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현실 가능성은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현실 가능성은
2009년~2018년 10년간 언론 상대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 분석결과 
승소율 39.7% 이겨도 500만원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할 확률은 40% 수준이며, 승소하더라도 인용액은 청구액의 10분의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오늘이 언론중재위원회가 매년 발간하는 ‘언론판결분석보고서’에 집계된 2009년~2018년까지 10년간의 언론 관련 민사판결 1592건, 이 중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을 분석한 결과다. 

2009년~2018년까지 언론 관련 민사 1심판결은 941건, 2심판결은 471건, 3심판결은 180건이 존재했으며 항소율은 평균 68.26%, 상고율은 49.74%로 나타났다. 대다수 원고가 명예훼손을 주장했으며 원고승소율은 49.13%로 절반에 약간 못 미쳤다. 상소심의 원심판결 유지비율은 88.37%로, 거의 뒤집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사 소송 건수를 언론사별로 나눈 후에, 이를 다시 청구 별로 분류해 손해배상 청구를 합산한 결과 10년간 손해배상 청구사건은 모두 2220건이었으며 원고승소율은 39.74%로 나타났다. 정정·반론 보도 등을 포함한 전체 사건 원고승소율보다 10%가량 떨어지는 승소율이다. 연도별로는 2010년 원고승소율이 26.8%로 가장 낮았고, 2015년이 47.3%로 가장 높았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10년간 손해배상 사건에서의 청구액 평균은 2억138만2000원이었으며, 인용액 평균은 1946만4000원으로 나타나 청구액에 비해 인용액이 10분의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 중 실제 금전배상으로 이어진 사건은 900건으로 절반 이하였다. 청구액 최빈액(가장 빈번하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평균 7800만원, 인용액 최빈액(가장 빈번하게 선고한 손해배상액)은 평균 565만원으로 역시 10분의1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비율로 따져보면 손해배상 인용액이 500만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 금전배상 사건의 47.4%로 가장 높았으며 뒤를 이어 500만원 초과~1000만원 이하가 23.4%였다. 손해배상이 이뤄지는 언론판결의 70.7%는 1000만원 이하인 셈이다. 이어 1000만원 초과~2000만원 이하가 14%, 2000만원 초과~5000만원 이하가 10.2%였으며 5000만원 초과는 4.9%였다.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의 언론인 승소율은 10년 평균 60.2%였다.

즉, 언론 보도 이후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언론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나설 경우 원고 승소율은 50% 수준이며,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승소율이 40%로 떨어지고, 배상을 받더라도 청구액의 10분의1 수준이 대부분이며, 절반이 500만원 이하의 배상액을 받는 게 현실이라는 의미다. 비판 보도를 압박하기 위한 공인·국가기관·대기업의 봉쇄 소송을 제외하고 생각해본다면 실제 언론보도 피해자들이 소송으로 체감하는 피해구제는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21대 국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punitive damages) 논의가 활발하게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피해 실질적 구제 어려워”… 21대 국회에 등장할 ‘징벌적 손해배상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18일 통화에서 언론 관련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 “인용액이 너무 적다. 공인을 제외하면 일반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쉽지 않은데 인용액 대부분이 500만 원 이하면 소송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뒤 “법원이 판결을 통해 무책임한 언론 보도에도 ‘참고 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김영란법처럼 존재만으로도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기사의 질을 높이려면 기사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지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형벌적 요소의 배상액을 추가하는 제도로, 미국이 해당 제도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은 △위법성 △의도성 또는 악의성이 명백한 경우다. 국내에선 2004년 참여정부 당시 언론피해구제법을 논의하며 본격 등장했다. 

