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널리즘 위기에 공영방송 정파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이들 신문이 소유한 종합편성채널 등 ‘조중동 신방복합체’의 독과점도 여론 시장을 왜곡하고 있지만 공영방송도 친정부 편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진보 언론학자에게서 나왔다.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 발제자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조중동 신방복합체만 침묵하면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발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짚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저널리즘”이라고 밝혔다.

손 교수는 “한국의 공영방송은 영원히 ‘친정부 편향’일 수밖에 없는 걸까”라며 “대표적 보기로 저널리즘을 바로잡겠다는 KBS의 ‘저널리즘토크쇼J’가 보여주듯 KBS·MBC, 교통방송(TBS) 시사프로그램들은 ‘친정부 편향 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손 교수는 지난 2월 KBS 저널리즘토크쇼J 시즌2에 합류했지만 제작진에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자진하차했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손 교수는 “KBS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합시다’를 몇 달에 걸쳐 방송했다. 유시민·박형준 등 고정 출연자에서 볼 수 있듯 정치를 양당 구도로 굳어졌고 실제 그 결과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거대 양당 체제로 나타났다. 교통방송의 김어준 시사프로그램은 노골적인 진영 방송이다. 그 결과 저널리즘은 쇼나 희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레기’로 단정 짓는 해괴한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권력 감시가 저널리즘 생명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고를 접은 채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이 짙어가고 있다. 저널리즘 자체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시청률과 청취율, 구독율을 무기로 응집한 진보진영의 저널리즘 이해와 정파적 언행이 저널리즘 신뢰도를 추락시킨다는 비판이다.

손 교수는 더불어민주당도 도마 위에 올렸다. 손 교수는 “민주당은 언론개혁을 진영논리로 공공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정파적 관점에서 보면 2020년 현재 언론 지형에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꼬집고는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은 정말 기우일까”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언론 신뢰도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송건호의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맞섰던 언론인 송건호 선생은 언론을 소유한 기업주들로부터 편집의 자율성 보장이 시대적 과제임을 제시했고 이를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송건호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지금 ‘편집권 독립’에 관해 헌법은 차치하고 입법하자는 움직임도 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대통령 직속으로 미디어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그 위원회가 미디어 개혁 합의를 이루고 그를 토대로 국회에서 법제화하는 과제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위원회 구성을 통해 ‘편집권 독립과 소유권 분산’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손 교수의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적극 반박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를 지낸 정 교수는 “시민언론단체가 민주당의 하위 조직으로 편입돼 간다는 주장은 지나친 말씀이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걱정스럽다. 이와 같은 주장은 언론개혁 대상이자 개혁운동에 반대하고 있는 일부 보수 언론 프레임”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언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가짜뉴스 규제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움직임을 보일 때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또 민주당 등 정당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관여하는 방송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미래통합당에 비해 민주당이 개혁입법에 나설 수 있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행보를 같이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를 ‘민주당의 하위조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손 교수의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비판에도 “일부 프로그램은 비난받곤 하지만 저널리즘토크쇼J의 경우 KBS 미디어포커스, 미디어비평 등을 잇는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이 언론개혁 대상인 보수·수구언론과 종편에 비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친정부 편향 세력 영향력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정 교수 반박에 “제 발제문 표현대로, 시민언론운동이 민주당의 하위조직으로 편입돼 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은 정말 기우일까라고 다시 묻고 싶다”며 “성찰할 지점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KBS 시사 프로그램 ‘정치합시다’가 총선을 앞두고 양당의 대표 스피커인 유시민, 홍준표, 박형준 등을 불러서 이야기했고 총선 결과 역시 양당 구도로 공고화했다. 최근 저널리즘토크쇼J가 최강욱(열린민주당 대표)을 불러 토크했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누군가는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지적해야 하지 않느냐. 교수가 안 하면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 발제자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조중동 신방복합체만 침묵하면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발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짚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저널리즘”이라고 밝혔다. 사진=김용욱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기획세미나’ 발제자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조중동 신방복합체만 침묵하면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발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저널리즘 복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짚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저널리즘”이라고 밝혔다. 사진=김용욱 기자.

토론자로 나선 이선민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언론의 정파성도 문제지만 정파성 강한 시민들이 저널리즘 위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일단 ‘기레기’로 낙인을 찍고, 자신들이 믿는 ‘진실’을 관철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은 토론문을 통해 “언론이 완전한 중립성,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취재에는 이미 기자의 문제의식이 포함돼 있고 신문기사의 편집과 TV뉴스 꼭지들의 순서 배정에는 데스크와 보도국의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어떤 사안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그 사안의 맥락과 이면에 대한 해석 또는 관점을 제공한다면 거기에 개별 언론인·언론사의 정파성이 반영됐다고 해서 배척할 일은 아니다”라며 “단 언론인과 언론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규범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책무를 잊지 않는 것이며 ‘정파성’은 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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