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계 사기 사건은 “전무후무한 3대 기업범죄 축소판”이란 말이 나온다. 횡령, 뇌물, 분식회계와 관련한 3대 범죄가 모두 발견된단 점에서다. 이 중 수사 중인 혐의는 분식회계만이다. 횡령·뇌물 사건은 2017년 박영수 특검의 수사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됐고 현재 파기환송심 진행 중이다.

이번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수사는 특검 수사의 연속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연결고리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승계 작업 핵심인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위법성을 확인했고 그에 딸린 분식회계 정황을 포착했다. 그러나 제한된 인력과 시간으로 합병이란 몸통만 겨눴다. 남은 과제를 검찰이 파고들었다.

삼성물산이 끊임없이 보도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승계작업 핵심 성과인 삼성물산 합병 전후 시기에 여러 비위 정황이 포진해있다. 특검이 2015년 합병과 그 이후 시점의 뇌물과 로비에 집중했다면 검찰 수사는 그 이전의 ‘회계 사기’에 집중했다. 2012~2015년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은 그중 하나다.

▲ '구속영장 기각' 구치소 나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 지난 9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치소 나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 주가↓ 제일모직 주가↑, 필사의 노력

삼성물산이 중요한 이유는 물산의 삼성전자 지분(합병 전 4.06%) 때문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탄탄한 반면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려졌다. 별도 조치 없이 상속법을 따른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화됐다. 가령 이 회장의 삼성전자 3.35% 지분이 1.35%로,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생명에 대해 이 회장이 가진 20.76% 지분도 8.3%로 줄어 이 부회장에게 넘겨질 수 있었다.

삼성전자 지분은 자사주(11.1%), 삼성생명(7.55%), 삼성물산 순으로 높았다. 승계 작업의 핵심은 ‘최소 자금’으로 최대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삼성물산이 지분 확보 수단에 적합했다. 제일모직은 이 회장 일가가 42.19% 지분(이 부회장 23.24%)으로 지배하면서 삼성생명 지분(19.34%)도 보유한 회사였다.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획이 공개됐다.

삼성물산은 자산규모로 보나 업종, 시장성으로 보나 제일모직보다 기업 가치가 월등히 높았다. 2015년 3월 말 연결재무상태 기준 삼성물산 자산은 15조원, 제일모직은 4.7조원이다. 2014년 말 재무제표 기준 삼성물산 매출액은 제일모직의 5.6배였고 순자산은 2.5배, 영업이익은 3배로 높았다.

이는 이 회장 일가에 불리했다. 삼성물산 가치가 최대한 낮고 제일모직 가치가 높아야 합병 후 제일모직 주주 지분이 극대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검·검찰은 이 대목에 주목한다. 삼성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조정했고, 이후 이를 문제없이 넘기기 위해 삼성물산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에 로비했으며 대통령에 뇌물을 줬다는 것. 2015년 5월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삼성물산=1:0.35’로 정해졌다. 제일모직 주가를 훨씬 상회할 걸로 보이던 삼성물산이 합병 직전 제일모직 가치의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민일보 2015년12월22일 국민일보 1면 사진보도 '朴,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 참석' 사진기사.
▲국민일보 2015년12월22일 국민일보 1면 사진보도 '朴,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 참석' 사진기사.

 

‘삼바 분식회계’ 핵심은 1조8000억 원 부채 고의 누락

검찰 수사는 크게 제일모직 가치는 부풀리고 삼성물산 가치는 최대한 낮추는 부분으로 나뉜다.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는 덴 자회사 삼성바이오(지분 45.7%) 역할이 있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높여 삼성바이오 가치를 올리고, 모회사 제일모직 가치도 끌어올린 전략이다.

먼저 삼성바이오는 2012~2014년 동안 부채로 잡힐 ‘콜옵션’(기한 내 주식매수권)을 공시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미국 회사 바이오젠과 합작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면서 주주 간 약정을 했다. 2018년 전까지 바이오젠이 원할 땐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49.9%’까지 추가로 넘긴다는 콜옵션이었다. 회계 원칙상 부채로 잡아야 했다. 삼성바이오는 합병 전까지 이를 회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콜옵션 존재만 공시했고 의무로 공개해야 하는 구체적인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모두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이다.

