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도 피우고 산책할 겸 집을 나와 배회하던 중 남성 두 명이 날 따라왔다. 한명은 카메라를 들었고, ‘A씨 인가요?’ 다른 한명이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다시 물었다. ‘박사라고 아시나요?’” 

A씨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18일 오후 2시경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취재진이 찾아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박사’에 대해 물었다. 박사를 아는지, 돈을 받으려 암호화폐 지갑 주소(은행계좌에 해당)를 ‘박사방(텔레그램 성착취방)’에 왜 올렸는지, 박사랑 글쓰거나 그림 그리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식의 질문이 이어졌고 A씨는 카메라 앞에서 ‘박사를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알 취재진은 자신들이 4일간 A씨를 잠복·미행한 사실을 알리며 특정 아파트(실제론 A의 어머니 집)에 왜 갔는지, 환전이나 세탁을 도운 적이 없는지, 경찰이 압수수색해도 상관없는지 등도 물었다. 당시 아직 ‘박사’는 유력용의자 신분이었지만 범행을 부인하던 상황이었다. ‘박사’는 16일 체포됐는데 범행을 시인했다는 소식은 경찰이 20일 오전에 발표했다.

A를 ‘진짜박사’ 또는 공범자로 확신했나

그알이 A씨에게 질문했던 내용, 지난주 방송(21일) 직후 올라온 예고편 등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그알 취재진은 오는 28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주제로 방송하는데 ‘체포된 박사 조주빈씨가 진짜 박사가 아닐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해당 예고편을 보면 범인을 몰래 추격하듯 A씨의 차량을 뒤쫓고, 취재진이 달려가 A씨를 붙잡아 ‘박사를 아시나요’라고 묻는 장면 등이 있다. 예고편 제목은 ‘자서전과 비트코인-진짜 박사가 남긴 시그니처’였다. 예고편만 보면 A씨가 ‘진짜박사’라고 볼만한 내용이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주 방송(21일) 직후 나온 28일 방송 예고편.  그알 제작진은 A씨의 차량을 마치 범죄자를 추격하는 취재진의 모습처럼 편집했다. 실제 예고편에선 차량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A씨는 자신의 아파트 단지와 특이한 자신의 차량색상이 노출돼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예고편 갈무리, 차량부분 모자이크와 색변조=미디어오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주 방송(21일) 직후 나온 28일 방송 예고편. 그알 제작진은 A씨의 차량을 마치 범죄자를 추격하는 취재진의 모습처럼 편집했다. 실제 예고편에선 차량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A씨는 자신의 아파트 단지와 특이한 자신의 차량색상이 노출돼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예고편 갈무리, 차량부분 모자이크와 색변조=미디어오늘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알 측에 따르면 조주빈씨가 운영하던 박사방에 지난 9일 암호화폐 주소가 몇 개 올라왔다. 이 중 하나가 A씨 비트코인 주소다. 박사방 참가자들은 성착취물 대가로 암호화폐를 지급하는데 보통 운영자가 1:1 채팅방을 열어 주소를 주고 암호화폐를 받지만 이례적으로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던 이 시기 단체방에 주소들이 올라왔다. 그알 취재진은 이방에 올라온 주소 중 하나라는 이유로 A씨를 박사의 공범자 내지 ‘진짜 박사’로 추정했다. 

A씨는 이날 취재진이 떠난 이후부터 약 6일간 문자와 이메일로 14차례 해명을 보냈다. 예고편이 올라온 이후엔 예고편 삭제도 요청했다. 담당 PD는 이메일에 답변하지 않았고 문자로만 일부 답을 했는데 계속 A씨를 범죄자로 보는 관점이었다. 

깨끗했던 A의 암호화폐 주소내역

미디어오늘이 박사방에 올라왔다는 A씨 비트코인 주소내역을 확인한 결과, 박사방 활동기간 중 해당 주소에 들어온 내역은 지난해 5월10일 0.000211BTC(비트코인 단위)가 유일하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1BTC 당 약 743만원이니 환산하면 A씨 주소에 들어온 돈은 약 1500원이다. 

▲ A씨의 비트코인 지갑주소 내역 중 일부. 해당 주소는 이미 온라인상에 공개돼있다. 오른쪽 아래 녹색 박스 부분이 들어온 돈. 지난해 5월10일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1500원이 입금된 것이다.
▲ A씨의 비트코인 지갑주소 내역 중 일부. 해당 주소는 이미 온라인상에 공개돼있다. 오른쪽 아래 녹색 박스 부분이 들어온 돈. 지난해 5월10일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1500원이 입금된 것이다.

 

통상 20만원에서 150만원 수준을 내고 들어가는 유료 성착취방에 사용된 주소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에게 A씨 주장과 자료를 공유했는데 역시 “범죄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답을 얻었다. 

게다가 A씨는 2013년부터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졌고, 주요 커뮤니티에서 암호화폐 관련 글을 쓴 전문가이며 A씨의 비트코인 주소는 온라인상에 공개돼있다. 즉 누구라도 A씨의 비트코인 주소를 알 수 있으며 온라인에선 암호화폐를 설명하는 여러 글에서 ‘비트코인 주소는 이렇다’는 식의 글에 A씨 주소를 인용한 적도 있다.

