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지지율(약 70%)은 대선 당시 자신의 득표율(41%)보다 높다. 이는 민주화 이래 유일한 사례다. 여당의 압도적 총선 승리 역시 이례적이다. “코로나로 4년차 지지율 역대최고”(조선일보 5월8일), “코로나19 사태 적절 대응”(매일경제 5월8일) 등 언론은 긍정 평가가 높은 이유로 ‘코로나19 대처’를 꼽았다. 

위기대처에 능했다는 것도 합리적 진단이지만 3년간 이어진 높은 지지세를 코로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지지율이 추락했음에도 대체로 40%대를 유지했고, 코로나가 초기엔 정권에 악재로 작용했으며 최근 다시 코로나가 확산하지만 지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물론 시민들 열망으로 이룬 헌정사상 첫 탄핵이 이번 정부를 향한 높은 기대감의 토대가 됐고, 남북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승리도 청와대에 힘을 실었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지만 현 정부의 달라진 소통방식도 주목할 요인이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서울역 인근에서 지난 5일 문재인 정부 초대 국민소통수석실 산하 뉴미디어비서관(현 디지털소통센터장)으로 일했던 정혜승 작가를 만났다. 그는 최근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창비)’라는 책을 냈다. 문화일보 14년, 카카오 9년 등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경험으로 청와대에서 일방향에 초점을 둔 홍보가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고민한 흔적이 묻어났다. 

▲ 정혜승 작가,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시절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답변화면 갈무리
▲ 정혜승 작가,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시절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답변화면 갈무리

 

정 작가는 2017년 6월 첫 출근 당시 사무실을 보고 ‘디지털의 섬’이라고 표현했다. ‘철통’보안을 이유로 와이파이조차 없고, 짧은 영상 하나 올리는데도 2시간씩 걸렸다. 종이를 구경할 수 없던 전 직장 카카오와 달리 회의자료를 사람 수대로 출력해야 하고 노트북 대신 데스크톱만 있는 청와대에서 디지털 보안을 해치지 않으며 속도를 높여가는 일부터 했다. 

정 작가는 “포털에 의존하지 않는 청와대 자체 플랫폼을 구상했다”며 “어차피 포털에 대통령 홍보글 부탁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방송사에 항의를 들어가면서도 청와대가 라이브를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의 시도지만, 아무도 찾지 않던 청와대 홈페이지를 공론장으로 만드는데 톡톡히 역할을 한 건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국민들의 기대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답변하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현 정부에 기대를 이어간다. 당장 해결할 수 없겠지만 청원게시판에 글이라도 쓴다면 그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정 작가는 담당 부처에서 해명자료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청와대 비서관, 장관 등 책임자가 직접 ‘영상’에 나와 답변하는 걸 원칙으로 정했다. 

“출범 초기라서 가능했어요. 대통령의 뜻이 있어서 가능했고요.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고 생각해요. 장관이 책임지고 얘기하는 건 해당 부처에서 자료쓰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딱 부러지게 답변할 순 없지만 해당 사안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의 로드맵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죠. 한계가 있더라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약속을 지켜나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봐요.”

최근 53만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허위로 드러난 국민청원이 있었다. 언론에선 ‘터질 게 터졌다’, ‘청와대가 대책을 마련하라’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정 작가는 “초기엔 ‘누구 사형해달라’와 같은 청원이 캡처돼 돌아다녀도 속수무책이었지만 100명 사전동의 받으면서 안전장치를 뒀다고는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웃기다’, ‘이상하다’, ‘이런 청원까지 들어왔다’는 비판기사만 쓸 게 아니라 ‘논쟁적 사안이다’, ‘검토가 필요하다’ 등 공론장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거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3권분립으로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청와대라 하더라도 못하는 게 많으며, 때로는 국회에 공을 넘기기도 하는 등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청원은 청와대와 국민 간 소통뿐 아니라 공무원들 간 소통에도 영향을 줬다. 정 작가는 “특정부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여러 부처가 달라붙어 간신히 해결할까 말까 한 문제가 많다”며 “공무원들도 하고 싶지만 풀리지 않았던 일을 국민청원의 힘을 빌렸다”고 말했다. 20만명이 넘을 때마다 의무적으로 답변을 해야 하므로 반복해 청원이 올라오는 사안에는 “더 다양한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하게 되더라”라고 했다. 국민청원의 순기능 중 하나다. 

