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뒤 한국언론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르포기사를 쏟아냈다. 보도 양상은 중국동포의 ‘위생관념’을 근거 없이 지적하는 혐오 보도와 ‘방문객 줄어 한숨 쉬는 대림동’ 묘사로 나뉜다. 정작 이번 사태를 둘러싼 대림동 거주 중국동포들의 여론은 어떨까. 대림동과 가리봉동 거리의 중국동포 매체를 펼치면 답을 엿볼 수 있다.

격주간지 한중포커스신문은 지난 10일 발행인 칼럼 “중국인 혐오 언론보도 이젠 멈춰야, 비이성적·반인간적”을 실었다. 칼럼은 “국민들의 중국인 혐오 정서엔 일부 언론의 ‘아무말대잔치’도 한몫하고 있다”며 “왜 하필 이 시점 굳이 대림 차이나타운을 찾아 중국인이나 동포를 비위생적인 집단으로 보도하며 감염 확률이 높은 것처럼 공포감을 조성하는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다. (…) 대림동은 이번 감염증 예방을 위해 신속 대처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중국동포 거리의 식품점·여행사 등 상점을 통해 무료 배포된다.

칼럼을 쓴 문현택 한중포커스신문 대표를 13일 대림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본래 해당 신문이 주로 정보전달 기사를 다루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보면 코로나19 진원지가 대림동 같아요. 대림동 출신이거나 중국동포인 확진자는 지금까지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문현택 한중포커스신문 대표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예리 기자
▲문현택 한중포커스신문 대표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예리 기자

문 대표는 중국동포들이 언론보도에 “무감각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국언론은 과거 사스(SARS) 국면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화 청년경찰 등 사태가 터질 때마다 대림동 등 중국동포 밀집지역을 찾아 타자화하는 보도를 이어온 터다. 최근 대림동 취재엔 ‘내국인’ 점주들까지 분노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지방자치단체가 대림동 소독방역에 나서자 언론사 8곳에서 취재를 왔다. “내국인 상점 사장들이 나와 언론사에 ‘왜 매일 대림동에만 와서 찍냐’고 항의했어요.”

대림동의 중국동포들은 절박감에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국동포 매체들은 최신호 1면에 영등포구청이 동포 단체와 코로나19 예방 대책회의를 연 소식을 나란히 실었다. 중국동포 단체들은 대림중앙시장 일대에 자발적으로 감염예방 지침을 배포하고 있다. 귀한동포연합총회는 최근 소독기를 구매해 거리를 소독하는 모습을 홍보했다. 중국동포 사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대림동은 (과거 확진자가 나온) 강남이나 용산 정도가 아니라 ‘작살’이 난다”는 위기감에서다. 김동훈 서울서남권 글로벌센터장은 “국내 민간단체 가운데 이렇게 적극 감염병 예방과 방역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포털 뉴스페이지 ‘대림동 르포’ 검색 결과 갈무리.
▲포털 뉴스페이지 ‘대림동 르포’ 검색 결과 갈무리.

종편 틀어두기 어려워, 청년경찰은 트라우마… 중국동포 매체에 진짜 삶이 있다

문 대표는 중국동포들이 국내 주류언론을 찾아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언론 속 중국동포 이미지부터 실제와 달라 못미덥다. 나아가 이들을 두렵게도 한다. 한국사회가 중국동포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다. 중국동포가 보도에 언급되는 때는 범죄사건, 그것도 가해자가 중국동포인 경우다. “대림동의 지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민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려 노력하는지는 (보도에) 없어요.”

특히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은 중국동포로선 틀어놓기 어렵다. 무지와 편견은 호칭에서부터 드러난다. “종편 일부에선 범죄사건을 언급하며 ‘조선족’을 써요. ‘조선족’ 호칭도 ‘중국동포’로 써야 한다고 정리한 지 오래예요. 조선족은 중국이 56개 민족을 나누면서 만든 말이라, 한국에서 부르면 ‘한국족’과 조선족이 근본부터 다르단 뜻이에요. 최근엔 보수언론과 정치권까지 코로나19를 두고 ‘우한폐렴, 우한폐렴’ 해요.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말리는데 꼭 그렇게 할 이유가 뭔가요.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대도 아니라고 말하는 게 언론 아닌가요?”

영화 ‘청년경찰’(2017)은 중국동포 사회에 트라우마다. ‘청년경찰’은 대림동을 경찰들도 가기 꺼리는 무법지대로 묘사하고, 중국동포를 장기밀매 범죄집단으로 그렸다. 영화 ‘황해’(2010), ‘신세계’(2013), ‘악녀’(2017), ‘범죄도시’(2017) 등도 중국동포들이 장기밀매나 청부살인업자로 그린다. 이에 중국동포 언론사들이 모여 대책 포럼을 연 적도 있다.  문 대표는 포럼에서 “한국 언론이 언젠가부터 극소수 중국동포의 범죄를 이슈화하며 국민에게도 선입견을 심었다. 영화들도 그 영향을 받아 범죄 이미지를 부각하고 양산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중국동포 매체들은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과 구로구 가리봉동을 비롯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포된다. 사진=김예리 기자
▲중국동포 매체들은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과 구로구 가리봉동을 비롯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포된다. 사진=김예리 기자

중국동포들이 주축이 돼 언론 모니터링을 한 적도 있다. 관영매체만 허용된 중국에서는 보도를 감시한다는 개념이 생소한 탓에 동북아평화연대가 서울시 후원을 받아 관련 교육을 했다. 20여명이 모니터한 결과 중국동포를 언급한 기사의 54%가 범죄 관련이었다. 모니터링을 이끌던 박연희 조각보(이주한국인여성 평화운동단체) 공동대표는 “술 마시고 다퉈도 중국동포가 하면 기사가 되고, 거기에 또 욕 댓글이 달린다. ‘조선족’이란 단어를 쓴 기사에는 댓글이 더 안 좋다”고 했다.

이처럼 ‘내국인 언론’에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중국동포 매체는 정보전달의 중추 역할을 한다. 매체들은 국내 주류언론이 관심 두지 않는 중국동포 관련 출입국 정책을 설명해준다. 가수 백청강 인터뷰나 설맞이 문예공연 소식 등 동포사회 뉴스도 전한다. 문 대표는 “국내 언론엔 ‘칼부림’ 소식뿐이지만, 중국동포 매체를 보면 실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한중포커스신문은 다른 중국동포 매체에 비해 의견기사와 생활법령 소식을 많이 다룬다. 청년경찰 사태 땐 법률대응과 서명운동 과정을 따라가며 기사와 논평을 냈다. 문 대표는 중국동포 매체는 10여년 간 다른 중국동포 매체에서 기사를 써왔지만, 비판적 의견기사도 자유롭게 쓰고 싶어 2016년 새 매체를 창간했다. 편집위원들에게 정기·비정기 기고와 기사를 받고, 나머지 기사는 문 대표가 도맡고 있다.

문 대표는 국내 언론사들에 “대림동을 찾는다면, 취재에 앞서 답을 정해두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은 이제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을 부정할 수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를 안아야 하는데, 언론이 오히려 사실을 다르게 보도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모습에 안타깝습니다. 언론이 동포사회가 내국인사회와 어떻게 섞여가고 있고,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답을 열어두고 오길 바랍니다.”

[ 관련 기사 : ‘대림동 르포’, 대림동에서만 보이는 풍경이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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