A씨의 해명만 살펴봐도 A씨를 공범으로 보기 어려운 지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PD는 A씨에게 “전문가에게 크로스체크를 하고 있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그알 취재진이 왜 A씨를 오랜 기간 범죄자로 봤을까도 의문이다. 

담당PD와 A씨의 통화와 문자내역 등을 종합하면 그알 취재진은 A씨에게 형식적인 반론만 받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담당 PD는 ‘취재진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경찰에 넘길 것이고 압수수색을 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A씨에게 얘기했다. A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압수수색도 상관없고 오히려 경찰이나 암호화폐 전문가 입회하에 해명하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PD는 응하지 않았다. A씨가 경찰에 확인했지만 경찰은 ‘A씨에 대한 수사계획이 없다’고 했다.  

수차례 해명한 시점인 지난 23일 PD와 A씨의 첫 통화가 있었다. 통화내용을 보면 A씨는 “파렴치범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건데 중립적 입장에서 내 얘기를 감안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난 그걸 못 느끼고 있다”고 하자 PD는 “그건 방송 보고 확인하라”고 답했다. 예고편에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A씨 차량 색이 특이해 “예고편만 봐도 동생이 절 알아봤다”고 하자 PD는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며 “가족까진 알아볼 수 있다. 반론은 실어주겠다”고 말했다. 

성착취방 운영자들이 암호화폐를 사용한 이유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암호화폐 주소를 대량(약 수만개)으로 확보해서 이 주소들로 자금을 쪼개 서로 반복 거래하면 내역을 추적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즉 시작주소와 끝주소만 정확하게 결정해 중간과정을 복잡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믹싱’이라고 한다. 조주빈 일당은 ‘믹싱’으로 자금을 세탁한 뒤 현금으로 찾고 봉투에 넣어 조주빈 자택 주변에 놓는 방식(일명 ‘던지기’)으로 전달했다. 그알 제작진은 암호화폐 전문가인 A씨가 믹싱을 해주거나, 현금을 전달한 것 아니냐고도 추정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8일 예정이었던 방송 원래 제목은 ‘자서전과 비트코인-진짜 박사가 남긴 시그니처’였다. 사진=예고편 갈무리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8일 예정이었던 방송 원래 제목은 ‘자서전과 비트코인-진짜 박사가 남긴 시그니처’였다. 사진=예고편 갈무리

 

그알 제작진이 A씨가 ‘믹싱’했다고 추정한 시점은 2018년 3월이다. 이 시기는 박사방이 활동한 시기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오늘이 해당 주소내역을 확인한 결과 특정 주소에서 A씨 주소를 포함해 여러 주소로 자금을 보낸 흔적은 있다. 다만 A씨는 이를 인출해 사용했다. 믹싱을 하면 중간에 돈이 빠져나가선 안 되고 최종 목적지 주소까지 흘러가야 하므로 이는 믹싱으로 볼 수 없다. 게다가 A씨가 인출한 금액은 0.00284554 BTC로 이날 비트코인 시세(1BTC=1196만원)로 환산하면 약 3만4000원이다.  
 
약 일주일간 식사도 못하고 잠을 설친 A씨는 지난 24일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23일 미디어오늘에 억울함을 제보했고, 25일 SBS 고충처리인에 고충을 접수해 26일 ‘예고편을 삭제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25일 오후 SBS를 상대로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미디어오늘은 26일 오전 그알 쪽 취재를 시작했다. PD는 “(A씨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반론권 드려 방송보면 ‘왜 저러셨지?’(싶을 거다)”라며 “중간과정(취재과정)이 불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명 무시하던 그알, A를 공범자에서 피해자로 방향 전환

약 한시간 뒤 해당 PD는 다시 미디어오늘에 전화해 ‘A씨가 가해자가 아닌 (암호화폐 주소 도용) 피해자로 방송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A씨가 그간 해명했고, A씨의 주소내역 등을 보면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날 오후 통화내용을 보면 PD는 A씨에게 “암호화폐 분석이 끝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나도 4일간 쫓느라 힘들었다. 다음에 한번 식사 대접하며 죄송하다고 말씀리겠다”며 A씨에게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피해자로서 인터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A씨에게 “가처분 실익이 없으니 취하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이날 오후 SBS는 그알 홈페이지에 이번 주 방송을 예고했다. 제목은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 텔레그램 박사는 누구인가’다. 

가처분 심문기일이 열리는 27일, 경찰은 ‘박사방’에 올라온 암호화폐 주소 3개 중 2개가 조주빈과 무관한 사람 것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주소를 활용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A씨가 해명해온 내용이다. A씨는 경찰 발표 직후 “너무 억울했고,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른다”며 “아내도 같이 울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26일 오후 SBS 측과 PD에게 A씨의 해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이유, A씨가 입은 물리·정신적 피해에 대한 입장, 실제 경찰 쪽과 얼마나 공조했는지, 전문가 의견을 제대로 구했으며 A씨를 공범으로 판단한 해당 전문가는 누구인지 등을 물었다. 이에 해당 PD는 27일 오후 문자메시지로 “서로 오해가 있어 가처분 과정에서 오해풀고 서로 얘기를 잘 나눴다”며 “가처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결과와 방송을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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