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과 부당해고로 다투다 숨진 고 이재학 PD가 임직원 추모를 받으면서 정규직 PD로 명예복직했다. 그의 사망 176일 만이다. 

청주방송은 28일 오전 9시30분 사옥 7층 대회의실에서 임직원 6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재학 PD 정규직 명예복직 및 명예 조합원증 수여식’을 열었다. 청주방송은 이 자리에서 이재학 PD를 기획제작국 제작팀 PD로 임명하고 유족에게 임명증과 명예사원증을 수여했다.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는 임명장 수여 전 유족에게 공개 사과했다. 이 대표는 “고인이 된 이재학 PD는 회사를 다니면서 몇몇 직원들에게 부당 대우를 받았다. 또 잘못된 해고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고 그것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다”며 “청주방송 대표로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오늘 오신 부모님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28일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가 유족 이대로씨에게 명예사원증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28일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가 유족 이대로씨에게 명예사원증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이 PD의 명예복직과 사과는 지난 22일 청주방송과 유족·언론노조·시민사회대책위 등 4자 협의체가 합의한 이행안 27개 과제 중 일부다. 약속에 따라 청주방송 회장이었던 이두영 이사회 의장도 오전 9시 이 PD 유족을 따로 만나 사과했다. 

또 다른 과제 추모도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부터 2주 동안 이 PD 추모 주간을 시행하는 청주방송은 4층 소회의실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추모 공간은 이 PD 영정을 두는 등 빈소처럼 꾸몄다. 편성제작국 내 한 편집실엔 ‘J.P 편집실’ 명패를 달았다. 기획제작국엔 이 PD 책상을 배정해 PD 명패와 사진, 국화꽃 등을 올려놨다. 

언론노조는 이날 유족에게 이 PD 명예조합원증을 수여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비록 우리 눈앞에 있진 않지만, 이 PD가 남겼던 유산은 결국 언론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밀알이 돼서, 언론 노동자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큰 밑거름 될 것”이라며 “언론노조의 2만5000명 조합원은 이재학 PD를 우리 조합원으로 맞이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2주 추모기간 동안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내에 마련될 고 이재학 PD를 기리는 책상. 사진=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시민사회대책위
▲2주 추모기간 동안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내에 마련될 고 이재학 PD를 기리는 책상. 사진=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시민사회대책위
▲4층 편성제작국 내 한 편집실 문에 이재학 PD를 기리는 'J.P 편집실' 명패가 걸려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4층 편성제작국 내 한 편집실 문에 이재학 PD를 기리는 'J.P 편집실' 명패가 걸려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주방송 직원들, 이재학 뜻 실현에 같이 애써달라”

이번 합의를 위해 4자는 50여일 간 첨예한 교섭을 이끌어왔다. 시민사회대책위 측 대표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고 이재학 PD님이 이젠 하늘나라에서 평온한 안식을 누리길 기원한다”며 “저희 유가족은 평생 가슴 속에 자식을 묻은 어버이로서 살아갈 것이다. 이재학 PD가 꿈꾸는 세상을 한 발짝 앞당기면서 방송 노동자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개척해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인 이 PD동생 이대로씨는 청주방송 임직원에게 이행 약속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4자가 합의한 이행 약속엔 청주방송이 비정규직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세부 개선안 16개 과제가 포함됐다. 당장 올해 노동자성이 확인된 비정규직 3명의 정규직화가 예정됐다. 이 PD 유지를 받든 이행 과제다. 
 
이씨는 “여기 남은 분들께 남긴 숙제는 어려운 게 아닌, 2020년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런데 청주방송 구성원들은 아무도 목소리 내지 않고 버겁게 하루하루를 살아오셨다”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어색하고 많이 불편하겠지만, 그 과정조차 거부하고 이겨내지 못하면 여기 계신 분들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언제까지 잘못된 것들, 불법적인 것들을 숨기고 그속에서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사회가 회사에 준 마지막 기회이자 저희 형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다. 한편으론 회사가 구성원에게 준 마지막 기회다. 대표 혼자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여러분이 믿고 따라주셔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이재학 PD 납골함 앞에 놓인 명예사원 임명장과 명예조합원증.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납골함 앞에 놓인 명예사원 임명장과 명예조합원증. 사진=손가영 기자.

이날 행사는 유족의 오열에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유족은 행사 직후 청주 추모공원을 들러 이 PD 납골함 앞에 명예사원 임명장과 명예조합원증을 놓고 그를 추모하면서 묵념했다. 

고 이재학 PD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청주방송 조연출 및 연출로 일하다 2018년 4월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직후 해고됐다. 그해 9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고 1년 반가량 청주방송과 법적으로 다투다 지난 1월 패소했다. 패소한 지 2주 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월4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 진상조사위는 지난 6월 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및 소송 과정에서의 청주방송 부당행위를 확인했다. 관련 협의를 이어간 4자는 지난 22일 6개 분야 27개 이행 과제를 정하고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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