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김재규 재평가 제대로 해줘야”
“젊은 세대가 김재규 재평가 제대로 해줘야”
[인터뷰] 10·26 김재규 재조명 27년 정희상 시사IN 기자… “국정원, ‘김형욱 암살’ 검증 스스로 걷어차”

정희상 시사IN 기자는 1993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재조명했다. 김재규가 1979년 일으킨 박정희 살해 사건, 즉 10·26을 두고 ‘국부(박정희)를 죽인 패륜아’, ‘과대망상증 환자에 의한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일 때였다.

정 기자는 당시 관련 보도에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측근이 살해했다는 이 기이한 사건의 배경과 성격, 의미는 지금까지 촌극 이상의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재규씨 묘지에 그를 ‘의사’라 일컫는 추모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그 말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정 기자는 2016년 말~2017년 초 스토리펀딩을 통해서도 김재규와 10·26을 재평가하는 콘텐츠(‘김재규, 역사의 심판대 다시 오르다’)를 공개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정 기자는 “20~30대 독자들은 이번 스토리펀딩을 통해 중·고교 때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김재규와 10·26 사건의 실상을 비로소 다시 알게 됐다고 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시작이 반이라는 겸허한 자세로 김재규 재평가의 밑돌을 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김재규에게 관심이 높아진 지금, 정 기자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사IN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 정희상 시사IN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사IN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정희상 시사IN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사IN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1993년 “김재규는 왜 ‘유신의 심장’을 쏘았나”라는 시사저널 기사로 김재규를 재조명했고 2017년에는 김재규를 주제로 스토리 펀딩까지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재규만큼 역사적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인물을 찾기 쉽지 않다. 내가 기자 초년생 시절인 1993년 그때는 보도 자체가 화제였다. 김재규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박정희 향수가 강했던 보수층이 공고했던 시기였다. ‘이런 걸 다뤄도 되나’라는 시선이 따가웠다.”

- 김재규와 민주화운동 세력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보도였다.

“박정희 중앙정보부 시대는 고문과 구속, 인권 유린으로 점철됐다. 그 와중에 김재규는 달랐다는 여러 증언을 확보했다.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말씀을 들었고, 재야 민주화운동의 이부영 선생도 김재규와 장준하 선생의 교유와 교감을 증언했다.”

- 장준하는 박정희와 대립하던 인물 아니었나?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장준하는 광복군, 두 사람은 대척에 있다. 그런데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 정권에서 의문사로 세상을 떠나자 김재규가 해마다 쌀가마 같은 것을 몰래 장준하 유족에게 전달했다는 증언이다. 유신 독재 하수인으로서 인권 유린에 공동 책임이 있는 중정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은 곱게 봐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김재규는 달랐다는 평가였다. 이뿐 아니라 김재규 부하로 10·26에 가담했다가 사형 당한 박선호, 박흥주 등 그들의 유족들을 취재했다. 지금도 함세웅 신부를 주축으로 재야 민주 진영에서 매해 5월이면 김재규 묘지를 찾고 고인을 기린다. 김재규는 1980년 5월24일 사형됐다.”

- 2005년 4월에는 “내가 김형욱을 양계장 파쇄기에 넣어 암살했다”는 내용의 특수 공작원 기사를 보도했다.

“김형욱은 1960년대 중앙정보부장으로 그야말로 박정희의 병기 역할을 했다. 유신 체제 구축에 디딤돌을 뒀던 충복이었다. 그랬던 이가 박정희와 갈라서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 거기서 민주투사인 양 박정희 비리를 떠들고 다녔다. 김형욱이 1977년 미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면서 박정희도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던 시기에 김형욱이 파리에서 사라졌다. 누구나 박정희가 그 배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방법이었는지 각종 설이 난무했다. 내가 만난 공작원(가명 조용박)은 중앙정보부가 양성한 특수 북파공작원 대표였다.”

▲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쐈다. 그해 11월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80보도사진연감
▲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쐈다. 그해 11월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80보도사진연감

- 어떻게 중정 출신 특수 공작원을 만나게 됐나?

“중정 출신 특수 공작원들이 학생 운동이나 재야 민주화 세력 지도자들에게 백색 테러를 가했다는 제보와 취재가 그전부터 이어졌다. 그들이 문익환·김영삼 집에 침투해 어떤 공작을 펼쳤는지 민주화운동 단체 사무실에서 활동가들에게 어떤 만행을 가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장준하 선생 의문사였다. 그들 소행 아닐까 묻고 취재하던 중 (조씨로부터) 김형욱 이야기가 나왔다. ‘닭모이로 흔적 없이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염산공장과 양계장을 놓고 고민했는데 접근성과 사후 보안 문제로 인적 없는 양계장을 택했다는 말. 검증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 2005년 5월 국정원은 공식 발표를 통해 “김재규 중정부장이 파리에서 연수 중인 중정 수습 직원에게 김형욱 암살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수습직원이 동유럽 청부 살해업자들을 고용해 김형욱을 납치한 뒤 사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시사저널 보도 다음날인 2005년 4월 당시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과 면담을 가졌다. 내가 취재한 정보와 자료를 다 제공하고 김형욱 사건 검증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겁하면서 거부 의사를 피력했다. 결국 급조한 모양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더라. 국정원 조사 결과에 황당했다. 국정원 발표는 모든 책임을 김재규에게 떠넘기는 내용이었다.”