앞서 2013년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성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자, 당시 한국신문협회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언론 보도에 민·형사 책임을 같이 지우는 우리나라 법률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부당한 규제”라며 반대했다. 미국은 대다수 주에서 언론 보도에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법학박사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15일 통화에서 “한국과 미국은 인격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다”고 밝힌 뒤 “한국은 언론의 배상책임을 넓게 인정하고 배상액을 적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에 가면 무죄로 나올 판결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한국처럼 민·형사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형사처벌에 준하는 민사처벌”이라고 설명한 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범죄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해 손해에 더해 사회적 처벌 성격을 더하는 개념으로, 미국에서도 논란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 있다고 해서 그대로 한국에 차용하는 것은 곤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소속 김성순 변호사는 18일 통화에서 “현 법·제도로는 실질적인 언론 보도 피해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 한국의 문제점은 거액의 손해배상액이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어 있다는 사실”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언론이 도를 넘는 경우, 언론에 의한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 미국에선 언론사 경영이 어려울 정도의 금액이 나온다”고 강조한 뒤 민변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 입장이라고 밝혔다. 

▲17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17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이런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개혁의 주요입법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해 “단순히 몇백만 원 배상해주고 마는 식으로는 언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망하는 수준의 배상액을 묻는 시스템이 있어야 언론의 팩트체크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을 예고했다.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은 18일 통화에서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의 주요 12개 공약에 대한 지지 투표를 진행했는데 30%가량이 1순위로 언론개혁을 꼽았다”며 “정책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을 우선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열린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통합 혹은 연대 수순을 밟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여당 쪽 당론이 된다면 입법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물론 인격권 침해의 경우 손해액 입증이 쉽지 않고, ‘악의성’ ‘고의성’을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어서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달라졌을 판결

박근혜정부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서 동아일보는 2014년 2월 유씨를 간첩이라고 단정한 최초 신고자 김아무개씨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기사의 파장이 적지 않았는데, 이후 김씨가 유우성씨에게 불리한 허위 증언을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은 동아일보 인터뷰 수고비로 김씨에게 200만원을 줬다. 문재인정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이 사건 증거조작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형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상 날조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우성씨가 동아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형사판결로 간첩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상태임에도 정반대로 원고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하거나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김씨의 발언 등을 그대로 보도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인용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가 언론중재법 등이 정하는 언론의 공적‧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유우성씨가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손해배상액은 1000만원이었다. 간첩으로 인생이 부정당했던 것에 비하면 가벼운 액수였다.

홍씨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틀 뒤 언론인터뷰에 나선 뒤 언론에 의해 ‘허언증 환자’로 몰렸고, 이례적으로 해경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구속돼 101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은 뒤에도 홍씨의 고통은 이어졌다. 악성루머의 시발점은 당시 스포츠월드 기자였던 김용호씨 트위터였다. 김씨 트위터는 수백 건의 기사에 인용됐다. 많은 이들이 김씨의 고의성을 의심했다. 재판부는 “홍씨는 트위터 글에 실린 허위사실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홍씨가 김씨로부터 받은 손해배상액은 1000만원이 전부였다. 김씨는 홍씨가 제기한 형사고소건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08년 방송된 SBS '긴급출동SOS24'의 '찐빵소녀'편.
▲2008년 방송된 SBS '긴급출동SOS24'의 '찐빵소녀'편. 디자인=안혜나 기자. 

2008년 방송된 SBS 시사프로그램 ‘긴급출동SOS24’의 ‘찐빵소녀’편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방송내용은 허위사실일 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이미 자신들만의 사실과 결론을 도출하고 줄거리를 구상한 다음 이에 맞추어 취재 및 촬영을 진행하고 편집해 제작한 악의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작진은 방송을 위해 피해자로 묘사된 ‘찐빵소녀’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렸다. 방송 이후 가해자로 묘사된 가족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가족 중 한 명은 6개월간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SBS가 이 방송으로 약 3억 원 정도의 광고 수익을 올린 점을 고려해 방송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위자료 액수를 3억 원으로 산정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 가족이 요구했던 손해배상액은 10억원이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사건과 관련된 방송 관계자들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지만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만약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앞서 언급한 사건들의 배상액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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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5-20 12:57:56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은 △위법성 △의도성 또는 악의성이 명백한 경우다." <<< 의도성과 악의성을 가지고 보도하는 경우 피해자한테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안에서 이 부분은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무죄라면 누가 보상해줄 건가. 정신적 트라우마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하다. 또 하나 이번 KT&G 사건처럼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진실탐사였는지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정의를 원하는 거 아닌가. 누군가의 권한(기자를 소유하는 대주주의 권한, 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하는 이유)이 지나치면 부정/부패는 반드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