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사건’으로 징역을 사는 수용자도 자신의 교화지침을 알 권리가 있다는 정보공개 소송에서 법원이 비공개가 정당하다는 법무부 손을 들어줬다. 중대 국익이 침해되고 교도관 업무수행이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이와 관련 “국익 훼손이란 막연한 추측만 근거로 교화지침의 반헌법성을 확인할 길을 막았다”는 반발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제8행정부(재판장 김유진)는 지난 5일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법무부의 비공개가 정당하다”며 1심 판결을 인용,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국가 안보 및 형 집행과 관련한 정보공개 비공개 사유에 해당된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법원은 교화지침이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 이익이 현저히 침해될 우려가 있고 공안교화전담기관의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하게 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1991년 6월2일 열린 전국노동자학생 집회를 마친 뒤 사노맹(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깃발을 한 노동자가 흔들고 있는 모습. 사노맹 활동가들은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기소됐다.ⓒ연합뉴스
▲1991년 6월2일 열린 전국노동자학생 집회를 마친 뒤 사노맹(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깃발을 한 노동자가 흔들고 있는 모습. 사노맹 활동가들은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기소됐다.ⓒ연합뉴스

 

법원은 ‘공안범죄’ 특성을 강조했다. “공안사범은 국가 존립과 헌법 기본질서 유지에 큰 위협이 되므로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이들을 교화해 사회로 복귀시켜 추가적 공안범죄의 발생을 예방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공안범죄는 형법상 내란죄(87조), 간첩죄(98조), 소요죄(115조)와 국가보안법(3~10조) 위반, 집회시위법 및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위반 등이다. 그러나 형법상 공안범죄 실례는 드물어 실제 수감자는 대부분 국보법, 집시법, 노동법 위반으로 추정된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반헌법적이자 법적 근거도 없는 공안(관련)사범 교화를 비공개로 지속하고 있는 법무부 행태를 묵인했고 사상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고 반발했다. ‘사상 교화’ 시도가 한 예다. 서울구치소는 2011년 12월 ‘왕재산 사건’(국보법 위반) 구속자 5명에게 ‘어느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책을 제공했다가 구시대적 사상 탄압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이 책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4년 후 사형당한 김질락씨의 옥중 전향 수기였다.

교화지침 목차는 이번 판결에서 새롭게 확인됐다. 지침을 비공개 열람한 법원은 지침이 △공안(관련)사범 교화 활동 위한 전담조직 구성 및 직무 내용 △상담 교화 방법 △공안(관련)사범에 대한 정보 보고,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과의 정보 공유·수사협조에 관한 사항 △공안교화전담기관 지정기준 △공안(관련)사범의 서신·도서 관리 방법 △공안(관련)사범 개별교화계획의 수립 등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천주교인권위는 법원이 공안 관련 사범 처우의 위법성 자체를 확인할 기회를 막았다고도 반발했다. ‘공안사범 서신·도서 관리’의 경우 “형집행법을 위반한 감시와 서신 검열이 비밀리에 감행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위원회는 2010년 12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서울구치소가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한상렬 목사의 일상 생활을 1시간 간격으로 엄중관리대상자 동정기록부에 기록한 예를 들었다. 한 목사는 이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2년 4월 서울중앙지법은 “인격 존재로서의 자유로운 의사 발현과 행동구현에 대해 상당한 정신적 타격을 줬다고 경험칙상 인정된다”며 정부에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7년 1월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불온서적' 낙인이 찍힌 서적이 전시됐다. ⓒ민중의소리
▲2017년 1월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불온서적' 낙인이 찍힌 서적이 전시됐다. ⓒ민중의소리

 

일반인 수용자와 공안사범을 차별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수용자 일반 교화 업무 지침은 공개됐는데 공안사범의 지침만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천주교인권위는 2004년 서울변호사회가 법무부를 상대로 수용자 교화 관련 예규 58개 문건을 공개 청구해 승소한 판례를 들고 있다. 청구 대상은 △조직폭력사범 특별수용 관리 대책 △외국인 재소자 처우지침 개선 △여자수용자 야간감독업무 개선 △유사시 무기사용에 관한 특별지시 △도주 등 주요교정사고 유형별 방지대책 △중요인사 구내 순시의 경호 등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문건과 관련 “교도관·교도기관이 준수하거나 시행해야 할 것들로 예상이 가능한 기본 사항들이다. 청구된 정보 중 교정시설의 수용 규모와 수용 구분 등 세부지침을 담은 내용이 있지만 공개되더라도 국가 안보나 공공안전을 해칠 우려는 없다”고 판단했다.

천주교인권위는 “형집행법 5조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한다. 또 형집행법 56조는 수형자 특성에 알맞은 개별처우계획을 시행하도록 규정할 뿐 공안(관련)사범 교화 규정을 하위 법령에 두도록 위임하고 있지 않다”며 “법무부는 국정 투명성 제고와 국민 알 권리 보장은 물론 공안(관련)사범이 자신의 처우를 개선키 위한 재판청구권 행사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교화지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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