지난 1월 선보인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10만명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위원회에서 심사할 의무가 생기고, 서울시는 1000명이 동의할 경우 박원순 시장이 직접 답하는 ‘민주주의 서울’을 운영한다. 서울시교육청도 시민 1만명 또는 학생 1000명이 원하면 교육감이 답변하는 청원게시판을 운영했다. 청와대 청원을 계기로 유권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행정에 반영하는 플랫폼이 늘고 있다. 

정부기관의 콘텐츠가 더는 낡지 않았다는 인식개선이 청와대 유튜브 채널의 큰 성과다. 정 작가가 꼽은 청와대 유튜브 공식채널의 주 성공요인은 다른데 있었다. 

▲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정 작가(오른쪽부터), 소방청장, 현직 소방관.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국민청원에 답변하는 정 작가(오른쪽부터), 소방청장, 현직 소방관.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정 작가는 “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이번 정부는 홍보수석실을 국민소통수석실로 개명했다. 정치인에서 국민으로 초점을 옮기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4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청원에 대한 국민답변 영상을 예로 들었다. 청와대는 그와 정문호 소방청장뿐 아니라 현직 소방관(익산소방서 센터장)까지 초대해 답변했다. 

정 작가는 “현장에선 ‘(자신들이) 청와대 영상에 나오는 거냐’며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10일 ‘맛점하러 갑니다’는 청와대 인근에서 점심 먹던 중학생들을 담은 영상이다. 식사 후 청와대에 견학간다고 말하다가 점심 먹고 나오던 문 대통령을 발견해 같이 사진을 찍자며 좋아하는 모습을 담았다. 영상의 포인트는 대통령과 사진 한 장 찍고 좋아하는 학생들의 귀여운 모습일 뿐 대통령은 보조 출연자에 가까웠다. 

▲ 청와대 유튜브 ‘4·27 새로운 시작, 그날을 준비한 사람들’ 화면 갈무리
▲ 청와대 유튜브 ‘4·27 새로운 시작, 그날을 준비한 사람들’ 화면 갈무리

 

기획력이 돋보이는 영상도 찾을 수 있다. 남북 정상의 실제 목소리로 만든 ‘4·27 새로운 시작, 그날을 준비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한 군인과 노동자, 정부관계자 등을 조명했다. 지난 4월19일자 ‘다시 부르는 상록수2020,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세계 의료진에게’는 노래 상록수를 윤도현, 백지영, 바다, 홍진영, 조이(레드벨벳) 등이 부르며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영상인데 영어로 쓴 댓글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청와대니까 가능한 섭외력이기도 하다. 

역대 청와대 관계자들은 ‘자신이 모신 대통령이 소탈했고 국민을 위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홍보물 중심에 대통령을 놓고 소위 ‘오글거리게’ 대통령을 칭찬한다고 국민과 가까워지진 않는다. 

▲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디지털소통센터에 주문한 내용. 센터 직원들은 이런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으로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라 불렀다고 한다. 정혜승 작가는 “윤 수석의 ‘교시’는 이게 유일했고 우리 재량을 존중했고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사진=정혜승 제공
▲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디지털소통센터에 주문한 내용. 센터 직원들은 이런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으로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라 불렀다고 한다. 정혜승 작가는 “윤 수석의 ‘교시’는 이게 유일했고 우리 재량을 존중했고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사진=정혜승 제공

 

최근 청와대는 국민 중에서도 학생들,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 등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했다. 또 이전 정부와 차이는 청와대가 가르치기보단 답변하는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정 작가는 “대통령은 ‘소상하게 다 말씀드리면 국민이 이해할 것’이란 신념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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