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며 상대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가 늘고 있다. 이때 언론은 후보자가 제기한 의혹을 전하기만 하면 될까. 

경기도 고양시 지역신문인 고양일보는 지난 1일 ‘김영환 선대위 “홍정민 후보는 박수택 후보의 사퇴 관련 정치적 책임 져야”’란 기사를 보도했다. 고양시병 지역구 미래통합당 김영환 후보 선거대책위 홍보본부에서 이날 성명을 냈는데 이를 그대로 전한 기사다. 성명의 주 내용은 같은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후보가 정의당 박수택 후보 사퇴 관련 책임을 지라는 내용이다. 

박 전 후보는 전날인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소수정당이 펴고자 하는 한줌의 기회와 꿈마저 거대 양당은 횡포로 짓밝았다”는 등의 내용을 남기고 후보를 사퇴했다. 김 후보 선대위는 해당 글과 박 후보가 지난달 민주당 한 시의원이 박 전 후보에게 부적절한 언사를 했다는 비판글 등을 토대로 ‘민주당 쪽이 박 후보 사퇴에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영환 캠프 성명이 적절한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명확한 근거 없이 추정 만으로 의혹을 제기해 상대캠프를 공격했다는 지적과 함께 선거 국면에서 상대후보에게 의혹을 묻고 진상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의견이 가능하다. 다만 이를 언론이 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고양일보는 박수택 전 후보를 포함해 관련자들의 실명을 그대로 실었지만 그들에게 반론내지 입장을 묻진 않았다. 해당 기사 바이라인에는 기자이름이 아닌 ‘고양일보’라고만 했다.  

▲ 경기 고양시 지역신문 '고양일보' 로고
▲ 경기 고양시 지역신문 '고양일보' 로고

 

이에 박 전 후보는 지난 3일 고양일보에 항의했다. 그와 고양일보 관계자 통화 녹취를 보면 박 전 후보는 “김영환 캠프에서 성명을 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허허’ 웃으며 무시했던 내용인데 지역언론에서 사실확인이나 내게 인터뷰 요청도 없이 크게 실어 기정사실화할 수 있느냐”며 “내가 줏대도 없이 사퇴한 게 아니다. 결론을 말하면 압박·회유를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고양일보 관계자는 “성명서를 그대로 실었을 뿐”이라는 대답을 반복했다. 

박 후보는 해당 성명을 ‘마타도어’라며 고양일보 쪽에 “이 기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박 후보는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자신이 두 후보 다툼에 이용당했다며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양일보 홈페이지를 보면 이 신문사는 2016년 8월 법인등록한 미디어시티그룹이 그 다음달 ‘미디어고양’이란 제호로 인터넷신문사등록한 곳이다. 2018년 7월 ‘미디어고양파주’, 2019년 10월 현 제호인 ‘고양일보’로 변경했다. 

과거 대표였던 최아무개씨는 이번 총선에서 고양병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가 최종 후보가 되지 않자 고양병 통합당 후보인 김영환 캠프에 합류했다. 최씨는 과거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고양시의원을 했다. 현재 고양일보 대표 역시 바른미래당(현 미래통합당) 후보로 고양시의원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 김영환 미래통합당 후보 측 성명을 그대로 실은 고양일보 기사. 이 기사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기자이름 없이 '고양일보'라고만 표기했다.
▲ 김영환 미래통합당 후보 측 성명을 그대로 실은 고양일보 기사. 이 기사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기자이름 없이 '고양일보'라고만 표기했다.

 

이날 두 번째 통화에서 고양일보 관계자는 “(박 전 후보 입장을 담은) 추가 보도자료를 내달라”고 말했다. 박 전 후보는 당에서도 탈당했고 선거 사무실을 비우고 있다. 박 후보는 고양일보 전 대표가 김영환 캠프에 가있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럼 더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양일보 관계자는 “(박 전 후보가) 이의제기를 한다면 성명을 낸 김영환 캠프 쪽에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성명서를 옮겼을 뿐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 전 후보는 바이라인에 기자이름과 이메일을 밝히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기사 쓴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해당 관계자는 “공개가 안 되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고양일보 뿐 아니라 특정 캠프의 의혹제기를 최소한의 취재 없이 그대로 전하는 매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당사자가 언론사에 직접 연락했다면 그때라도 입장을 듣고 반론권을 줘야 하지만 고양일보는 그러지 않았다. 박 전 후보는 기사를 내리고 사과할 것을 요청했지만 5일 현재 박 전 후보의 입장을 반영하는 등의 조치는 없었다. 

박 전 후보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후보사퇴 이유로 지난 2년간 정의당이라는 소수정당의 원외 지역위원장으로서 한계를 말했다. 

물론 현재 고양시장이 민주당 소속이고 시의회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있어 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민주당 뿐 아니라 거대 양당의 정파논리, 기후위기 등 미래세대를 위한 의제로 싸우고 싶지만 개발사업 공약을 두고 겨룰 수밖에 없는 지역구 선거의 한계, 일부 유권자에 대한 실망감 등을 거론했다. 

선거비용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당선가능성이 낮은 것도 무시 못할 변수였다. 또 자신이 정치판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성찰하며 시민으로 돌아가 ‘시민정치’의 길을 걷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성명서처럼 민주당 일부 정치인의 압박 때문에 후보를 사퇴했다고 해석하기 힘든 다양한 이유를 열거했다. 

더 꼼꼼하게 지역소식을 전해야 할 지역신문에서 자신들 전현직 대표와 특수관계에 있는 특정 캠프의 성명서를 그대로 옮기고 이를 반박하자 ‘성명 낸 캠프에 항의하라’는 건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는 게 박 전 후보의 의견이다. 박 전 후보는 MBC·SBS에서 30년 넘게 기자로 일했고, 환경전문기자로 대주주의 반대에도 4대강 사업 비판을 굽히지 않아 강단있는 기자라는 평을 받았다.    

고양일보 관계자는 3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실확인을 안 한 게 아니라 (성명이 박 전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 그대로”라고 말했다. ‘성명에 나온 이유 때문에 사퇴한 게 아니라고 항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성명문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답을 반복했다. 해당 기사를 누가 썼는지 묻자 해당 관계자는 “말씀드리기 좀 그렇다”며 확인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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