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된 탈북자 이주성씨 사건 3차 공판 쟁점은 뜻밖에도 고인이 된 이희호 여사의 ‘건강상태’였다. 이씨측은 사자 명예훼손이 친고죄인 점을 들어 이 여사의 고소 의사가 불명확했다는 부분을 입증하고자 건강상태를 계속 캐물었다.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재판부(진재경 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이씨 변호인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을 상대로 지난해 98세 고령이었던 이희호 여사를 가리켜 “이 여사가 간암이었느냐”, “2018년 12월경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떤 이유로 얼마나 입원했느냐”며 수차례 건강상태를 물었다. 이씨 변호인이 “지난해 3월20일 입원 당시 몸 상태가 어땠냐”고 묻자 박 실장은 “기력이 없으셨지 말씀은 또렷하게 하셨다”고 답했다.

▲2019년 6월1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 ⓒ연합뉴스
▲2019년 6월1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 ⓒ연합뉴스

박한수 기획실장은 “지난해 2월 말 하태경 의원이 책을 갖고 센터로 찾아와 내게 제보했다. ‘보랏빛 호수’ 책 내용을 검토하고 3월 초에 보고해드리니 이희호 여사가 종전과 같이 고소하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고소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2016년과 2017년 사자명예훼손 소송도 모두 내가 대리했다”고 덧붙였다. 이씨 변호인이 “이희호 여사에게 책을 보여줬을 때 이 여사가 책을 읽었냐”고 질의하자 박 실장은 “주요한 명예훼손 부분만 밑줄을 그어서 보여드렸다”고 답했다.  

앞서 이씨는 2017년 ‘보랏빛호수’라는 책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일성과 결탁해 폭동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으며 북한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주장했으며 각종 유튜브 방송과 집회현장에서 김 전 대통령이 북한군의 남파를 부탁한 사실이 있는 것처럼 주장해 허위사실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정규재TV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지역 무기고 위치를 북에 알려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에 대한 고소장 접수일시는 2019년 3월11일이며, 이 여사는 그해 6월10일 세상을 떠났다. 이씨 측 변호인은 이날 “98세 간암 환자에게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는 무리한 얘기를 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 (당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지능력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소가 이뤄지기 1년 전 언론 인터뷰를 보면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담당 판사는 “인터뷰할 정도면 건강했던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 변호인은 이날 고소 당시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이희호 여사의 담당 주치의에 대한 증인신청을 요청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이 여사의 고소절차 위임의사가 담긴 위임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책과 유튜브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 이에 대한 고소절차를 요구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 여사의) 고소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 측은 이날 하태경 의원의 증인신청도 요구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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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방송 화면. 모자이크 저리된 이가 김명국(가명)씨. 옆자리에 앉은 이가 이주성씨다. 건너편에 앉은 이는 김광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다. 

이주성씨가 쓴 ‘보랏빛호수’의 부제는 ‘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한 탈북군인의 5·18체험담’으로 주인공 이름은 정순성이며, 월간조선은 “김명국과 정순성이 동일인물이거나 동일한 작전에 참여한 인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명국(가명)씨는 2013년 5월15일 채널A 시사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했고, 이후 국내에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한 허위정보가 본격 확산됐다. 그러나 김명국씨는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이씨는 김명국씨의 채널A 인터뷰 당시 김씨 옆에 동석했으며 문제의 채널A 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해 김씨 주장에 주석을 달았다.

이씨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김명국씨와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씨측은 “신변 위협으로 김명국씨가 증인으로 나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명국씨가 직접 재판에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주성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대화 녹음파일은 상대가 누군지 명확하지 않다. 진술 내용을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증거의 신빙성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 기일은 3월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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