공항 방역 시스템을 다룬 장면에서 모두 여성 인터뷰이를 출연시킨 점이 꼽혔다. 서울YWCA는 “의료·방역 현장 종사자로 주로 남성을 떠올리는 성차별적인 인식을 고려하면, 여성이 주체적으로 신념을 가지고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해당 장면은 코로나라는 사태에 방역을 수행해내는 여성들을 조명했다”고 평가했다.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 1회 갈무리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 1회 갈무리

 

하트 시그널 12회는 남녀 성별 구분을 강조하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YWCA는 “관찰 영상 방영 후 한 출연자가 ‘남자들은 99% 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한다’고 하자 다른 출연자가 ‘아니 그건 여자도 그래요’라고 지적한다”며 “자막 또한 특정 성별을 꼬집지 않고 ‘사랑 앞 대부분의 모습’이라며 성별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었던 장면을 오히려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장면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성차별 내용 26건은 △성별 고정관념 조장(15건) △성희롱·성폭력 정당화(2건) △외모 평가(5건) △기타(4건) 으로 나뉜다.

성별 고정관념 사례 대부분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둘러싼 편견을 조장한 장면이다. 남성 출연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장면에서 “남자의 냄새!”라고 칭찬하거나(JTBC 팬텀싱어3 11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남성 출연자에게 “시원하게 해야지 남자가”라는 발언과 자막이 나온 장면(SBS 런닝맨 508회) 등이다.

▲TV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콜센터' 11회 갈무리.
▲TV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콜센터' 11회 갈무리.

 

TV조선 사랑의 콜센터 11회에 나온 ‘남자는 울지 않습니다’란 자막도 문제로 꼽혔다. 같은 회차에서 MC 김성주씨의 “가족 내 서열 5위”, “가족 내에서 입지를 잃은 우리 남자들”이라는 발언과 “눈치 삼매경에 입지 잃은 가장들”이라는 자막도 지적됐다. 서울YWCA는 “‘가장’이라는 가족 구성원을 남성으로만 바라보며,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감 있고,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아가 가족을 통제하는 기존 ‘가장’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여성 출연자에 대한 애교 강요도 언급됐다. SBS 런닝맨 506회에서 여성 아이돌 가수와 여성 출연진들에게 애교섞인 춤을 추게 하며 희화화한 부분이다. 서울YWCA는 “성인 여성에게 유아적인 연약함을 부각하고, 그것이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며 “여성 출연진들에 대한 애교 강요가 이제 더 예능에서 그려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SBS 런닝맨 508회 갈무리.
▲SBS 런닝맨 508회 갈무리.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120회 갈무리.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120회 갈무리.
▲SBS 런닝맨 506회 갈무리.
▲SBS 런닝맨 506회 갈무리.

 

서울YWCA는 런닝맨 해당 회차가 여성들이 흔히 피해를 겪는 공연음란죄 행위를 희화화했다고 지적했다. 한 남성 출연자가 짧은 바지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오자 옆의 여성 출연자가 ‘이거 바바리맨 아니냐, 19금 아니냐’고 발언한 장면 등이다.

남성과 여성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로맨스 관계’로 치환하는 연출 문제도 나왔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120회, JTBC 비긴어게인코리아 1회 등이다. 서울YWCA는 “관계 기본값을 ‘이성애 연애’ 기준에서 보는 것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 모습들을 배제한다”거나 “남녀 간 이성애 로맨스 관계 외의 다양한 관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계”라고 평했다.

서울YWCA는 “개그프로그램 속 비하, 혐오,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흐름 속에서 이제 희극인들은 ‘그럼 어떻게 웃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예능 속 주 진행자와 고정출연자들의 6~7배에 달하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은 여성 희극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며 “여성 희극인들이 유머의 판을 바꾸고 벌리고 확장하는 과정에 더 주목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유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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