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개월 간 ‘고 이재학 PD 사망 사태’ 진상조사에 임해 온 CJB청주방송 태도가 돌변했다. 사태 본질인 이 PD 부당 해고와 그가 생전에 고발한 회사 측 관계자들의 위증·회유·협박 등 문제에서 청주방송이 책임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 사측은 유족을 앞에 두고 “돈을 지급할 테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고 밝혔다.

청주방송은 지난 11일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밝혔다. ‘고 이재학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권고로 이 PD 명예회복 방안을 논의하려고 만난 자리였다. 사측에선 이성덕 사장과 김종기 보도국장이, 유족 측에선 고 이 PD의 동생 이대로씨와 유족 대리인 이용우 변호사가 나왔다.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진상조사위는 지난 1일 조사 결과 권고 및 이행요구안 등을 확정하고 조사 활동을 끝냈다. 그런데 보고서 공개에 반대하던 사측 위원들이 회의 도중 퇴장해버렸다. 유족과 협의해야 할 명예회복 건을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측은 진상조사위 요구로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세 차례 만나 협의했다.

청주방송은 1·2차 만남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쟁점을 돌연 3차 만남에서 꺼냈다. 그전까진 보상을 포함해 오는 16일 회사가 유족에게 공식사과하고 이 PD에게 명예 사원증을 수여하며 회사 내 추모공간을 만드는 안을 논의해왔다.

이성덕 사장은 11일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회사의 최종 입장을 들고 왔다. 유족이 매우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부당해고도 확인할 수 없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책임자 징계,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유족 측이 거듭 항의하자 김종기 보도국장은 “회사가 돈을 지급할 테니 이것으로 다른 건은 문제 삼지 말고 다 끝내자”는 회사 입장을 밝혔다. 두 위원은 이 과정에서 청주방송 사주인 이두영 이사회 의장 이름을 수차례 거론했다. “이두영 의장이 입장을 이렇게 정했다”는 것이었다. 

이두영 의장은 청주방송 지분 36.22%를 가진 대주주다. 이 의장은 이 PD 사망 후 20여년 유지한 대표이사 자리만 내놓고 등기이사로 이사회 의장을 역임 중이다. 분노한 유족이 “돈 받고 끝내란 것이냐”고 따지자 사측 관계자는 “그렇죠”라고 답했다. 당시 사장조차 ‘자신에겐 결정권이 없다’고 했다. 

사측은 지난 12일 4자(회사·언론노조·유족·시민사회) 대표자 회의도 불참했다. 진상조사 결과 발표 시점 등 최종 마무리 협의가 예정된 날이었다. “11일 유족에게 밝힌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게 사측의 회의 불참 이유였다.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 사진=노컷뉴스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 사진=노컷뉴스

 

진짜 권한은 이두영 의장에… 이두영 “헛소리 말라”

이 과정에 사측은 유족에게 ‘항소심 취하’도 조건으로 걸었다. 항소심은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을 말한다. 이 PD는 만 13년 청주방송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정규직처럼 일했고, 2018년 4월 인건비 인상을 처음 요구한 직후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했다며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PD는 지난 1월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 직후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사측 간부들이 위증했고 이 PD를 도운 직원들을 회유·협박했다는 이 PD의 증언이 나왔다.

이와 관련 청주방송 측은 “진상조사위 요구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이성덕 사장은 지난 12일 전화 통화에서 “진상조사 보고서도 나오고 고인 명예회복, 보상 등도 최대한 할 것인데 항소심이 진행되면 우린 거기에 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 간부들 징계에 대해선 “만약 회사가 진상조사 권고대로 해고하면 이들이 부당해고 소송을 해올 텐데 회사는 거기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유족과 4자 대표자 회의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한다고 밝혔으나 미디어오늘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 사장은 “결과를 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결과 이후 개선책을 이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져야 하는 부담이 막대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지금까지만 20억원 적자가 났다.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다른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나 유족 입장은 다르다. 회사가 부담이라고 주장한 문제는 4자 대표자 회의에서 계속 논의해왔고 조절·절충 여지도 있었다.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시민대책위'가 지난 3월 청주방송 사옥 앞에 걸어놓은 추모 리본. 'CJB 청주방송을 규탄한다' '책임자처벌' 등의 문구가 적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시민대책위'가 지난 3월 청주방송 사옥 앞에 걸어놓은 추모 리본. 'CJB 청주방송을 규탄한다' '책임자처벌' 등의 문구가 적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주방송 태세가 정반대로 변한 배경엔 이두영 의장이 있다. 사측 위원들은 논의 과정에서 “그분(이두영)이 지시하고 보고 받는다”거나 “내(사측 위원)가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주주가 왜 경영·인사에 관여하느냐는 유족 측 질문에는 “우리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답도 했다.

유족과 논의를 포함해 진상조사위 회의, 4자 대표자 회의에서도 사측 위원들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없으니 들어가서 보고한 뒤 다음 회의 때 답하겠다며 결정도 매번 미뤘다. 회의 참석자 사이에선 “이두영 의장이 직접 회의에 나와라”는 힐난도 터져 나왔다.

이두영 의장은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헛소리하지 말라. 내가 이래라저래라하는 일 없다. 방송사에서 손 뗐다. 나는 방송을 포기한 사람”이라며 실질적 결정권자로 지목됐다는 지적에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