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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재학 PD, 이젠 평온해라”
“안녕 이재학 PD, 이젠 평온해라”
청주방송 시민대책위 ‘매듭짓기 행사’, 이행 점검·방송계 비정규직 구조 개선으로 운동 확대… “끝 아닌 새로운 시작”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지난 6개월 간의 ‘진상규명 투쟁’을 마무리하고 “청주방송 약속 이행 점검과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장 활동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대책위는 지난 11일 오후 6시 충북 청주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매듭짓기 행사’를 열고 “고 이재학 PD 뜻을 이어가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지난 2월부터 6개월 동안 이 PD 사망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했다면, 관련 합의가 도출된 지금부터는 청주방송이 합의를 준수하도록 싸움을 이어나간다는 뜻이다. 

대책위 소속 활동가들, 유족, 고 이재학 PD의 친구와 동료 등 80여명이 참석해 이 PD를 추모했다. 대책위는 카메라를 든 이재학 PD 그림 위에 ‘안녕, 재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행사장에 걸었다. 재피는 재학 피디의 준말로 동료들이 이 PD를 부르던 호칭이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11일 저녁 6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이재학 PD 뜻을 이어가겠다"는 매듭짓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에 걸린 이재학 PD 걸개 그림. 사진=손가영 기자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11일 저녁 6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이재학 PD 뜻을 이어가겠다"는 매듭짓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에 걸린 이재학 PD 걸개 그림. 사진=손가영 기자

 

충북대책위의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인사말에서 “수천 수백의 노란 꽃을 피어 올리는 민들레를 보면 문득 그리워질 이름 이재학. 살아서도 떠나서도, 스스로의 존재로, 자신의 열정과 체온으로, 용기 있는 연대와 실천으로 참 인간 참 노동자 이름을 온전히 증명한 사람 이재학”이라며 추모 시를 읽었다. 이어 “당신의 삶과 죽음을 이정표 삼아 당신의 길을, 노동자의 길을 걸을 것이니 이제는 평안하시라. 바이 재피”라고 말했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의 김윤모 대표는 “앞으로 지역에서 비정규직이나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시민사회와 노동계,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작은 빛이라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이 자리는 시작이다. 종결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PD의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는 대책위에 감사 인사를 했다. 이대로씨는 “이렇게 많은 분들, 이렇게 많은 시간이 다 저희 형을 위해,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함께 해주셨다”며 “아직 끝난 게 아니지만 저희 가족들은 도움 받는 입장에서 (감사함을) 되갚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려한다”고 말했다.

‘합의가 끝이 아니다’라는 말은 행사 내내 언급됐다. 지역 방송국의 프리랜서 작가 A씨는 “학교 비정규직 노조를 조직할 때, 간병인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 분신 투쟁할 때 등 지역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한 순간들이 많은데, 여기 방송계가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의 마지막 현장인 것 같다”며 “이 PD가 떠나고 그의 회사 앞 땅바닥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나이는 들고 방송사들 상황은 악화만 돼 가는데 이제 이 바닥에서 무엇을, 어떤 얘기를 더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고민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대책위가 마련한 ‘매듭짓기 행사’에서 고 이재학 PD 누나 이슬기씨(왼쪽)와 동생 이대로씨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1일 대책위가 마련한 ‘매듭짓기 행사’에서 고 이재학 PD 누나 이슬기씨(왼쪽)와 동생 이대로씨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2월부터 대책위 활동을 촬영한 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7월 이재학 PD와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리며 “내가 손을 내밀었다면 최소한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부채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또 “투쟁도 좋지만 반드시 (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법이) 제도화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깡패 같은 권력을 부린다”며 “청주방송 (사주) 이두영씨가 석고대죄할 리도 만무하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약속 이행을) 하다가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한빛 PD가 혼자 외로웠는데, 선배 PD인 재피가 하늘나라에서 같이 손잡고, 여기서 꿈꿨던 세상을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들이 고민하던 과제들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아들 이한빛 PD는 2017년 부조리한 방송 제작 노동 현장에서 신념에 반하는 지시를 해야 했던 괴로움과 사내 따돌림, 살인적인 노동 강도 등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일부 과제 이행 시한 넘겨… 의심·낙관 분분

지난 7월22일 4자 협의체(청주방송·언론노조·유족·대책위)가 합의한 이행 과제는 총 27개다. 이 가운데 법·제도 개선 과제 6개를 제외한 21개가 청주방송의 직접 이행 과제다. 21개 안마다 이행 시한을 정했다. 당장 7월 말과 8월 초로 시한이 정해진 과제가 7개다. △공식 사과 △책임자 조치 △명예복직 등 추모 △유족 보상 △항소심 진행 협조 △비정규직 9명 정규직 전환 확약서 작성 △‘작가 고용구조 개선 TF’ 구성 등이다. 

규정대로 정확하게 준수한 과제는 절반에 못 미친다.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입장 표명’의 경우 회사 책임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로 정했으나 추상적 유감 표명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족 보상은 ‘합의 후 1주 이내(7월28일)’까지였으나 지난 11일 이뤄졌다. 

지난 7월31일까지 완료키로 한 ‘정규직 전환 확약서 작성’과 ‘작가 TF 구성’은 이행은 했으나 내용에서 논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주방송은 정규직 대상 9명을 3명씩 3년 동안 순차로 고용한다. 올해 고용될 3명은 고용 시한을 확약서에 약속대로 적었지만 나머지 6명의 확약서는 모두 ‘2022년 연말’로 적었다. 당장 전환 순서를 미리 정하기 어렵다는 게 회사 입장이지만, 합의 과정에서 청주방송이 인사권 문제라고 주장해 4자는 관련 내용을 합의안에 넣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이해관계 대립으로 직원 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회사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28일 마련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7월28일 마련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청주방송 일각에선 작가 TF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TF는 구성됐으나 운영방식부터 권한과 위상, 의제 설정 등 TF와 관련한 구체적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있다. 반면 이제 막 TF가 구성됐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회사가 의지를 보인 만큼 차분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책임자 조치, 항소심 진행 협조 등 2개 과제는 이행 속도에 문제가 있다. 이 PD 사망에 영향을 준 가해자 처벌은 이번 사건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만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한은 오는 21일이다. 청주방송은 이번 주 내로 인사위를 구성할 예정이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일부 국장석이 공석이라 인사위 구성에 어려움이 있고 내부의 또 다른 사건으로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족이 수계한 이 PD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은 강제 조정으로 종결된다. 조정 문구까지 합의안으로 정해 조정 절차만 밟으면 되지만 진척이 더디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진행 중으로, 조속히 유족 측을 만나 정할 것”이라 말했다. 

명예복직 등 추모 과제는 약속대로 진행됐다. 청주방송은 이행안에 따라 지난 28일 회사에서 이재학 PD 명예복직식 행사를 열고 명예사원증을 수여했다. 2주간 추모 기간을 두고 지난 11일까지 4층 소회의실에 빈소를 차렸다. 기획제작국엔 추모용 책상을 배정해 이 PD 명패와 사진, 국화꽃 등을 올려놨다. 편집실 한 칸엔 ‘JP(재학피디) 편집실’ 명패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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