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계사기 혐의 기소 여부를 검토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양창수 위원장은 2009년 삼성그룹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대법관이었다. 시민사회에서는 그가 삼성그룹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를 다루기 부적절하다며 “스스로 직무 수행을 회피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참여연대는 12일 “양창수 전 대법관, 삼성 부당합병 수사심의위원장 직무 스스로 회피해야”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 같이 밝혔다. 2009년 삼성그룹의 불법 경영권 승계 사건에 이미 무죄를 내렸던 인물이 이 사건 심의를 불편부당하게 이끌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이라 불린 사건은 이재용 부회장(당시 삼성전자 전무)이 종잣돈 45억원으로 200조원 매출을 거두는 삼성그룹 경영권을 장악한 과정 중 하나였다. 에버랜드는 1996년 11월 99여억원 규모의 전환사채(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를 발행했고 대부분을 이 부회장 남매가 인수했다. 사채가 전환될 시 주식 수는 에버랜드 전체 주식의 62.5%에 달했다. 사실상 지배권이 넘어갔다.

이 부회장은 이를 1주당 7700원인 헐값에 인수했다. 당시 에버랜드 주식 1주 순자산 가치는 22만원을 넘었고 세법상 평가액도 12만7750원이었다. 이건희 회장 등 개인 주주와 삼성전자, 제일모직, 중앙일보 등 법인 주주들이 주주 배정을 포기하고, 이사회가 그대로 승인해 이뤄졌다. 

2000년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임직원들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2009년 최종 무죄 선고됐다. 1·2심 법원이 2007년 에버랜드 전직 사장이었던 허태학·박노빈씨에게 유죄 선고했으나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로 파기환송했다. 양 위원장은 이때 대법관으로 무죄 의견을 냈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적 경영 승계 작업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설 때부터 시작됐다”며 “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을 눈감아 준 이가 또다시 동일한 맥락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 승계 과정의 불법에 대한 수사 여부를 판단하는 심의위의 위원장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2008년 2월27일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 '이재용 내일 소환' ⓒMBC
▲2008년 2월27일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 '이재용 내일 소환' ⓒMBC

 

참여연대는 “심의위가 이재용 부회장의 엄중한 범죄에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양 위원장은 자신이 수사심의위 수행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심의위 운영지침 11조(현안위원의 회피·기피) 1항은 “현안위원은 심의 사건과 관련해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회피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위원장외 총 15명) 지난 11일 과반을 상회하는 위원들 찬성으로 이 부회장을 포함한 최고위 임원 3명의 회계 사기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에 올렸다. 수사심의위는 사건 수사나 기소 여부 등의 의견을 내는 검찰 자체 기구다. 검찰이 심의위 결정을 따를 의무는 없으나 지금까지 심의위 의견과 반대로 기소한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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