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관련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에 범죄혐의가 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는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수사중인 사안이라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미 검찰 수사는 끝났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절차가 남았다.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인사들이 불법 선거개입과 직권남용을 했다고 행정부 내의 수사기관인 검찰이 재판에 넘겼는데도 일체 설명하지 않아 투명한 공무집행 원칙 뿐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에도 반한다는 지적이다. 법정에서 밝힌다면서 당장 어떻게 된거냐고 묻는 국민에게는 왜 못 밝히는지 의문이다.

법무부가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자 동아일보가 이를 입수해 5일자 지면에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면 ‘“조국, 김기현 경찰수사 상황 15차례 보고받아”’와 10면 머리기사 ‘檢 “靑, 선거前 석달간 김기현 수사기밀 엿새 한번꼴 보고받아”’ 등을 통해 검찰이 주장하는 청와대 인사들의 구체적인 범죄혐의를 소개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공소장에서 △조국 전 민정수석이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최소 15차례 보고를 받았고 △송철호 울산시장의 요청으로 장환석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통해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발표를 연기했으며 △송병기 부시장은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절대적 지원을 확약받았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썼다. 이밖에 한병도 전 정무수석은 2018년 2월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공기업 4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회유했다고도 했다.

이처럼 검찰은 청와대 인사들이 하명, 특혜성 선거지원, 회유 등 선거개입과 직권남용의 죄를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리고 법원에 정식 소를 제기(공소)했는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입장은커녕 사실관계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오후 브리핑에서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이 울산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 연기 요청을 수락하고, 한병도 전 수석이 임동호 전 최고위원에게 공기업 사장 등 4자리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다’고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데 사실여부를 묻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수사중인 사안이고, 공소사실은 재판을 통해 법적인 판단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기자도 ‘조국 전 민정수석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15차례 보고 받았다’는 공소장 내용에 입장을 물었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조 전 수석 관련 부분도 역시 공소장에 나온 내용이 아니냐”며 “수사중인 사안이라 재판을 통해 법적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다른 기자가 ‘노영민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경찰이 청와대에 9차례 보고했다고 했는데 조국 전 수석이 15회 보고받았다는 동아일보 보도과 상이한데 사실여부를 달려달라’고 질의하자 이 관계자는 “당시 보고는 개요에 대한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 사안에는 역시 수사중인 사안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만난)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밝히기 어렵다”고 답을 피했다.

수사중인 사안이라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검찰 수사는 조국 한병도 박형철 등 청와대 인사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결론내렸다. 공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이상 수사단계는 이미 지났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청와대에서 벌어진 공무수행과 정책수립집행 등 전과정을 투명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수사진행중이라면 몰라도 이미 수사가 끝나 범죄혐의자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지목한 마당에 청와대가 아무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에 예의도 아니고 의심만 키울 우려가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달 30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으로 기소되자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달 30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으로 기소되자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 관련해 청와대와 사전 논의했느냐는 질의에 청와대 관계자는 “법무부가 규정에 따라 결정했고, 청와대는 그 사안을 알고 있다”며 “그것이 사전인지 사후인지는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민정수석 때 공소장 제출과 달리 추미애 장관이 제출하지 않은 것은 상반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의에 이 관계자는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칙에 따라 정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법무부 “공소장 전문공개 무죄추정원칙 침해, 최소한 범위로 국회 제출키로”

한편 전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를 결정했던 법무부는 5일 오후 입장을 내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그동안 공소장 전문을 언론에 공개한 바가 한 번도 없었다”며 “법무부 제출 공소장 전문이 형사재판 개시 전에 언론에 공개된 것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잘못된 관행으로,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조국 전 장관 사건을 비롯해 국회 요구 공소장 전문을 익명처리 후 제출했으나 제출한 공소장 전문이 그 직후 언론에 여과없이 공개되는 일이 반복됐다”며 “공소장은 소송절차상 서류로서 공개 여부는 법원의 고유 권한에 해당하고, 법원행정처도 피고인과 변호인에 송달하는 것 이외에 제출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법원과 국회를 모두 존중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과 국회의 권한을 균형있고 조화롭게 보장하기 위하여 공소의 요지 등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 범위에서 이를 공개·제출하기로 결정했고, 이후에도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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