이를 수습하다가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2015년 말 콜옵션을 공시하면서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지는 계산이 나왔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가 부풀려진 상황에서, 그동안 숨겨온 콜옵션을 반영하려니 문제가 발생했다. 안진 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를 5조2700억원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지분을 가진 삼성바이오의 회계상 이익은 4조5000억원이 나왔고 콜옵션 부채는 1조8000억원으로 계산됐다. 삼성바이오는 자본금이 6000억원으로 부채가 자본을 훨씬 뛰어넘었다. 삼성그룹의 신수종 사업으로 각광받은 삼성바이오는 합병을 성사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논란은 삼성에겐 부담이었다.

삼성바이오는 회계법인의 자료를 받고도 2015년 3분기 사업보고서에 1조8000억원 부채를 뺐다. 그리고 그해 말 회계처리 방식을 바꿨다. ‘종속회사’로 삼았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갑자기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종속회사는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회사고, 관계회사는 지분 20~49%을 보유해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회사다. 둘의 회계 처리 방식이 다른 점을 이용한 것. 이 전략은 삼성바이오와 삼성그룹 미전실 사이에 오간 전자우편 등 내부문건에서 확인됐다.

참여연대는 “콜옵션을 제대로 공시했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적정 합병 비율은 1:0.5를 넘는다. 이렇다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지적했다. 삼성물산 주식 11.43%를 가진 국민연금은 합병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검찰, 시세조종 혐의 유심히 살펴

2014~2015년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는 과정에도 시세조종 혐의가 포착됐다. 투자자 등에게 널리 알려야 할 대형 사업 수주를 공개하지 않거나 건설사업을 다른 계열사로 이관하는 식이다. 삼성물산은 2014년 한 해 수주액 약 8조원 중 2조원(약 25%)에 달하는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수주 실적을 합병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사업들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이관 했다.

특히 합병 전 2015년 상반기엔 30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신규주택사업을 하다가 합병 후 1만여 가구 규모로 대폭 확장했다. 2015년 1~5월 국내 건설업 업종지수는 28.7% 상승했지만 삼성물산 주가는 8.9% 하락해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합병 비율을 산정할 때 공신력있는 근거로 쓰인 안진·삼정 회계법인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는 부실로 확인됐다. 안진 회계법인 보고서는 삼성물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조7500억원’을 보고서에 누락했다. 통상 기업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줘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값이다. 특히 제일모직이 실체가 모호한 ‘에버랜드 동식물을 이용한 바이오 신사업’을 추진한다고 꾸며 기업가치를 2조9000억원 부풀렸다. 한겨레는 “안진 소속 회계사들이 ‘삼성 요구로 합병비율을 ‘1:0.35’에 맞춰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증거인멸 혐의도 있다. 금융감독원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두 발견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4월 삼성전자 상무의 지휘로 직원들이 내부 서버에서 ’JY’, ‘승계’, ‘미전실’ 등의 단어를 검색해 나오는 자료를 삭제했다. 이에 검찰이 5월 삼성바이오 공장과 삼성바이오에피스 팀장급 직원 집을 압수수색해 회사 공용 서버를 찾았다. 공장 바닥 아래에선 직원들 노트북도 무더기로 발견됐다.

삼성바이오 임원들은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는 중 금감원이 특정 문건 제출을 요구하자 문건 작성자를 미래전략실 바이오사업팀에서 삼성바이오 재경팀으로, 작성 시점을 2011년 12월에서 2012년 2월로 수정해 제출한 적도 있다.

▲2008년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6일 열린 1심 선거공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8년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6일 열린 1심 선거공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이익은 본 사람은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17.23%로 최대주주가 됐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5.47%를 보유했다. 이들 모두 합병 전엔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사안을 감시해온 참여연대는 지난해 7월 종합보고서에서 “현재까지 나온 사실관계를 종합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재산정하면 최대 1:1.36까지 상승한다. 이 경우 이 부회장 등의 부당 이득액은 최소 3조1000억원에서 최대 4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주가 시세 조종,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지난 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쳤으나 9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 사건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검찰 측은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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