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슬라멧(가명)씨는 고국 인도네시아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올초 경기 지역에서 일하다 그만둔 뒤 잠시 고향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다녀왔다가, 지난달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이 저지됐다. 주소가 불분명한 장기체류 외국인은 자가 격리가 어렵다는 이유다. 앞서 A씨는 퇴사하면서 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나와야 했다. 그는 결국 출국 조치됐다. 주어진 구직 기간에 돌아가 취업하지 못하면 이른바 ‘불법체류자’로 추방 대상이 된다.

이주노동자 우마르(가명)씨도 지난 12일 공항에 발이 묶일 뻔했다. 그도 1년 반 일한 직장을 나와 다른 일자리를 찾는 기간에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일을 그만두면서 한국 내 주소가 없어진 상태였다. 공항에서 휴대폰으로 수소문한 끝에 경기 안산에 사는 친구의 남는 방을 하나 얻기로 했다. 그것도 이주인권단체가 월세계약을 도운 뒤 계약서를 부랴부랴 검역소에 제출한 뒤에야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격리된 2주 동안 구직 기간도 흘러가 노심초사다.

정부가 방역을 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거주지와 연락처가 확인돼야 입국을 허용하는 가운데, 안내를 받기 앞서 출국한 이주노동자들이 기약 없이 입국 금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다수가 구직 중인 노동자들로, 고용허가제에 따라 기한 내 취업하지 못하면 비자가 박탈된다. 정부가 이들에게 입국 거부된 기간만큼 구직 기한을 연장하고 구체적 방침을 마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19일부터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한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했다. 취업비자를 소지한 이주노동자 등 장기체류자는 자가격리를 원칙으로 하고 여의치 않으면 입국을 미루도록 했다. 여행‧관광객 등 90일 이내 단기체류자는 14일간 임시 생활 시설에 격리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 출국한 이들 중 거소지가 마땅치 않은 이주노동자들이다.

▲해외입국자 검역 흐름도. 중대본 웹사이트 갈무리
▲해외입국자 검역 흐름도. 중대본 웹사이트 갈무리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에 숨 고르기를 위해 고향에 다녀온다. 국내 이주노동자 관리체계인 고용허가제는 이직을 신청한 이주노동자에게 승인을 거쳐 3개월의 구직활동 기간을 준다. 이주노동자들은 다수가 사업장에 따른 숙소 생활을 해, 직장을 나오면 ‘거소지 미정’ 상태가 된다. 만약 구직 기간 안에 일할 곳을 찾지 못하면 미등록, 즉 세칭 ‘불법’ 체류자가 된다. 출국한 이들은 같은 비자로 입국이 불허된다. 

이율도 이주인권 활동가는 “보통 이주노동자들은 구직활동 기간에 지친 몸을 쉬거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본국에서 한 달 지내고 돌아와 남은 두 달간 일자리를 알아본다”며 “이주인권단체에 접촉하지 못한 입국 불허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중대본은 자가격리 의무자들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설에 입소하거나, 지자체‧보건소와 협의해 원룸 같은 독립공간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겐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 지자체 시설마다 운영 방침이 제각각이라서다. 자가격리할 주소가 없는 이주노동자 C씨는 이주인권단체 도움을 받아 경기 용인의 유일한 지자체 시설에 입소를 문의했지만 ‘외국인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구직활동 기간을 최대 2개월까지 늘리는 조치를 내놨다. 노동부는 지난 2월28일 ‘최근 이주노동자 고용센터 방문 자제를 권고해 취업 알선이 어려워졌다’며 2월28일~4월30일 구직 기간이 겹치는 이들에게 기한을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장 기간이 최장 2개월에 그치는 데 반해 이들은 언제 다시 재입국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향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국한 뒤에도 의무 격리되는 14일만큼 취업 기회를 놓쳐 미등록이 될 우려도 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 등 9개 연대단체의 주최로 지난해 10월20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공동행동 등 9개 연대단체의 주최로 지난해 10월20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 이주인권센터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 SNS 상담을 통해 자가격리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온다. 검역소에 물어봐도 누가 전화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 안내를 하지 못하고, 더욱이 머물 공간을 찾는 건 민간에 맡겨지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다”며 “노동부의 일관된 정책과 지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 거소지가 불분명한 경우 재입국 불가능하므로 출국을 자제토록 안내하고, 이미 한국을 출국한 이들에겐 입국 시기를 조정토록 하고 있다. 또는 독립공간 등 격리 장소를 찾으면 입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구직 기한 정책을 두고는 “현재 최대 7월까지 연장한 셈이라 추가 연장 여부는 추후 상황을 보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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