- 국정원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김형욱 파리 실종은 1979년 10월9일이고 같은 달 26일 박정희가 죽었다. ‘거사’를 준비했던 그가 박정희 심기 경호를 위해 김형욱을 제거하는 공작을 총 지휘했다고? 무리수다. 당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들은 제대로 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채 결과 발표가 진행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2005년 당시 박근혜는 유력한 차기 권력이었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과거 공작으로 박근혜에게 불똥이 튈까 우려했고 조사 결과도 그런 차원의 ‘보험’ 성격이 짙다고 생각했다. 새 권력으로 떠오르는 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진실을 왜곡한 결과다. 당시 ‘김재규 체제’ 일원으로 생존해 있던 해외정보국장 등 국정원 관계자들을 두루 접촉했지만 김재규가 김형욱 암살 제거 사건에 연루된 근거는 찾지 못했다. 조씨 등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다른 청와대 라인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나중에 들을 수 있었던 내용은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 라인의 움직임이었다. 물론 조씨 주장이 100% 검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합리적 검증 기회를 국정원 스스로 찬 것은 분명하다.”

이 대목과 관련해 정희상 기자는 지난해 6월 펴낸 책 ‘팩트와 권력’에서 “그들(중정의 당시 지휘계통 인사들)이 지목한 사람은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 실장이었다. 당시 김형욱에 대한 회유는 1978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중정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을 시켜서 추진하다가 번번이 실패하자 포기한 상태였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형욱 건으로 김재규 부장의 무능함을 맹공격했다. 그러고 나서 차 실장이 ‘김재규, 너 봐라. 정보부가 무능력해 아무것도 못하지 않느냐. 각하에 대한 충성은 이렇게 하는 거야’하는 식으로 김형욱 암살 공작을 수행했다는 이야기였다”고 썼다.

▲ 정희상 시사IN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사IN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정희상 시사IN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사IN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형욱 양계장 암살설’을 두고 2005년 MBC와 시사저널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PD수첩은 그해 5월3일 양계 전문가들이 곡물 분쇄기로 인체를 갈기 어렵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조씨의 김형욱 암살 주장을 단정적으로 부정했다. 당시 최승호 PD수첩 CP(현 MBC 사장)는 시사저널을 겨냥해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기사를 쓰면서 조씨의 주장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정희상 기자는 “양계장 분쇄기는 수십 가지 검증해야 할 부분 중 하나였다. 진실은 국가에서 규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 강신옥·안동일 변호사 등 김재규 변호인들을 오래 취재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 접견 노트를 갖고 있었다. 김재규 자필, 심경을 담은 한시 등을 토대로 김재규 인품과 면면을 알게 됐다. 그 변호사들은 김재규가 세간의 평가처럼 ‘국부를 죽인 패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박정희를 능가하는 국민 생명에 대한 가치와 민주주의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강신옥 변호사는 사육신에 빗대어 김재규를 평가한다. 김재규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동일 변호사는 지난 2017년 6월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라는 책을 통해 10·26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의로운 거사라고 평가했다.”

- 1993년과 2017년 모두 김재규를 재조명했다. 기자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달라졌나?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 지지 흐름과 반비례하는 것 같다. 당대에선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이른바 ‘태극기 세력’ 구성원들은 박정희·전두환 시절 강력한 체제 교육을 받거나 수혜를 입은 세대들이다. ‘독재는 나쁘다’고 생각해도 마음이 박정희에 끌린다. 1990년대 보도할 때 기사에 공감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독자가 많았다. 2016~2017년 김재규 스토리펀딩 때는 젊은 세대들이 김재규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김재규 티셔츠’ 등 기발한 젊은 감각과 아이디어로 김재규를 재평가했다. 이 사람들 손으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겠구나 싶었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배우 이병헌씨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역을 맡았다. 사진=남산의부장들 스틸컷.
▲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배우 이병헌씨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역을 맡았다. 사진=남산의부장들 스틸컷.

- 기자로서 근현대사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 고향 뒷산에 뼈들이 참 많았다. 내가 60년대 생이니까 한국전쟁으로부터 15년 정도 지난 시점의 일이다. 어른들도 그 옆에는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어른들도 공포에 짓눌린 상태였다. 대학에 가서야 그것이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반공교육 세대이기 때문에 이 땅의 인권 유린과 학살 책임은 모조리 인민군과 김일성, 좌익과 소련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편이었던 국군, 경찰, 우익단체, 미국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도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민이 짐승, 벌레 취급을 받던 시절의 비극이다. 뒤틀린 현대사 바로잡기를 사명감으로 삼고 초년 기자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비무장 민간인 학살 문제를 파헤쳤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김재규를 만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박정희 유신 시대가 몰락하는 과정에 김재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젊은 세대들이 박정희와 김재규에 대해 균형 감각을 갖고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5·18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북한군 개입설’을 시청하고 유통한다.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가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분명한 건, 하늘 아래 새로운 뉴스가 없고, 역사 문제는 과거의 것이 아닌 오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자들도 끊임없이 우리 현대사를 기록하고 취재해야 한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역사에는 2020-01-22 17:02:21
팩트만이 정리되야죠. 박정희가 끝내 욕심을 갖고 종신집권을 하려 했다면 국민이 가만 안있었겠죠.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입니다.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총으로 쏴죽인건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팩트죠. 결과적으로 민주사회가 온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게 젊은세대와 무슨 상관이죠?

바람 2020-01-22 14:48:34
역사가 진실을 밝혀줄 거라 믿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우상화는 너무 이르다는 게 내 견해다.