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발언에 검찰과 일부 언론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검찰 내부 분위기와 달리 한 현직검사가 SNS에 수사와 기소 분리가 매우 바람직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수사-기소검사 분리는 극단적 주장’, ‘기소권 빠진 검찰은 사법경찰로 전락’,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권력형 부패사건에 장애를 가져온다’ 등의 반론을 두고 이 검사는 기소권이 검찰에게 주어진 천부인권이 아니라며 검찰이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형집행 과정을 독점하는 것이야말로 더 극단적이라고 반박했다.

진혜원 대구지검 형사4부(환경·보건범죄전담부) 부부장검사는 지난 12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추 장관의 제안을 두고 본인의 구체적인 경험 등을 들면서 “일선 검사로서 결론부터 기재하자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진 검사는 검찰과 주류 언론이 반대하는 목소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공개적인 페이스북에 실은 이유와 검찰 등 법조계의 반대 논리에 관한 의견 등을 묻는 미디어오늘의 질의(댓글질의)에 14일 저녁 답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상세히 답변했다.

진 검사는 추 장관 제안에 검찰 내부에서 부글부글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뉴스1 ‘추법무, 서울·대구·광주부터 수사-기소 분리 검토…검 부글부글’)를 들어 “실제로 ‘부글부글’하는 검사님들은 거의 없는데, 그런 것처럼 기사제목을 단 점, 법무부 장관 지시 사항이 실무자 입장에서는 정확히 딱 필요한 사항이었다는 점을 페친과 방문자들에게 알려드리면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썼다”고 설명했다.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를 분리하자는 주장이 극단적이라는 검사출신 이완규 변호사의 14일자 중앙일보 기고문 주장에 진 검사는 “수사-기소-공소유지-형 집행은 모두 서로 다른 작용인데, 우리나라는 검사가 모두 다 하게 되어 있다”며 “(군 사건 관련) 군 검찰과 일반 검찰로 나뉘는 것 외에 모든 사람과 사건을 일반 검찰이 수사-기소-공소유지-형 집행까지 독점하게 되어 있는 것이 오히려 극단적인 권력 집중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진 검사는 “존 액턴경의 말처럼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므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역사적으로는 수사와 기소 및 재판도 한 기관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수사 및 기소와 재판을 분리할 때에도 극단적이라는 반론이 심했다”고 설명했다. 진 검사는 “수사에 집중하다 보면 당사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해서 반영하여야 할 객관의무를 망각하거나 고의적으로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11일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법무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11일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법무부

 

‘기소권을 빼앗기면 검찰은 사법경찰관에 불과하다’는 이완규 변호사의 주장에 진 검사는 “기소권은 천부인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며 “헌법상 모든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직에 임용됐을 때 부여받는 역할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진 검사는 그 권한을 두고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회 및 국가원수의 책임에 의해 입법으로 신설, 변경, 분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해석했다.

추 장관의 수사-기소 분리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 기소에 영향을 주고 권력형 비리 수사를 위축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몇몇 언론과 법조계 의심에 진 검사는 “얼마 전까지 검찰이 많은 언론 플레이를 한 사건이 실제로 ‘권력형 청와대 범죄’인지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진 검사는 이어 “권력형 비리 수사가 위축된다고 우려하는 분의 공직에 대한 자세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공직자의 의무는 인사권자가 나에게 인사 불이익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누가 보더라도 의문의 여지가 없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진 검사는 권력형 비리 수사의 결재선(결재라인)이나 기소 검사를 설득할 수 없다면 본인이 기초한 법리나 증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느냐 권위주의 독재를 추구하느냐의 문제와, 수사와 기소 단계를 나눠 한번 더 리뷰하는 절차를 마련하느냐는 문제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국 사건 등에서 일부 증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수사와 기소 단계를 나누는 것은 정권의 수사와 무관하게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사안에 따라 한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느냐는 질의에 진 검사는 “정부 구성원이 효율성을 추구하느냐, 진실성을 추구하느냐는 철학의 문제이자 균형의 문제”라며 “수사와 기소 및 재판을 한 사람이 다 하면 가장 효율성은 높겠지만 그만큼 실체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데 필요한 눈이 가려질 여지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진 검사는 “효율성을 추구하자면 자백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도 된다”며 “객관적 실체와 진실을 담보하고, 자백 압박이라는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보강증거 법칙이 도입됐으므로 선진적 절차적 정당성 보장은 멈출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실체적 진실의 발견 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설명이다.

검사 사회와 다른 의견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냈다가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염려는 들지 않았느냐는 질의에 진 검사는 “제가 현직으로는 최초로 내부제보 시스템에 따른 감찰을 청구했을 때부터, 그 당사자이셨던 검사장, 차장검사, 제가 근무한 모든 청의 간부들, 동료, 선후배 모두 격려와 응원, 공감한 분들이 더 많아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답했다.

진 검사는 지난 12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수사와 기소 분리 필요성과 관련해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해도 불기소하는 비율이 해마다 3~4%라는 점을 들어 이런 사건을 기소할 경우 당사자들은 억울할테고, 재판부는 불필요한 재판을 해야 하며 무죄 판결문까지 작성하는 아까운 시간이 소요된다고 썼다. 그는 검사가 직접 수사한 경우에도 구속 등 검사의 직접 수사가 수사 검사의 명성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이 있고, 수사 검사가 자신의 부장검사, 차장검사 또는 검사장을 설득할 수만 있으면 피의자 구속이나 기소 여부를 아무런 제한 없이 결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진 검사는 수사부터 공소제기까지 검토단계를 다층화하면 수사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몰래 알려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명성을 취득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고,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꼼꼼히 검토해 더 수준 높은 공소제기와 절제된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진 검사는 “결재라인 이외에도 시스템에 의한 검사 검토 단계가 추가될 경우 수사검사 스스로도 더 엄격하게 보고, 시스템상 검토하는 검사(기소 검사)는 객관적 입장에서 기록을 보게 돼 더 인권친화적이고 법치국가적인 공소제기가 가능하리라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 13일자 1면 ‘추미애 검사 분리 협의 요구… 윤석열 즉각 거절’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기소 검사를 분리할 경우 권력형 부패 범죄에 대응하는 데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며 “대검은 반대 의견”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법조계에선 추미애 법무장관 말대로 수사와 기소 검사를 분리할 경우,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썼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다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다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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