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하면 에이즈 걸린다” 등 반동성애 진영의 왜곡 주장을 검증 보도한 개신교계 언론 뉴스앤조이가 ‘가짜뉴스’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3000만원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법원이 보도의 공익성과 허위 여부는 검토하지 않고 가짜뉴스 단어 자체를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한 탓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김병철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뉴스앤조이가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의 김지연 약사(한국보건정책연구원장), 유튜브채널 khTV, 비법인사단 ‘GMW연합’을 ‘가짜뉴스 유포자’로 보도해 이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이들에게 각 1000만원씩 총 3000만원 손해배상을 지급하고 관련 표현을 삭제하라고 선고했다.

세 원고 모두 뉴스앤조이가 자신들을 ‘가짜뉴스 유포자’라거나 ‘가짜 뉴스 유통 채널’이라고 특정해 “명예 내지 인격권이 현저히 침해됐다”며 가짜뉴스 문구 삭제와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가짜뉴스' 표현 삭제와 손해배상금 지급이 청구된 뉴스앤조이 보도.
▲'가짜뉴스' 표현 삭제와 손해배상금 지급이 청구된 뉴스앤조이 보도.

재판부는 ‘가짜뉴스’ 표현이 “일반인 신뢰를 저하시킬 의도가 담긴 공격 표현으로 공공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없고,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데다 원고를 허위사실 유포자로 낙인찍어 공론장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도 초래한다”며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단정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반동성애 및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을 하는 활동가(활동단체)로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계몽·설득하는 강연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가짜뉴스 표현은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지나치게 훼손한다”고 봤다. 

공익적 보도라는 뉴스앤조이 주장에 재판부는 “반동성애 운동과 반대 진영에 있는 언론의 대응적 성격이 주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언론이 순수하게 공익적 차원에서 비판하는 경우와 달리 원고가 감수할 정도를 낮게 봐야 한다”며 “감시, 비판, 견제라는 정당한 언론 활동 범위를 벗어나 상당성을 잃었다”고도 밝혔다. 

근거 없고 결론만 있어, 반동성애 진영 왜곡 논리·보도 공익성 검토 전무

미디어오늘이 4개 사건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이번 판결은 근거 없는 단정에 가까웠다. 판결문엔 반동성애 진영 주장이나 뉴스앤조이 보도의 허위 여부를 검토한 대목이 없다. 뉴스앤조이 보도의 공익적 가치를 고려한 부분도 없다. 김지연 약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성경이 불온서적이 된다’거나 동성애가 에이즈 원인이라는 과장·왜곡된 주장으로 강연을 열어왔다. khTV는 유튜브 영상으로, GMW연합은 블로그로 반동성애 진영 주장을 전하고 있다. 왜곡 논리를 검증한 뉴스앤조이는 이들에게 “가짜 뉴스 유통자(유통채널)로 지목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가짜뉴스가 사전적·사회적으로 어떤 표현이고, 왜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는 과정도 판결문에 나오지 않는다. 판결문을 본 A변호사는 “표현 자체론 무색무취한 표현일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회에 수용되는지가 검토돼야 한다”며 “가짜뉴스는 정보에 대한 판단이고, 유포자는 사람에 대한 판단인데 그런 구분도, 정의도 없다. ‘가짜뉴스로 지목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게 인격권 침해 근거가 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예로 대법원은 지난 6월 “‘갑질한다’는 표현은 모욕적 언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 세입자가 건물주와 건물 사용 문제로 갈등을 빚다 ‘건물주 갑질에 화났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동네에 배포해 모욕으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갑질' 표현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표현의 방식 등 전후 정황을 살펴보면 그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다소 무례한 방법으로 표시되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건물주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가 2018년 7월 서울 대한문 일대에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청 인근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이우림 기자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가 2018년 7월 서울 대한문 일대에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청 인근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이우림 기자

언론보도와 관련된 명예훼손 사건을 두루 맡아 본 B변호사는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 여부만 따지더라도 위법성을 조각하는 기준에 허위사실 여부와 보도의 공익성이 포함된다. 쉽게 말해 욕을 했으면 그 욕의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며 “보도 내용이나 배경, 정당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가짜뉴스는 인격권 침해’라는 식인데, 정정보도와 관련된 소송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라 지적했다. 

언론계에선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게 불법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 판단에 따르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부류에게 ‘가짜뉴스’라 비판하면 오히려 비판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마찬가지”라며 “역사적 합의가 끝난 국가권력의 폭력은 물론, 소수자를 낙인찍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명백한 허위조작정보라 하더라도 ‘가짜뉴스’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본 것인데, 소수자‧약자에 대한 혐오‧폭력‧차별이라면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사법부가 무참히 깨버렸다”고 성명을 냈다. 

뉴스앤조이는 4개 사건 모두 항소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20일 입장을 내 “(가짜뉴스 표현이) 원고를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여론의 장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결했지만 허위·왜곡·과장 정보와 혐오 표현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올바른 여론 형성에 필요한 것이냐”며 “가짜뉴스 대신 ‘허위·왜곡·과장 정보’ 혹은 ‘혐오 표현’이라고 썼으면 문제가 되지 않느냐.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수많은 매체가 가짜뉴스란 말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는데, 이런 것들도 모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