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수식하는 단어는 ‘구원투수’다. 그의 이력만 보면 ‘철새’, ‘뇌물수수 범죄자’ 등으로 평가받을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위기에 빠진 거대 양당을 개혁할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했고 거대양당을 오가며 5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3년 뇌물죄로 당선무효형을 받고 민자당에서 탈당했다.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돼 이듬해 총선과 대선에 ‘경제민주화’를 쟁점화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국민의당에도 잠시 입당했다.

그는 대중과 밀착한 스타가 아니다. 1988년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했다 낙선했고, 2017년 대선출마를 선언했지만 파장조차 없었던 걸 보면 철저히 미디어에만 등장하는 정치권 엘리트다. 언론이 김종인을 어떻게 조명했는지가 지금까지 ‘구원투수’로 불리는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노컷뉴스
▲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노컷뉴스
▲ 거의 대다수 매체에서 김종인을 '구원투수'로 부르고 있다.
▲ 거의 대다수 매체에서 김종인을 '구원투수'로 부르고 있다.

 

2011년 12월 한겨레가 김종인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기사의 첫 부분이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젊다. 늘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하고 이를 수용한다. 넓다.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안철수, 뭔가 하려면 비전 내놓고 국민검증 받아야”였다. 이른바 ‘안철수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으로 언론이 다뤄야 할 메시지다. 방송사 정치부 A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김종인은 메시지가 간결하고 자신이 발언할 타이밍을 잘 본다”고 평가했다. 그가 합리적 보수로 평가받으니 언론 입장에선 인터뷰가 정파적이라는 시선도 덜 수 있다.

2012년 1월 한나라당 비대위원 시절 그는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하자”고 했다. ‘보수’가 낡았다는 이미지로 비판받는 현실을 쉽게 드러냈다. 그가 2016년 1월 민주당에 가자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로 “운동권 체질 바꿀 결기 있나”라고 했다. 당시 보수진영에선 민주당을 ‘친노’와 ‘운동권’들의 ‘친문패권주의 정당’이라 했다. 이틀 뒤 김종인은 “당내 친노 패권주의를 수습하겠다”고 했다.

김종인이 대중과 밀착해 인기를 얻은 정치인이 아니듯 기자들과 스킨십으로 호감을 얻는 스타일도 아니다. 뉴스통신사 정치부 B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기자들 전화를 잘 받지도 않고 (기자들 사이에선) 보수언론 전화만 잘 받아준다는 불평도 있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던지며 고공전에 능한 인사였고, 역설적으로 기자들 친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최근 김종인은 ‘지난 대선주자는 배제하자’고 했다. 가장 논쟁이 될만한 소재를 재빠르게 던진 것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뇌물죄 등을 언급하며 김종인을 비난했다. 경향신문에선 “비대위 놓고 삐걱대는 통합당, 대선 샅바싸움 할 때인가”(27일 사설)처럼 반성 없이 밥그릇 싸움 중인 통합당을 비판하는 소재로, 조선일보에선 “김종인 비대위, ‘창조적 파괴 시대’ 열어야 한다”(25일자 강천석 칼럼)처럼 개혁에 대한 기대감으로 김종인을 활용했다.

김종인은 2011년 영입되면서 양극화 완화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인물이 됐다. 선거에서 불리해 보이던 새누리당이 개혁인사로 외연을 넓혀 역전했다는 드라마를 쓸 때 김종인은 핵심조연이 됐다. 대선이 가까워지자 김종인은 친박들에게 쫓겨났다. 쫓겨난 인물 역시 감정이입하기 좋은 소재다. 쫓겨난 김종인은 2016년 민주당에 가서 이해찬·정청래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친노청산’을 일부 실천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다시 보수언론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재료가 됐다. 

▲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이언주 후보가 21대 총선에서 함께 유세하는 장면(위)과 20대 총선에서 함께 선거운동하는 장면. 철새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 온라인상에서 회자됐다.
▲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이언주 후보가 21대 총선에서 함께 유세하는 장면(위)과 20대 총선에서 함께 선거운동하는 장면. 철새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 온라인상에서 회자됐다.

 

지역신문 정치부 C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언론에서 ‘해결사’로 쓸 때 여전히 공감이 안 가는 면이 있고 선거기술자 이미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2012년 대선, 2016년 총선 성공이 크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B기자는 “이번 총선 직전 ‘또 김종인이냐’는 반응이었지만 진짜 김종인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김종인은 막말로 논란이 된 차명진 후보를 끊어내자고 했지만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당의 위기를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정당정치가 허약하다는 뜻이다. 

▲ 1990년 3월17일자 경향신문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 실명제 강력반대한 교수출신" 기사. 김종인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이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를 앞장선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 1990년 3월17일자 경향신문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 실명제 강력반대한 교수출신" 기사. 김종인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이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를 앞장선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김종인에 대한 검증은 부실했다. 2016년 1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는 김종인 영입을 두고 “김종인 전 경제수석이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등을 일반화했다”고 평가했다. 김종인이 헌법에 경제민주화를 넣었다니 별 무리 없이 언론이 받아 썼다. 하지만 1990년 3월17일 경향신문에선 김종인 당시 경제수석를 “금융실명제에 강력반대한 교수”로 보도했다.

정치권과 언론 모두 김종인을 검증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권을 주면서도 정파적 이득, 극적인 보도에 그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선거 승리가 정치의 전부일 수 없다. 언론은 김종인에 의존했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양당의 문제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과연 언론이 수년간 그의 이중적인 행태나 국보위 참여 전력 등을 끈질기게 문제 삼으며 ‘철새 행보’를 비판했다면 그가 지금껏 ‘구원투수’로 호평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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